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생활/발자국 찾아-프란치스꼬전교봉사수녀회/정지연 나타샤

2002. 1. 2. 오후 2:19:03

글자

 

발자국찾아

 프란치스꼬 전교 봉사 수녀회  정지연 나타샤/교황청전교회

 

프란치스꼬 전교 봉사 수녀회 본원 전경

上左-수녀원,下左-임종의 방,左-사랑의 집,

잠비아 선교 지역의 전례

 

 

 

  자연의 숨소리 가득한 강원도 치악산 자락에 ‘지극히 작은 자매’로 살아가는 프란치스꼬 전교 봉사 수녀회가 있다. 이 믿음의 공동체는 사회로부터 소외된 자들과 살면서 이웃에게 자신을 선물로 내어주고 있다. 아시시 프란치스꼬 성인의 가난과 겸손, 비움의 영성을 기초로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전교 사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으며 총 회원은 148명이다. 이들은 국내 5개 지역의 전교 활동과 25개의 의료, 사회복지기관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원주와 대전에서 특수 사도직을 맡고 있으며 해외는 아프리카에 9명이 파견되었다.

 

   노인 요양원 ‘사랑의 집’

노인 요양원 `사랑의 집’ 좌로부터 건강체조, 치매 예방 놀이 프로그램들

 

  녹원 위에 차분히 서 있는 붉은 건물의 수녀원과 구름다리 사이로 ‘사랑의 집’이 보였다. 1984년 하이디 브라우크만 수녀가 개원하였고 1993년 사회복지시설 법인으로 인가 받은 노인 요양원으로서 쾌적하고 깨끗한 환경에 재활 의료 장비가 갖춰진 훌륭한 노인생활 시설이었다. 조 마누엘라 원장 수녀는“노인에 대한 사랑은 곧 자신의 미래에 대한 사랑”이라며 어르신들이 남은 여생을 행복하고 기쁘게 마칠 수 있도록 효의 사랑이 넘치길 기도한다고 했다.

외방출신 수도자와 추석준비

대희년 프란치스칸 가족모임

프란치스꼬 성인 대축일 행사

대구 치매 센타

백순 잔치를 위한 화장을 곱게~

 이 곳의 어르신들은 일상적인 생활 중에 간호를 받으면서 기능 강화를 위한 재활의료, 물리치료, 상담, 여가 등 다양하게 짜여진 프로그램에 따르고 있다. 이 밖에 문화 예술공연 관람, 각종 방문공연, 유치원 재롱잔치, 외부 나들이와 효도 서비스, 생신 잔치, 절기 행사 등이 있다. 그리고 전문 강사와 자원 봉사자들이 노인들의 신체적, 정신적 안정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간호는 1일 3교대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치매 예방 프로그램으로 놀이 치료를 받고 있는 노인들을 만났다. 할머님 한 분이 꼭 감긴 눈으로 굵은 실에 구슬을 열심히 꿰고 있었다. 노환으로 실명했는데 인지력의 감각을 살려 놀랍게도 구슬의 간격을 맞추고 있었다. 또한 섬세한 손놀림으로 침착하게 상자를 쌓아 올리고 내리는 분, 떨리는 손으로 그림을 맞추는 분도 뵐 수 있었다. 간단한 놀이 도구로써 노인들에게 소근육 운동과 함께 생리적 활성화에 도움을 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영적인 간호와 호스피스 간호로 생애의 마지막까지 편안하고 안정되게 지낼 수 있도록 식사 보조, 목욕 등 다양한 봉사가 지역 주민들의 활동과 연계되어 이루어지고 있다.  

사랑의 집에서 `임종의 방’

 복지관의 마당에 들어서면‘임종의 방’이 인상적으로 눈에 들어온다. 따스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밝게 꾸며져 있었다.

‘사랑의 집’을 나서면서 조 마누엘라 수녀는 수도회가 지향하는 삶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우리는 어떤 식으로든지 고통받는 이들과 유리된 존재가 아닙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관심과 선택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신앙의 눈으로 이웃의 고통을 마음 깊이 공감하여 그들과 삶을 함께 하려는 나눔의 정신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에게 기쁨이란 선물이 무상으로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미약하나마 우리의 힘이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켜 줄 수 있고, 그들이 누리게 되는 약간의 안정과 평화는 적어도 그 스스로를 소외시키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이는 모든 인류를 품에 안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공존의 의미가 되고 산 위에서 오천 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행적이 시공을 초월한 축복으로 함께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전하는 미소에서 사랑과 나눔의 기쁨을 느낄 수 있었다.

 

  창설자를 만나다

창설자 하이디 수녀님.

원주 가톨릭병원 입원실.

원주시 가톨릭병원 입원실.

병원 정문에서~

 

  창설자 하이디 브라우크만 (현재 총 원장)수녀는 1966년 독일에서 온 선교사이다. 그녀는 한국 사회에서 어렵고 소외된 이웃들과 결핵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만났다. 그리하여 자신의 삶을 의료인으로 사회사업가로 교육자로서 거듭나며 평생 봉사자가 되었다. 그녀는 나환자와 결핵 환자들을 돌보면서 지내다가 의료인과 의료시설의 부족함을 안타깝게 여겨 외국인으로서는 처음 의사 면허를 취득하였다. 당시 열악했던 원주 상황을 보고 고향으로 그냥 돌아 갈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녀는 강원도 원주시에 가톨릭 병원을 개설하여 가난한 자, 무의탁자, 행려 환자에게 무료 진료를 하였다. 지역사회 내의 노인과 장애인, 어린이들을 위한 사회사업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지학순 주교의 권유로 프란치스꼬 전교 봉사 수녀회를 1983년 9월 11일에 창설하였다. 이후 전국에 도움이 필요한 곳이면 어디든지 개원한 사회복지시설이 25개나 되었다. 이때부터 죽음에 이른 이들을 위해 호스피스 병동을 운영하여 말기 환자들이 편안한 죽음을 맞이할 수 있도록 보살펴 주었다. 그리고 1993년 11월 9일에는 프란치스꼬 전교 봉사 수녀회가 정식으로 로마 교황청에서 인가를 받게 되었다. 1996년, 아프리카 잠비아에 5명의 수도자들을 파견하는 등 봉사 활동의 영역을 전 세계 지역으로 넓혔다. 같은 해 8월 21일에는‘프란치스꼬 전교 봉사 남자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앞으로의 계획은 2002년 1월 문화와 언어 코스를 마친 5명의 수녀들이 브라질 북동쪽에 자리한 파라이바 교구 콘데 본당에 속한 난민촌에서 청소년들을 중심으로 사회복지활동 및 사목활동을 시작할 예정이다.

  병실 회진중인 하이디 브라우크만 총 원장 수녀를 만나기 위해 원주 가톨릭 병원을 둘러보았다. 환자들의 대부분은 무의탁 노인 환자들이었다. 호암상을 수상하고 의료와 사회복지, 해외 선교의 여러 일들을 이룬 분과의 만남이 기대되었다. 기다리는 동안 수녀원에서 만난 한 수녀님의 말이 잠시 떠올랐다.

 “30년 전에 하이디 수녀님은 기도 중에 예수님의 치유하는 모습을 보고 의료인의 삶을 선택하였고 사회 복지 활동을 통한 선교지향을 두셨다고 합니다. 소외된 곳을 찾아가 현지의 기초생활을 해결하는데 중점을 두셨습니다. 잠비아, 브라질 등 선교지역에 성소의 씨앗도 심으셨습니다. 여성에게는 일을 가르쳐 주었고 농작법과 수확하는 기쁨을 알려 주었답니다. 영양결핍의 성장기 어린이들을 위한 요리법을 알려 주었죠. 젊은이들에게는 농업 기술 학교로 파견하여 개간 농작을 돕게 했습니다. 간혹 풍토병으로 고생하는 수녀님들도 계십니다.”그리고 선교에 관한 견해를 다음과 같이 전했다.“선교사는 선교지역의 사람이라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잠비아인이 되고 브라질인이라는 생각을 가져야 선교가 가능합니다. 갖고 있는 것을 베푼다는 의미보다 그들에게 속하고 동화되어 더불어 사는 것입니다. 그들과 필요한 부분을 나누는 것이죠.”

 

땀부 공소 사목을 위해

  가는 길은 악어를 만날

  수도 있다?

농법을 가르치며 농사를 짓고 있는 수녀.

 

왼쪽 소년의 깡통안에는 식량으로 들쥐가!~

 

땀부에서 벽돌을 직접 짓는 하이디 수녀.

 

 

 하이디 수녀는 정다운 이웃처럼 편안한 분위기로 맞아 주었다. 선교 사목 체험담을 청하였더니 한아름 앨범을 들고 와서 외방 선교지역의 현장 소식을 생생하게 전해 주었다. 잠비아의 오지‘땀부’공소를 방문하기 위해 밀림에서 조각배를 타고 있었던 모습의 사진을 가리키며 “공소로 가는 길에는 악어를 만날 수도 있어요.”위험 부담이 따르는 선교사 활동을 전해 들으니 공포심이 밀려오기도 했다.“아프리카의 미사 전례는 마을 잔치입니다. 화려한 축제 분위기로 2-3시간 이상 전례 의식이 이어집니다. ‘스텔라’라는 미사 전례를 위해 아프리카 전통 춤의 무용단이 있어요.”라며 미사 입장, 봉헌 그리고 성체 거양 할 때에 춤을 추면서 분홍 꽃잎이 흩날리는 잠비아 선교 지역의 황홀한 사진을 보여 주었다.

`스텔라’라는 미사 전례를 위한 아프리카 전통 무용단-미사 입장, 봉헌, 성체 거양할때 춤을 추며 꽃잎을 흩날리는 잠비아 선교 지역의 황홀한 전경.

 

 “어린이들은 맨발로 다니고 옷도 없어서 한국에서 의류와 생활용품을 지원 받습니다.” 그리고 물끄러미 응시하고 있는 잠비아인의 어머니와 아기 사진을 보면서 “이 사진을 볼 때마다 맘이 아픕니다. 이 모자는 에이즈로 죽었습니다. 에이즈에 걸리면 왜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그처럼 예방과 치료에 대해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AIDS로 사망한 모자(母子)

잠비아 의료 봉사

잠비아 의료 봉사

빈민촌에서 진료

잠비아 의료 봉사

무풀리나 open community school 학교를 못가는 18세까지 어린이들을 위해 문맹 퇴치를 돕고 상급학교로 보내진다. 남자 어린이는 마리스타회 수사님들의 도움으로 기술교육과 건축, 목재가구, 농법기술을 전수받고 여성에게는 재봉을 가르친다.

 

  선교의 어려움에 대해 질문을 하니,“지금은 의사 소통의 어려움이 없어 보이나 한국에 적응하면서 말이 안 통할 때는 눈물도 났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그냥 지나가는 것이라 생각하고, 힘들 땐 한번 울고 또 잘 견뎌냈습니다. 고향을 떠난 외로움을 느낄 겨를도 없이 한국에 와서 처음부터 바빴어요. 물론 다른 문화와 언어를 습득하면서 연구하려는 의욕도 있었고 부지런히 지내다보니 시간이 모자랐습니다. 저녁에는 천막 식당을 빌려 구두 닦는 친구들을 위해 영어를 가르쳤는데 겨울엔 춥고 여름에는 더웠어요. 선교는 선교 지역의 사람과 함께 사는 것이고 주님의 믿음을 따라 살다보면 그들이 따릅니다. 무엇을 가르치기보다 활동을 통해 사랑을 나누고 그들의 것을 배우면서 자신의 것을 내 놓습니다. 선교활동은 한국교회가 완성되었을 때, 시작하면 늦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부족한 상태이지만 각자가 가진 것을 적극적으로 나누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제3세계를 향한 선교활동도 우리가 쓰고 남은 것을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성서 말씀에 가난한 과부의 헌금에서처럼(마르 12,41-44)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나누는 것이지요. 그리고 국가, 인종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수용한다는 폭 넓은 선교활동이 필요합니다.”

`무풀리’의 집 없는 거리 어린이를 위해 무료 식사 제공하며 함께 식사하는 수녀님

외방의 첫 서원자들과 함께

 

  수녀회의 선교활동 사진을 보면 잠비아 현지에서 벽돌을 찍어 집 짓는 모습, 농사짓고, 성당을 꾸미기 위해 직접 목재를 다듬어 십자가를 만들고 성당 내부의 디자인을 하는 장면이 있다. 남자로서도 어렵고 지칠 수 있는 일들을 수녀들이 손수 작업하고 있는 현장을 목격 할 수 있었다. 하이디 수녀와 향기 가득한 대화를 마치고 수녀원으로 돌아왔다. 저녁 기도에 잠비아 출신의 수녀가 서툰 한국말이지만 정성껏 선창하는 성무 일도를 함께 올릴 수 있었다.

 

  아네트의 집

 

  정신지체 장애아들 중에서도 버림받고 소외된 자폐아들이 대부분이며 가정에서 문제를 발생하게 하는 장애아들을 우선적으로 수용하고 있는‘아네트의 집’을 방문하였다. 어려운 현실이지만 이들에게 스스로의 가능성과 희망을 갖게 하고자 1995년 9월 11일 설립하였다. 현재는 독일에서 장애아 치료 프로그램 연구를 마친 송 에스텔 수녀와 14명의 자폐아 아동들이 한 가족을 이루고 있다. 독일어로 ‘하느님의 어린양’이라는 뜻이 담긴 아네트의 집에 대하여 송 수녀는 어려웠던 초창기 시절부터 소개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안동 가톨릭 농민회관의 식당을 빌려 4명의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시작했었답니다. 그러나 가정에서 아동들의 행동은 전혀 개선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아예 함께 생활하는 시설로 바꾸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농촌 지역에서는 낯설었던 건립 기금 마련 바자회를 열어서 어렵게 자금을 얻었지만 부지 마련에 문제가 생겨 포기해야만 하였어요. 어쨌든 지금의 보금자리가 완성되어 이사 오던 날은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로 기뻤답니다. 수녀회의 도움으로 2차 아네트의 집을 마련하여 본격적으로 아동들의 재활 교육에 힘쓸 수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자폐아들을 위한 시설이 부족해서 문의 전화가 끊임없었죠. 그러나 입소는 아동의 정서적인 문제를 고려하여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고 아이가 적응되어질 때까지 여유를 갖습니다. 현재 예약 접수된 아동들이 대기 중에 있습니다.”

수녀는 함께 변모하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긍지를 갖게 되었고 생활을 하다보면 서로가 장애를 갖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잊게 된다고 한다. 개성이 다른 아이들이 장애를 극복해 갔던 대표적인 한 가지 사연을 소개했다.

“1초도 가만 있지 않고 자해와 타해가 심한 자폐증의 한 여아를 두고 부모와 많은 상의를 거친 후에 저희 수녀들과 어려운 입소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리고 ‘아네트의 집’으로 데려오던 길에 운전하는 저의 머리 수건을 아이는 붙잡고 늘어졌죠. 간신히 사고는 모면했지만 한 달 보름간의 씨름이 이어졌습니다. 잠시도 앉아 있지 않으려는 아이를 수녀 4명이 붙잡고 1초마다의 신경전이 1분, 2분, 3분…… 그렇게 유지해 가던 시간은 길어졌습니다. 고(故) 박석희 주교님께서 자주 미사를 봉헌하여 주셨는데 아이의 자해가 심해서 손을 묶고 미사를 봉헌했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시고 마음 아파하시더니, 미사 후에 안수 기도를 해 주셨습니다. 주교님의 강복 덕분인지 수저 사용도 못하고 장소를 가리지 않고 방뇨하거나 제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불가능하였던 아이가 사랑과 관심 속에서 변화되어 저희 모두를 기쁘게 하였습니다. 지금은 많이 좋아져서 스스로 옷을 입기도 합니다. 간혹 자해 증상이 나타나기는 하지만 우리들의 관심을 얻기 위한 행위라는 것을 알기에 이해가 됩니다.”

이렇듯이 처음 입소해서는 개인의 신변 처리 훈련을 배우고 그 과정을 마치면 공동체 생활에서 지켜야 할 것들을 배우게 된다고 한다. 이들을 위한 다양한 치료 프로그램을 몇 가지 살펴보면, 모태 공간을 이용한 심리 안정 치료법이 있는데 물과 음악, 빛을 이용하여 모태에서부터 인식되었던 부정적인 것을 긍정적으로 바꾸어 가는 것이다.

“참 어렵게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이 일을 하면서 하느님의 크신 은총을 체험합니다. 특히 하느님은 이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끼게 됩니다. 아무것도 없던 곳에서 지금의 보금자리가 생길 때까지 아이들이 변모해 온 모습에서 교육의 가능성을 다시 한 번 실감합니다.”수녀들의 수고와 땀으로 성숙해져 가는 어린이들이 더욱 건강하길 바란다.

 

   애네아의 집

환자를 세척하거나 돌보고 계시는 수녀님들

 

“애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병을 고쳐 주셨습니다. 자리를 걷고 일어나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러자 애네아는 곧 일어났다.(사도 9,34)” ‘애네아의 집’은 성서에 나오는 치유 받은 이의 이름을 빌어서, 중도장애인(전신마비)과 30-40대의 사고 장애인, 여성 중풍 환자를 위하여 마련한 간호 시설이다.

치악산 자락에 푸근하게 안긴 애네아의 집을 향해 탁 트인 지방 도로를 달렸다. 정겨운 ‘애네아의 집’ 울타리 너머 문을 들어서니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고 집 안은 말끔히 정돈되어 있었다. 점심 시간이라서 부엌에서는 요리를 하는 수녀, 물수건으로 환자를 세척하는 수녀, 입 안과 목을 세정하는 수녀, 자폐아의 용변을 돕는 수녀, 이들의 홍조 띤 얼굴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해졌다. ‘애네아의 집’과 곧 완공할 ‘남자 중도 장애자 집’에서는 목욕, 청소, 집안일 등 사랑의 실천을 통해 행복한 터전을 함께 다져 갈 봉사자들의 손길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프란치스코 전교 봉사 수녀회: 강원도 원주시 단계동 776-24 ☎(033)743-9781,

제일은행 626-20-337214 HE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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