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떼제 공동체 |

싱그런 젊음을 상징하는 듯 녹음으로 울창한 캠퍼스를 지나 안선재 수사님 연구실을 찾았다. 영국인 안선재 수사님은 한국에 귀화하신 분이다. 한국에서의 삶이 10년째라 한국인이 다 되었다고 미소를 지으며 안내하는 작은 연구실에는 많은 서적과 함께 한국 전통음악 관련자료와 전통 차 세트 등이 잘 정돈되어 있어 그의 한국에 대한 관심이 훈훈하게 느껴졌다.
프랑스에 있는 떼제 공동체로 영성생활 체험을 떠나려는 영락교회의 젊은이들 모임에 다녀 온 소감과 떼제 공동체 이야기를 들으면서 필자는 초종파적인 신앙 안에서 진지한 삶의 자세를 찾고자 함께 나눔의 생활을 하는 기쁨과 사랑, 그리고 젊음이 넘치는 떼제 언덕 마을에 오르는 듯 했다.
부르심의 동기
1940년 8월 스물 다섯 살의 학생 한 사람이 고국 스위스를 떠나 전쟁으로 폐허가 된 동부 프랑스 지역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그는 장차 하느님이 그에게 보내실 사람들과 더불어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나눌 공동생활을 위해 집을 찾고 있었다. 유럽의 여러 민족들이 서로를 무참히 죽이고 있던 그 순간에 그는 소수의 사람이나마 그리스도의 복음은 신뢰와 나눔 그리고 화해의 소명을 간직하고 있다는 분명한 징표를 보여 줄 필요가 있음을 느꼈다. 그는 자신이 느낀 이 메시지를 지체없이 실천으로 옮기고자 부르고뉴 남쪽에 위치한 ‘떼제’ 마을에 집을 하나 마련하였다. 이렇게 떼제 공동체의 역사는 50여 년 전 이 날로부터 시작된다. 그리스도의 뜻에 따라 나아가기 위해서는 평화로운 자신의 나라 스위스를 떠나야 한다는 단순한 확신을 가졌던 이 젊은이는 오늘날 세계적으로‘로제 형제’로 알려져 있고 그가 도착했던 조용한 마을 떼제는 이제 매년 온 대륙으로부터 수만 명의 젊은이들이 그리스도를 찾고 그분이 자신들에게 주시는 삶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모여드는 기도와 만남의 중심지가 되었다. 로제 수사의 이야기가 바로 떼제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어린 시절 개신교 목사인 아버지가 가톨릭 교회에 가서 기도하는 것을 보고 깊은 인상을 받았다. 갈라진 교회들의 화해를 모색한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서도 그는 일찍부터 영감을 얻었으며 이리하여 그는 ‘공동체’ 생활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는 신학을 공부했으며 특별히 교회의 수도 생활 전통에 관해 연구했다.
공동체 탄생
공동체 생활을 설계하면서 떼제에 정착한 뒤 다른 형제들이 그와 함께 하기까지는 거의 2년을 기다려야 했다. 그 사이 그는 누나와 함께 떼제에 집을 마련, 자유를 찾아 중립국인 스위스로 가기 위해 독일 점령지를 빠져 나온 유대인 등을 숨겨 주었다. 마침내 위험은 절정에 달해 그는 제네바로 몸을 피해 전쟁이 끝날 때까지 거기에 머물러야만 했다.
거기서 다른 형제들이 그와 합류했고 그들은 1945년 함께 떼제로 돌아왔다. 수년간 함께 기도하고 생활한 결과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자신들로 하여금 몇 년이 아니라 전 생애를 바쳐 투신하도록 부르신다고 확신하게 되었고 1949년 부활절, 로제 형제는 다른 여섯 형제들과 함께 장엄한 서약을 하게 되었으니 그것은 독신 생활 가운데 영적 물적 모든 재화를 공유하며, 모든 형제 가운데 ‘일치의 종’이 될 한 형제(원장을 말함)의 봉사를 통하여 형제애로 모인 오직 하나의 공동체 안에서 일치하여 함께 그리스도를 살아가고 섬기겠다는 것이다. 떼제 공동체는 이렇게 탄생했다. 세월이 흐르면서 로제 수사는 공동체가 거대한 단체가 되지 않으면서도 국제적인 차원에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다. 공동체는 떼제에 그 기초를 둔 형제들의 단 하나의 작은 우애 공동체로 항상 남아 있겠지만 갈라진 우리 세계의 고통 한가운데 서고자 끊임없이 노력한다. 시작한 지 50년이 더 지난 지금도 공동체는 여전히 20여 개국 출신 1백 명도 채 안 되는 수의 형제들로 이루어진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브라질과 방글라데시의 빈촌, 아프리카의 농촌, 미국 뉴욕의 험한 구역, 그리고 한국에서 살고 있다.
일치의 비유로서의 공동체
일찍부터 로제 수사는 교회의 보이는 일치의 원천으로 교황과 로마를 응시했다. 1949년 교황 비오 12세와의 첫 만남 이후에 로제 수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만남의 하나가 1958년에 있었으니 막 선출된 요한 23세 교황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했을 때 로제 수사를 개인적으로 초대하여, 참관인으로 공의회에 참석하도록 배려했다. 공의회 기간 동안 떼제 공동체는 온 세계의 주교들과 접촉하게 되었는데 특별히 칠레와 브라질 등 남미의 가장 가난한 지역의 주교들과의 만남은 큰 중요성을 갖는다. 그와 더불어 인간들이 극도로 고통받는 한가운데서 복음은 말만으로 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점이 더욱 분명해졌다. 가난한 사람들은 물질적인 빈궁을 벗어날 길을 찾아야 했다. 칠레의 일부 주교들은 그들 교구가 소유한 광활한 토지를 가난한 농민들이 경작할 수 있도록 나누어주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그들이 현대적인 경작법을 배우지 않는 한 생활 상태를 개선하기란 불가능했다. 그래서 그들은 협동 농장을 만들었고 유럽에서 트랙터와 기타 장비를 구입해 주도록 청했다.
젊은이들과 떼제
차츰차츰 더 많은 사람들이 떼제에 관하여 듣게 되었고 직접 떼제를 찾아왔다. 지난 30년 동안 떼제를 찾아와 기도하고 다른 사람을 만나는 젊은이들의 수는 계속 늘어났다. 처음부터 로제 수사는 젊은이들이 삶에 대하여 그리고 믿음에 대해 본질적인 중요한 물음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젊은이들은 떼제에서 있는 그대로의 자신들이 진정으로 받아들여짐을 느꼈고 아무도 그들 스스로 발견한 해답이 아닌 것을 그들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떼제를 방문했을 때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떼제를 지나가는 것은 샘터를 지나가는 것과 같습니다. 나그네는 잠시 쉬면서 갈증을 풀고 길을 계속 갑니다. 공동체의 수사님들은 여러분을 여기에 붙잡아 두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모두 잘 아실 것입니다.
그분들은 여러분이 기도와 침묵 가운데 그리스도를 통해 약속된 생명수를 마시고 주님의 기쁨을 맛보며 주님의 현존을 체험하고 주님의 부름에 응답하기를, 그리하여 이곳을 다시 떠나 여러분들의 본당과 학교,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분의 일터에서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고 여러분의 형제 자매들을 섬기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오늘날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서 그리고 세계의 최고 정치 지도자들 사이에 이르기까지 떼제 공동체는 항상 넘치는 희망의 신뢰를 젊은이들 안에 심어 주는 것으로 인정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나 역시 이 신뢰를 그리고 이 희망을 가지고 있기에 오늘 아침 여기에 오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떼제에서는 연중 계속하여 젊은이들의 모임이 열리고 있다. 여름 동안은 매주 70-80개국으로부터 3천-6천 명의 순례자들이 떼제의 언덕에 모인다. 보통은 일주일 단위의 프로그램에 참석하는데 아시아,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에서 온 젊은이들은 보통 2-3개월씩 머물기도 한다. 아침 낮 저녁 등 매일 세 차례의 공동 기도를 중심으로 엮어지는 한 주간의 프로그램은 매주 일요일 저녁에 시작하여 다음 주 일요일 아침 미사로 끝난다. 로제 형제를 비롯해 떼제에 사는 60-70 명의 수사들이 하얀 수도복을 입고 수천 명의 젊은이들 가운데 꿇어앉아 함께 드리는 이 기도 시간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순간이다. 서로 다른 수많은 여러 국적의 사람들이 떼제를 찾아오는 것을 처음 보았을 때 로제 형제는 공동체가 직면한 도전,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을 맞이할 수 있을까?’하는 물음을 실감했다. 1971년 부활절, 너무 많은 사람이 떼제의 부활 전례에 참석하러 왔을 때 수사들은 그들 모두를 수용하기 위해 성당 벽을 헐고 거대한 천막을 쳐야만 했다. 언어 또한 문제였다. 하지만 오늘날 떼제에서의 공동 기도는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수없이 다른 민족들이 함께 기도함으로써 독특한 아름다움을 자아낸다. 젊은이들은 일상 생활 안에서 복음을 살아갈 것을 다짐하면서 집으로 돌아가면서 교회와 성사가 그들에게 필요하리란 것을 떼제의 생활을 통해 알게 된다. 떼제를 거쳐가는 수많은 사람들이 성소를 발견하고 신학교나 수도회에 입회한다. 떼제는 그들을 붙잡아두려 하지 않고 그들 한 사람 한 사람을 기다리시는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게 내보낸다.
매년 떼제 공동체는 한두 차례 떼제 밖에서 큰 모임을 개최한다. 몇 해전 겨울 비엔나에서 5일 동안 열린 모임에는 8만 여 명이 참석했다. 이번 겨울에는 헝가리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큰 규모의 모임이 열린다. 아시아에서 몇 차례 모임을 가졌는데 그 중 1991년 2월에는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한국인을 포함한 수천 명의 젊은이들이 로제 수사와 다른 수사들을 만났다. 이러한 모임들은 로제 형제가 제창한 “범세계적 신뢰의 순례”의 계속이다. 하지만 떼제는 자신을 중심으로 어떤 ‘운동’을 조직하는 것이 아니라 이 순례에 참가하는 청장년으로 하여금 각자가 사는 곳에서 평화의 순례자가 되도록, 곧 도시와 마을, 본당과 지역 교회에서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모든 세대의 이웃들과 더불어 열심히 활동하도록 격려한다.
한국에는 김수환 추기경의 초청으로 1979년 형제들이 파견되어 현재 다섯 명의 수사들이 있다. 모두 유럽 출신인 이 형제들은 남북 분단의 아픔을 나누고 갈라진 교회의 화해와 일치를 위해 기도한다. 이들은 가톨릭과 개신교의 여러 교회와 모임에 초청되어 기도를 인도하기도 한다. 일본인 성직자와 신자들이 한국을 방문해 더 깊은 이해와 친교를 가지도록 주선하고 뒷받침하면서 두 나라 사이의 화해에도 관심을 기울인다. 수사들 중에는 장기수, 사형수, 외국인 수감자들을 방문하는 데 전심하는 사람도 있다. 그들은 조용히 한국 사회와 교회의 삶을 나누면서 젊은이들이 깊은 기도의 맛을 체험하고 신자들이 영성 생활의 깊이를 더하도록 한국 교회를 돕고있다. 끝으로 “사랑과 나눔이 있는 곳에 하느님이 계시다”고 강조하던 말씀이 세상 끝까지 전해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으로 캠퍼스를 나섰다.
<자료정리: 정지연 나타샤 교황청전교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