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청어린이전교회는 어린이를 돕는 어린이들의 모임입니다.
교황청어린이전교회의 꿈과 사랑이 담겨 있는
모이랑160회 2001년..2월호
2월 겨자씨
겨자씨는 어린이가 성당에서 선생님과, 가정에서 어머니와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을 위해 마련한 것입니다.
무엇이 필요할까요?
필요한 것을 마련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이 세상에는 참 많아요.
여러분은 이런 친구들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선생님과 친구들과 이야기 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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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카니스탄의 어린이들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을까요?
온두라스의 이 어린이는 팔을 잃었어요. 이 어린이에게는 어떤 도움이 필요할까요?
이 친구들과 지금 내 모습을 생각해 보세요.
나는 배고프지 않아요. 나는 건강해요. 나는 따뜻한 집이 있어요.
큰나무
내가 이 친구들과 나눌 수 있는 것을 생각해서 적어 보세요.
이 친구들을 위한 기도문을 만들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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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청어린이전교회는 서울시 광진구 중곡동 643-1에 있어요.
어린이전교회에 대해 궁금하시면, 전화번호 460-7635, 원고를 보내실 때는 achim@cbck.or.kr 잊지마세요.
[앙골라에서 온 편지- 두 번째 이야기]
수녀님 배고파요!
앙골라의 어린 천사들은 날이 갈수록 정다운 친구들이 되었고, 저를 마주치면 얼른 제 품에 안기곤 했어요.
비가 오는 날이면 수업은 아랑곳하지 않고 운동장에 고인 물 속에 들어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놀던 친구들은 제가 말라리아에 걸려 누워있을 때 꿈속에까지 찾아 왔어요. 이곳의 어린이들은 부모님들의 무관심으로 출생신고가 안 되어 있는 게 보통이에요. 그래서 친구들은 자신의 생일을 모른답니다. 학교에 입학하면 우선 어린이들의 키를 보면서 대충 생년월일을 정해 주는 것이 또 하나의 일이에요.
그리고 앙골라에서는 어린이, 어른, 신자든 아니든 누구나 훔치는 일에 거리낌이 없어요. 무엇이든 돈이 되고 빵으로 바꾸어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주저하지 않아요. 직접 그 현장 목격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내 옷을 입고 있고, 가지고 있어도 네가 '도둑'이라고, 그리고 내 물건이라고 말할 수 없어요. 이들에겐 '훔쳤다'하는 표현이 없어요. 네가 이만큼 가지고 있으니까 내가 좀 가져가도 된다는 생각을 합니다.
어머니들은 아기를 업고 온종일 땔감을 주워 팔기 위해 풀 한 포기 없는 이 산 저 산을 찾아 다녀요. 그리고 시장에서 생선이나 가지, 고구마 등을 파는 일로 생계를 꾸리고 아버지들은 바닷가에 나가서 고기를 잡아요. 온 나라 전체가 사막인 벵겔라에서 저는 매일 "수녀님, 배고파요."하는 그들의 힘없는 인사말을 듣는답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란 말이 있듯이 공부도 우선 먹고 해야되는 일이라 내년부터는 아침과 점심을 어린이들에게 주는 유치원과 초등학교를 운영할 계획이에요.
어린이 여러분! 살기 좋은 고국을 떠나 머나먼 이국 땅에서 어렵게 생활하고 있는 많은 선교사들의 노고를 잊지 마시고 기도 많이 해주세요.
정연옥 스텔라 수녀 (살레시오 수녀회)
수녀님! 뭐 하세요? 삼위일체 성당 어린이들이 선교사님들께 보내는 편지
군종교구인 논산 삼위일체 성당 어린이전교회 회원들이 해외에서 일하시는 선교사 수녀님들에게 드리는 편지입니다.
카드와 편지 원본은 외국의 선교사들께 보냈습니다.
스콜라스티카 수녀님! (지난 모이랑 159호 1면) 저도 수녀님처럼 수녀님이 되고 싶어요. 수녀님, 참 힘드시죠? 조금은 불편하시겠지만 참고, 가난한 어린이들에게 제 몫까지 잘 해주세요. 저도 커서 선교사 수녀님이 꼭 수녀님처럼 훌륭한 수녀님이 되겠어요.
조혜민 안젤라
스콜라스티카 수녀님! 모이랑에서 수녀님 이야기를 듣고 저는 수녀님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안됐기도 했어요.
저도 수녀님처럼 좋은 일, 순교자의 일을 하고 싶지만 지금은 아직 너무 어려서 어린이전교회에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어요. 그리고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 작지만 한 달에 500원을 내요. 저도 크면 수녀님이 되어 순교자의 일을 하고 싶어요.
박예슬 안나
이곳은 너무 추워 귀가 아픈 겨울이에요. 그리고 어제는 첫 눈이 왔어요. 길거리에도 얼음이 언 데가 있어요. 이런 말씀을 드리면 더운 곳에서 고생하시는 선교사님이 좀 시원해지실까요? 정해인
수녀님, 불쌍한 어린이를 도와 주시고 전교하시는 선교사 수녀님께 우선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땀을 흘리며 전교하시는 모습을 상상하니 참 힘드실 것 같아요. 어린이전교회는 불쌍한 어린이들을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더욱더 많은 사람들에게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시길 빌게요. 성 보나
외국에서 고생하시는 선교사님! 이 카드가 선교사님께는 보잘것 별로 없겠지만 고생을 더는 데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넓은 아량을 가지신 선교사님들이 불쌍하거나 몸이 불편한 친구들을 돌보시니 제가 한결 마음이 놓여요. 김원열 이사악
불쌍한 사람을 돕는 선교사님은 정말 마음이 착하시네요. 저도 선교사님을 닮아 착한 어린이가 되겠어요. 성당도 빠짐없이 다닐게요. 하느님을 잘 따르고 믿고 이웃을 돕는 어린이, 친구들과 싸우지 않는 어린이가 되겠어요. 선교사님들을 사랑해요. 선교사님을 믿고 따르며 착한 마음을 갖는 어린이가 되겠어요. 정해미
그곳에 사는 아이들은 밥이 없어서 문제고.. 돈이 없어서 문제인데...하지만 저는 '뭘 입을까? 엄마한테 우동 치킨 피자 사 달라'고 하고... 맨날 배부른 고민을 하는데 거기에 있는 아이들을 생각하니 내가 미워져요. 그 곳에 있는 아이들은 전쟁이나 질병으로 부모님을 잃은 어린이가 많다면서요? 알고보니 저는 행복한 어린이였어요. 민분홍
저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소녀예요. 그래서 항상 선교사님들이 존경스러웠습니다. 성당에서 교황청어린이전교회 모임이
한 달에 한 번 있는데 저희보다 집안 환경이 어려운 친구들을 회비를 모아 돕고 있어요. 아직 어려서 직접적으로 선교 활동을 하지는 못 하지만 이렇게 모임에서 듣고 배우는 게 참 좋아요. 선교사님들이 세계 곳곳에
나가셔서 고생을 하시는 게 감사하구요. 힘내세요. 박안나
선교사님, 저는 아주 착한 소녀 용경이랍니다. 그곳은 날씨가 어떤가요? 여기는 날씨가 추운 겨울이에요. 선교사님에 비하면 저는 정말 편한 생활을 해요. 우리 성당의 어린이전교회 회원들은 매달 모여서 회의도 하고, 사랑의 성금도 내거든요. 착하죠? 지금 쓰고 있는 펜들은 제가 무척 아끼는 펜들이에요. 색들이 예쁘죠? 답장받으면 참 기쁘겠지만 어렵겠죠?
아침 점심 저녁 언제나 춥고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어요. 아침 저녁에는 고여있던 물이 얼어서 그 빙판에서 놀기도 하지요. 해외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실까요? 그 곳 어린이들에게 대한민국의 이야기와 우리들 이야기
좀 들려 주세요. 혜인 아녜스
저는 어린이전교회에서 선교사님들이 얼마나 수고하시는지 알게 되었어요. 선교사 신부님 수녀님들은 어떻게 그곳에 가시게 되었나요? 저 같으면 못 갈 거예요. 무척 힘드시겠지만 저희들을 봐서라도 힘내세요. 여기서 열심히 기도할게요. 유미
나의 어린시절/ 아니마 수사. 사랑의 선교수사회
멀고먼 학교를 맨발로..
안녕하세요? 인도에서 온 아니마 수사예요. 인도가 힌두교의 나라인데도 저의 어머니는 가톨릭 신앙을 가지고 계셨고 저는 일찌기 세례를 받아서 하느님과 가깝게 살았습니다. 학교에 갈 나이가 되었는데 어려운 가정 형편때문에 저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어요. 그리고 학교교육을 아예 받지 못하신 부모님은 왜 학교에 가야 하는지 잘 모르셨지요. 그런데 저는 친구들처럼 학교에 다니고 싶었습니다. 부모님의 허락없이 저는 집에서 멀리 있는 학교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맨발로 걸어 다녔습니다. 그리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성당에 들러 성모상 앞에서 묵주기도를 하였습니다.
마치 성모님이 저를 대견하다 생각하시는 듯 항상 웃는 모습으로 보고 계셨습니다. 제가 학교에 몰래 다닌 며칠 후에 부모님이 알게 되셨는데 아무 야단을 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정말 어렵게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졸업했고 고등학교 과정으로 선교학교를 다녔는데 너무 먼 거리였습니다. 역시 맨발로 학교를 다녔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어머니께서 주시는 아침을 먹고 오후 6시에 돌아와 점심 겸 저녁을 먹었습니다. 용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학비를 낼 수 있을까 하고 걱정하였는데 한 달 전에 미리 부모님은 학비를 내신 것입니다. 제가 부모님께 말씀드리지도 않았는데... "집이 어려우니 돈이 생기면 우선 네 학비 먼저 낸 것이란다."하시면서... 인도같은 나라에서
가톨릭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는데 어머니의 굳은 신앙생활은 저에게 큰 힘이 되고 또한 어릴적 저의 친구들에게도 감동을 주어 힌두교의 친구들이 저와 함께 성당에 다니곤 하였습니다. 어머니의 신앙생활과 사랑으로 저는 수사가 되었고 누나는
수녀님이 되었습니다. 저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지금 이렇게 한국에 와서 거리에서 주무시는 어려운 아저씨들을 돌보고 있답니다. 안녕!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