우리가 그분을 왕이라 부르는 이유

2015. 12. 3. 오전 6:2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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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분을 왕이라 부르는 이유

 

 

구약성경 사무엘기 상권 8장에 보면 이스라엘 민족에 처음 왕정이 도입되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판관이었던 사무엘에게 사람들은 왕을 요구합니다. 그러한 백성들에게 사무엘은 하느님께로부터 들은 말씀을 전달합니다. 왕이 군림하게 되면 얼마나 많은 부작용이 생겨날지. 백성들을 자기 소유물인 듯 다루며, 멋대로 일을 시키고 혹독한 세금을 거두고 가장 좋은 소출을 빼앗을 것임을 미리 경고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사무엘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백성들은 고집스럽게 왕을 세워줄 것을 요구합니다. 그때 백성들이 사무엘에게 했던 말이 이러합니다. "우리에게는 임금이 꼭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우리도 다른 모든 민족들처럼, 임금이 우리를 통치하고 우리 앞에 나서서 전쟁을 이끌 수 있게 될 것입니다."(사무엘상 8,20) 이렇듯이 애초에 왕을 원했던 이유는, 전쟁 수행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습니다. 즉, 왕이 백성을 위해 싸워주길 바랬던 거죠. 전쟁에서 싸워준다는 것은 어떤 일인가요?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었습니다. 결국, 백성이 바라는 왕은 자신들을 위해 목숨을 바쳐 줄 왕이었습니다. 목숨을 걸고 백성을 지켜주는 것이 왕의 본연의 모습이었던 겁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 왕정이라는 제도가 생겨난 이래로 정말 그런 왕이 동서고금을 통틀어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사무엘을 통해 하느님께서 경고하셨던 대로 이른바 권력자들은 목숨을 걸고 백성을 지켜주기보다는, 백성들이 왕을 위해 목숨까지 내놓을 것을 강요해왔었습니다. 백성을 사유물인 양 여기면서 얼마든 쥐락펴락할 수 있고, 뭐든 맘대로 할 수 있는 최상층의 신분으로 스스로를 격상시켰습니다. 이 시대 우리나라를 쥐고 흔드는 권력자와 정부도 별반 다를 바 없어 보입니다. 역사마저도 자기 맘대로 바꾸고 흔들어 놓을 수 있다는 희한한 발상을 현실화시키니 말입니다. 오늘 우리는 연중시기의 끝자락에서 '그리스도 왕 대축일'을 지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오늘 복음을 아무리 읽어봐도 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를 왕으로 자청하신 적은 없어 보입니다. 왕인지 아닌지를 어서 밝히라는 빌라도의 고압적인 추궁에도 예수님께서는 답변 자체를 마다 하십니다. 왕을 자청하신 적이 없을 뿐 아니라 왕이 되고픈 마음도 없어 보이십니다. 그런데 이제 와서 우리는 예수님을 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그런 왕이 필요했던 거겠죠. 애당초 '왕'이라는 직책은 백성을 위해서라면 목숨까지도 아까워하지 않는 이가 맡아야하는 자리였습니다. 왕 스스로가 원해서 왕이 되는 것이 아니라, 백성을 위해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사람을 왕으로 모시고자 하는 것이 본래의 왕이었던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왕이라고 부릅니다. 십자가에서 당신 목숨 바치시고, 그것도 모자라 살과 피까지 백성에게 남겨주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왕으로서 이분보다 더 적임자가 없습니다. 이런 왕의 백성으로 살고 있음에 감사드립니다. 나의 임금이신 그리스도를 위해 살다가 언젠간 그리스도를 위해 죽을 수 있기를 기도하고 다짐합니다. -김종민 프란치스코하비에르 신부(사회복지법인 대건카리타스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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