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해외선교 아르헨티나에서

2001. 1. 3. 오후 2:50:23

글자

1999년 선교생활 여름(7)호중~

한국인의 해외선교....

아르헨티나에서

 

알바레스

김 어거스타 수녀/ 성가소비녀회

 "주님, 주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을 가지셨는데, 우리가 주님을 두고 누구를 찾아가겠습니까?(요한 6,68).

 이 곳 아르헨티나(Argentina)에서 처음으로 가까이 만난 사람들은 환자들이었다. 그들의 식사를 도와 수저로 떠먹이면서 바라본 그들의 크고 선한 눈, 그리고 천진한 표정에 불안하던 마음이 놓였고, 하느님의 똑같은 백성이라는, 가톨릭의 보편성과 주님 안에 모두가 한 형제라는 뜨거운 형제애가 느껴져 곧 친근감이 생겨났다. 영혼과 육신이 모두 한 단어의 표현만으로도 우리의 말을 알아들었고, 우리 역시 그들의 표정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었다.

 첫날부터 봉사자들과 함께 병실 여기저기를 돌면서 힘있게 바쳤던 묵주 기도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힘과 위안이 되었던가!

 이렇게 하느님의 뜻만이 이루어 지기를 바라며 머나먼 이국 땅에서 선교 생활을 치험하고 있는 우리 수녀들은 수도회 창설 50주년이었던 1993년, 처음으로 남미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부에노스 아이레스 교구에 위치한 "떼오도로 알바레스 박사 병원"이라는 무료 시립병원에 선교사로 처음 파견되었다. 가톨릭 국가인 아르헨티나는 시립병원 규정산 신부, 수녀가 근무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그러나 점차로 성소가 감소하는 문제가 발생하자 수도회가 병원 업무로부터 조금씩 손을 떼게 되어 요즘엔 병원에서 완전히 철수하는 사례를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반대로 교회에서는 병원 사목에 젊고 활동적인 신부를 배치하여 봉사자들을 활성화하고 병원 사목의 중요성을 계속해서 강조하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 경험상으로 볼 때, 현대에 와서 병원은 선교지로서 아주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병원은 하느님의 존재를 불필요한 것으로는 생각하는 현대인들에게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는 좋은 장소이며 멀리서만 보던 신부, 수녀들을 가까운 곳에서 자주 접촉하고, 대화할 수 있음은 물론 시중과 돌봄, 도움의 소길을 통해 하느님 사랑의 체험을 경험하게 해주는 좋은 자리가 되기 때문이다.

 이 곳 알바레스(Alvarez)병원은 46년간 원죄없이 잉태하신 마리아(imaculata concepcion) 수녀회가 일해오다가 병원 사목에 교체할 수녀들의 부족 등, 이런저런 사정으로 철수하게 되었고, 1년간 비워진 수녀님들의 자리에서 다시 활동할 수 있는 수도회를 찾던 중, 마침 교포 사목을 하고 계시던 성가소비녀회 수녀님들과 연결이 되었다. 우리의 카리스마(고유정신)와 하느님의 일을 생각하면서 현장에 뛰어들어 이 곳에 오기까지에는 플로레스 교구 주교님과 당시 원목 신부님, 봉사자들, 특히 갈멜 수녀님들의 특별한 기도가 있었다. 더욱이 동양인으로서 이 곳에 선교사로 왔음이 또 하나의 신비가 아닌가 싶다.

 그 당시 플로렌스 교구의 교구장이셨던 호르헨(jorge)주교님의 소박한 이야기 한편을 소개하고 싶다. "나는 성요셉과 소화 데레사 성녀에게 그동안 열심히 구해온 은혜에 대해서 수녀님들의 도착과 더불어 한가지 표징을 주시기를 청했습니다. 흰장미 한 송이!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채, 나는 흰장미 한 송이를 보내달라고 성모님께 청했습니다. 드디어 수녀님들이 공식적으로 병원에 도착하는 날, 병원의 임원들과 직원들 그리고 신부님들과 수녀님들이 함께 모여 간단한 종교적 환영식을 갖기 위해 한자리에 모였습니다. 기도를 하고 수녀님들게 축복을 주었을 때, 나는 감실 앞의 아주 작은 꽃병에 한 송이의 꽃이 꽂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흰장미 한 송이였습니다. 바로 주님께서 이렇게 일을 이루어 주셨던 것입니다."

 우리가 일하고 살고 있는 이 병원은 무료 시립병원으로 1901년에 세워졌다. 오래된 만큼 구식 건물로 2층식 지어진 병동이 정원을 중심으로 각기 떨어져 있어 공간이 꽤 넓은 편이다. 내과, 외과, 정형외과, 산부인과, 비뇨기과, 소아과, 정신과, 피부과, 흉부과 등의 19개 진료과가 있고, 그 밖의 서비스 부서와 운영, 관리, 보조 부서로 나뉘어져 있으며, 우리는 종교 부서에 속하여 일하고 있다. 의사가 490명, 레지던트가 125명, 간호사가 232명, 기술분야 지구언이 103명, 관리·서비스 분야의 직원들을 총망라하여 1100명의 직원이 있으며 입원환자를 위한 침대가 응급실을 포함하여 400여 개, 병동은 총 11병동의 대규모 병원이다. 병원 구석 구석에 작게라도 전문분야를 모두 갖추고 있다. 모든 것을 재활용해야 하는 등 그 살림이 어렵지만,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도 살림을 이끌어 가는 그들의 알뜰함에 놀라기도 한다.

 주위환경을 살펴보면, 예전에 이 곳은 별장 동네였던 까닭에 집들이 크고 웅장하다. 지금은 모두 양로원으로 바뀌어져 운영되고 있는데 병원을 중심으로 위치해 있다. 그래서인지 가끔 병원은 양로원이 무색할 경우도 있다. 또한 몇 년 사이에 병원 주위로 상점들이 생기고, 그 상가들 중에 한국인들의 자주 보게 된다. 무료병원인 만큼 병원을 찾는 사람들은 보험에 가입되지 못한 가난한 사람들과 큰 병원이 없는 전국 각 지역의 사람들 그리고 이 나라 근방에 위치한 파라과이, 우루과이, 페루, 볼리비아 사람들이 주를 이루고 있고 , 최근에는 한국인을 비롯한 동양 사람들(중국, 대만, 조선족)이 많고 오고 있다. 자주 드나드는 환자들로는 행려자들과 알콜·마약 중독자들 그리고 에이즈 환자, 결핵, 암 환자들이 있으며 노인들의 장기 입원이 많아지기도 한다. 이곳은 가톨릭 국가인 만큼 각 동네 중심에 성당이 있고, 전례도 상당히 토착화되었다. 더구나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이 나라의 수도인 까닭에 많은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으며 상업과 공업이 많이 발달된 큰 도시이다. 또한 역사 깊은 성당도 많고, 많은 신부님들의 열심한 모습과 활동 등을 볼 수 있다. 워낙 큰 나라이다 보니 다른 많은 도시에는 사제 부족으로 인해 동네에 큰 성당이 하나만 있거나, 사제 한 명이 여러 곳을 돌면서 미사를 하는 일도 있어서 안타깝다. 이 속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영세를 받고 학교에서 첫 영성체 교리교육을 받게 된다. 성당 앞을 지나게 되면 걸어가는 사람이나 차안의 사람이나 모두가 성호를 긋는다. 또한 성모님에 대한 살도 극진하여 성모송을 모르는 사람은 극히 드물고 사용하는 언어에서나 새오할 안에 가톨릭 신심이 몸에 배어있음을 느낄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믿음이 강하다고 이야기하지만, 점차 다른 경향을 보이고 있다.

  경제적으로 빈부의 차이가 심해지고 이혼 가정이 많아지고 미혼모가 속출하면서, 점차 마약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사회가 불안해짐에 따라 신흥종교(우리가 알고 있는 종교 외에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많은 종교)들이 이웃 나라 또는 인도 등 아시아에서 들어오거나, 생겨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점차 가톨릭에서 개신교로 혹은 이상한 종교로 개종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그 원인은 사랑을 주고 받을 수 있는 따스하고 작은 공동체를 만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간혹 하느님은 믿지만 가톨릭 교회는 믿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한다. 유아세례를 받고 첫영성체 교리도 받은 이들이지만 이들은 여러 종교의 교리 차이를 잘 모르고 있고, 자기 나름대로의 하느님에 대한 믿음만이 있을 뿐이다. 선교사라는 이름으로 온 우리는 이 나라가 하느님을 전혀 모르는 물모지가 아니고 하느님께 대한 신심 활동도 많지만 선교활동에 있어 참으로 또 다른 어려움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교회 없는 하느님의 신자들이 많은 이 곳에서 우리 가톨릭은 어떻게 선교해야 하는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새삼 하느님의 이끄심과 돌보심을 다시금 되돌아 보며 많은 감사와 앞으로 이루실 일에 대한 희망과 믿음을 느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매일 매일이 그렇게 새롭고 낯설기만 했던 날들, 눈뜨면서 창가로 들려오는 낯선 액센트의 가스떼쟈노(아르헨티나어)그리고 미소조차 어색하게만 느껴졌던 날들이 많은 기도와 도움으로 차츰 극복되면서 나는 정말 적극적이고 용감해지기 시작했다. 많은 것들을 새롭게 익혀가면서 병원을 청소하는 사람들로부터 직원들과 환자들의 소리를 알아 듣기 시작하였다. 밖으로는 플로렌스 교국의 수녀들과 모임, 회의, 강의 등이 있을 때, 우린 비록 잘 알아듣지는 못할지라도 열심히 참석하여 그들과 함께 하였고, 그들 수녀원 행사에서 전례, 성가, 행사 진행 방법 등을 배우며 관계를 맺어갔다. 동양 수녀로서는 처음이기에 우리는 그들에게 무언가 새로운 의미를 던져주고 있음도 사실이다.

 이 곳 병원에서 우리의 일은 아주 단순하고 간단하다. 환자들과 함께 하는 것 뿐이요. 그들의 손발이 되고 가족이 없는 이에게 가족이 되어줄 뿐이다.

 우리가 병원을 거닐 때, 병실을 방문하여 환자 한 명, 한 명을 만날 때, 그들은 우리를 통하여 하느님을 보고 그 사랑을 되살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하느님을 선물한다. 아픈 그들에게 기쁨과 건강한 모습, 밝음과 미소를 보여 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바로 우리들, 수녀이기도 하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환자들의 식사와 세탁을 돕고 필요한 물품을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낯선 병원에 와서 안심하고 신뢰를 지닐 수 있도록 돕고, 기도 해주는 데 힘썼다. 환자수에 비해 간호사수가 적고 일의 양이 많기에 환자들을 돌보는 가족이 없거나 못 올 경우 환자들은 그냥 혼자 견디기 일쑤다. 우리 또한 그들 모두에게까지 손이 미치지 못하기에 봉사자들의 도움을 청하고 있다. 특히 내과 병동에는 행려자들, 혼자 살다 병들어 오는 사람, 노인 등의 장기 입원 환자 등 돌볼 사람이 많다. 저녁이 되면 시계를 보면서 우리를 기다리는 그들이 안스러워 한 번 더 병실을 돌게 되기도 한다. 밤이 되면 더욱 집이 그리워져 지루하고 밤이 길기만 하다고 힘들어 하는 그들과 함께 묵주기도를 드리고 성서도 읽고, 둘러앉아 얘기도 하면서 많이 가까워지고 자신들의 삶과 고통을 나누면서 또 다른 삶의 모습을 보게 되기도 한다.   

 

한국인의 해외선교

  다양한 인종이 함께 모여 사는 나라인 만큼 우리가 만나는 환자들 역시 다양하다.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독일, 동유럽 국가를 비롯해 러시아에서 이주해 온 사람들과 우루과이, 볼리비아, 페루, 파라과이 등지에서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이 나라를 찾아 최근에 이민해 온 사람들도 있다.

  우리가 이 곳 말을 조금씩 하기 시작하면서 우리 교포들의 말을 돕기 위해 그들과 동행하기도 하고, 중국 사람인 경우에는 한문을 써서 대화하기도 한다. 우리는 60명 가량의 봉사자들과 두 명의 성체 분배자와 함께 활동하고 있다. 봉사자들은 자기 역량에 따라 자유로이 자신의 일을 선택하여 봉사한다. 식사를 돕는 사람, 말씀을 전하는 사람,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 수염과 머리를 깍아 주는 사람, 묵주기도를 하는 사람, 영세나 첫영성체 교리를 가르켜 주는 사람 등으로 분류되어 진다. 10년 이상 계속 봉사하고 있는 봉사자들도 꽤 있어 또다른 가족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주일과 큰 축일에는 병동과 병실을 바꿔가며 병자을과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첫 주일은 봉사자들을 위한 미사와 함께 미사 후엔 간단한 강의와 모임을 갖고 그 때마다 전례 행사에 대한 논의와 필요한 사항을 결정한다. 또한 이들을 위해 1년에 한 번은 피정, 한 번은 친목 모임을 가지며 생활매괴를 한 달에 한 번씩 뽑도록 준비해서 기도로 그들을 엮어 주기도 한다. 환자들을 위해서는 전례시기별로 대림, 성탄 시기, 사순시기 등의 준비를 하는데 사순시기에는 금요일마다 병실을 14처로 나누어 ‘십자가의 길’기도를 봉사자, 병자들과 함께 병실을 돌며 바치고 있고, 사순 4주부터는 작은 십자가를 십자가 동참의 의미로 나눠주고 있다. 이런 전례행사를 병실에서 많이 모여 할 수 있음은 아마도 가톨릭 국가의 혜택이 아닌가 싶다.

 우리 환자들 중에는 에이즈 환자가 나날아 늘어가고 있다. 그들만을 수용하는 병원이 있지만 다 수용하지 못해 일반 병원에서도 그들을 받을 수 밖에 없다. 처음에 우리가 일하기 시작할 때만 해도 적은 수였으나 해마다 조금씩 늘어가고 있다. 젊은이들이 결핵이나 고열로, 피부병으로 입원하면 거의 틀림없이 에이즈에 걸려있음을 알게 된다. 이들은 자주 입원하고 장기적으로 입원하기 때문에 더욱 가까이 사귀게 되고 친해지게 된다. 그들의 삶을 함께 돌아보고, 함께 서서히 하느님께로 나아가도록 기도하면서 그들이 아픔 속에서도 그들의 병을 받아들이는 어려운 과정을 돕는다. 자신의 처지를 잘 견디어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한편으론 놀랍기도 하다. 그리고 끝날 것 같지 않은 병마와 애처롭도록 싸우는 암 환자들의 모습, 매일 이것저것 요구하고 트집잡고 불평했던 환자의 갑작스런 죽음, 중환자실에서의 고통과 무력감을 본다. 한편 여러 곳에서 인간의 존엄과 귀함, 사랑을 보기도 하다.

  그동안 우리가 병실에서 만난 사람들의 수는 상당히 많다. 시립병원인 만큼 아픈 사연, 가난의 이야기, 어쩔 수 없는 딱한 사연도 많다.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은 사회의 발전과 GNP의 수치가 높아짐과는 상관없는 가난한 사람들이다. 이제 이 곳에 익숙해졌고, 의사, 간호사, 직원들과도 친숙해져서 병원을 내 집처럼 거침없이 어디나 드나들게 되었고, 자연스레 스치면서 인사를 나누곤 한다. 또한 이 병원을 나서면 낯익은 얼굴들을 거리에서 많이 만나게 된다. 입원했던 환자들, 그 가족들 그리고 스쳐간 많은 봉사자들, 겨울이 되면 다시 병원을 찾게 되는 행려자와 노숙자들을 여기저기서 자주 마주치곤 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 활동을 돕는 주위 성당의 까리따스를 비롯하여 한국인(교포) 성당에서도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너무나 당연히 청하고 요구하는 이들에게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아버지의 자비로우심같이 여러분도 자비롭게 되라."는 말씀을 상기하면서 전달자로서 그들의 요구에 기꺼이 응하려 애쓴다. 몇 해를 거치면서 우리는 우리 삶의 자세도 1997년 11월에 아르헨티나의 선교 지역이라고 불리는 챠코(chaco)지역의 아비아떼라이 공소에 세 수녀님이 파견되었고, 1998년 12월에는 그 곳에서 조금 떨어진 드레스 이슬레따스(Tres Isletas)의 양로원에도 두 수녀님이 파견되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면, 나를 단련시키고 성숙시켰던 많은 일들이 생각나고 하느님께 감사함을 느낀다. 공동체가 함께 하나되어 겪어냈던 아픔들을 통해 하느님의 손길, 그 이루심이 무엇이었는지 곰곰이 묵상하게 된다. 주님께서 시작하신 일이시니 잘 끝내주시리라 믿으며 우리의 창설자의 말씀처럼 우리는 가난한 이들에게 내려가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없이 마음이 비워져야 함을 느낀다. 마치도 "기뻐하라, 소비녀"의 구절 처럼.

너를 몰라주고 잊어버리는 사람이 있어도 기뻐하라. 네 정신과 육신이 못생겨도 기뻐하라. 사람들이 네 뜻을 반대해도 기뻐하라.

네 뜻이 정해지지 않아도 기뻐하라. 너를 믿어주지 않아도 기뻐하라. 너를 말째로 두어도 기뻐하라. 너를 한 번도 참여시키지 않아도 기뻐하라. 너를 쓰지 않아도 기뻐하라. 네게 천한 일을 시켜도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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