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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사랑방 |
우도 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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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인숙/우도 공소 선교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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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도 공소의 이야기를 여러분에게 전하게 되어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1901년 신축교난 때 4명의 피해자가 있을 만큼 신앙의 역사를 가진 우도에는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어릴 때 외국 신부님이 조각배를 타고 오셔서 미사를 했던 모습을 회상하시곤 합니다. 지금도 매주 본당 신부님이 배를 타고 오셔서 미사를 드립니다. 주일에 성산포 항에서 첫 배로 이 곳에 오셔서 미사를 드리시고 본당의 교중미사를 위해 떠나십니다.
우도는 바다와 해, 바람과 별이 가깝게 느껴지는 자연이 있어 하느님의 체험이 충만한 곳이지만 일손이 많이 필요한 곳입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물질하는 해녀들이고 밭농사로 무척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교적상 170여 명의 숫자를 가지고 있지만 고등학교는 제주시로 나가야 하고 경조사, 종합진료, 육지에 있는 자녀들 방문 등으로 유동성이 많아 6명 정도 미사에 참여할 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이유로 현대인들이 하느님보다 일을 우선적으로 인식하는 악순환의 연속이 된다고 본당 신부님은 걱정하십니다.
공소신자들의 연령층은 다양합니다. 유아, 어린이, 청년, 장년, 노년이 골고루 섞여 있어서 서로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주어 소공동체만이 느낄 수 있는 정감이 있습니다. 저희 공소는 성서 말씀을 주제로 한 해를 시작합니다. “올해는 늘 기도하십시오. 항상 기뻐하십시오. 어떤 처지에서든지 감사하십시오.”(Ⅰ데살로니카 5,16-18)입니다. 하느님 말씀 안에서 살고자 성서 읽기 모임이 생겼고 새벽에 모여 성서를 읽고 씁니다. 그리고 주일 예물 봉헌 때 성서쓰기 공책을 봉헌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달 세 구역의 소공동체 모임에서는 복음 나누기와 자유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처음에는 복음 나누기를 무척 어려워하는 모습이었지만 요즈음은 복음 나누기와 자유기도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제는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로워진 것 같습니다. 작은 모임이라도 매달 돌아가면서 각 가정에서 기도하는 것을 행복으로 알고 있으니까요.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은 두 팀이 있습니다. ‘천주의 성모’팀은 구성원이 할머니가 많으시지만 항구한 신앙 생활의 뿌리가 되어 주시고 ‘사랑하올 어머니’의 팀은 젊은 층이라 활동을 많이 합니다. 아직 봉사의 개념보다 교회의 직무를 감투로 인식하는 작은 공동체의 약한 점이 있지만 레지오 마리애의 역할도 해 나아가고 있습니다. 공동체의 일을 하는데 각 분과의 역할이 중요하기에 공소에는 매달 사목 월례 회의를 합니다. 공동체의 일을 결정하고 계획하기 위해 다양한 생각을 나누고 각 분과의 역할을 수렴하면서 일치하고 있습니다. 소년 쁘레시디움도 중학생 한 팀, 초등부 두 팀이 준비하고 있습니다. 꾸리아에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 때문에 자체적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어린이들은 가끔 질문합니다. ‘성모님의 군대’라는 말에, 자신은 군인이 되기 싫고 무기가 묵주라면 총칼은 왜 없느냐고.. 고개를 갸우뚱하면서 따라옵니다. 우리 공소의 보배들인 주일학교 어린이들은 25명입니다.
어린이 전교는 더욱 가능성을 가진 일입니다만 주일학교 교사의 양성이 어려워 힘들 때가 많습니다. 토요일에 어린이들은 말씀의 전례와 주일학교 교리를 하고 있습니다. 부모님을 교리교사로, 그리고 고학년을 교리교사로도 많은 준비를 해 보았지만 계속 출석하지 못하는 관계로 어린이들에게 혼란만 있습니다. 선교사인 저는 무얼 하느냐구요? 교사의 보조역할을 합니다. 아직 우리 어린이들은 어린이 선교사로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갈팡질팡이지만 모이랑 모임(교황청어린이전교회 회보인 월간 ‘모이랑’의 이름을 따서 부르는 이름)을 기다리는 것을 볼 때면 마음이 기쁩니다.
첫 주간에는 첫 첨례를 합니다. 목요일에는 성시간, 금요일에는 십자가의 길, 토요일에는 성모신심기도회를 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전례에 익숙하지 않아도 예수님의 현존에 나아가는 것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매일 다락방 기도모임을 하는 가정도 있습니다.
제가 파견되어 올 때 아들 딸을 바다에 잃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던 가정의 이야기를 말씀드리겠습니다. 그 가정은 자연 잉태가 불가능해서 시험관 아기를 두 번이나 시도했었습니다. 어느날 기도 중에 성모님이 “희생을 바치면 아기를 주겠다.”고 하셨답니다. 성모님이 주실 아기라면 교회가 허락하지 않는 방법을 사용하실까요? 그래서 성모님의 뜻을 알아차리신 자매님은 포기를 하셨습니다. 그런데 얼마 안 있어 자연적으로 임신을 하였고 하늘이 내린 아기, ‘하린 (세례명은 그라시아)’이라고 이름 지은 예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이 가정은 어느덧 매일 딸 셋이 엄마와 함께 기도하는 가정이 되었습니다. 딸들에게 엄마의 좋은 점을 물어 보면 ‘기도하는 엄마’라서 참 좋다고 합니다. 이렇게 성모님처럼 기도하는 모습을 자녀에게 보여 주는 어머니가 있는 가정은 아름답습니다.
신자들은 공동체적으로 사제들을 위하여 매달 기도모임도 봉헌하고 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교회는 계속해서 성장하고 있다고. 비록 여러 핑계로 모든 신자들이 교회를 떠난다 하더라도 단 한 사람이 예수님을 위해 성전을 지킬 수 있다면 하느님의 얼이 감추어져 있는 것이라고. 그래서 지금 저는 많은 추수를 할 수 없어도 교회의 과거, 현재, 미래의 은인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저는 신자들이 신앙생활에 힘겨워 할 때 누군가 해주신 말씀을 들려 줍니다. 하느님은 살아 계신다고.
이 곳에서 선교활동을 하면서 가끔 인식하는 점은 제주인의 역사입니다. 우도 공소는 제주 역사 안에 있었던 중요한 사건 4·3항쟁의 피해가 없는 고요한 곳입니다만 제주도는 4·3사건을 통한 아픔의 흔적이 많이 있습니다. 4·3항쟁이란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사주 아래 한국의 남단 제주도 한라산에서 적색 무장 폭도가 봉기한 사건입니다. 이것이 정부의 시각으로만 본 제주도 폭동 사건으로 왜곡되어 알려진 사건입니다. 제주도 전역에 이 아픔이 스며있고 많은 남자분들이 이 때 끌려가서 죽었기에 남자들의 숫자가 적다고 합니다. 이 아픔이 인격적으로 치유되길 희망하고 공소 신자들도 그 치유에 함께 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었으면 하는 작은 소망과 또한 하느님의 사랑이 충만하길 빌어 봅니다.
가끔 초상이 나면 작은 섬에서는 혼란이 일어납니다. 천주교식, 유교식, 미신적인 장례문제에 대한 혼란입니다. 가족 간에도 믿음이 일치하지 않아 연도를 바치는 중에도 소란스러움이 간혹 있습니다. 공소에서 장례미사를 하고 집에서 가족들이 모여 제사를 또 한 번 지내는 모습에 제 자신도 혼란스러웠지만 이제는 전통 의례와 절충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주보로 모시는 우도 공소에서 우리 어린이들이 그분의 성상을 보고 ‘허준’이라고 해서 웃을 때가 많지만, 신앙 안에서 성장하는 기쁨이 곧 선교사인 저의 기쁨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