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11호-논단

2002. 1. 4. 오후 12:31:07

1
글자

논 단

 

 

 1.종교다원사회에서 한국 기독교 선교 문제

   김경재 목사(크리스챤 아카데미 원장, 한신대 교수)

 

 2.다종교 현상과 가톨릭 교회

   조교만 신부(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3.다종교 현상과 불교

   진월 스님(조계종, URI Korea 대표)

 

 4.이스라엘은 타종교에 어떻게 대처하였는가?

   민영진 목사(대한성서공회 부총무, 구약학)

 

 

 논 단 1

김경재 목사

(크리스챤 아카데미 원장, 한신대 교수)

 

 종교다원사회에서

한국 기독교 선교 문제

 

   * 아래 각 논단의 각주는 원본에 있습니다.

 

  1. 이 글의 목적과 성격

 

  지난 20세기 후반기에 지구문명사에는 여러 가지 의미심장한 일이 일어난 시기였다. 무엇보다도 교통통신 수단과 정보화 가속으로 인해 인류는 지구라는 행성 위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식구로서의 ‘인류의식’에 명실공히 도달하였다. 지구촌 시대에서 인류가 눈을 뜨고 발견한 세계는 다양한 문명을 양육해 온 다양한 종교문화가 숨쉬고 있다는 엄연한 현실의 발견이다.

  사무엘 헌팅톤은 정치학자답게 매우 현실적으로 인류는 갈등관계 속에 항상 있게 되는데, 21세기는 정치적 이데올로기 갈등보다 문명간의 종교 패러다임 이질성으로 인한 충돌이 우려된다고 피력했다.

  이러한 거대한 문명 전환기에 처하여 지난 20세기 후반 가톨릭 교회의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1962-65년) 종교다원현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이냐에 대하여 그리스도교 신도들과 신학자들에게 획기적 사고의 전환을 촉진해 준 역사적 이정표였다고 보여진다.

  그리스도교와 다른 종교적 토양 속에서 문명을 형성하고 삶을 영위해 온 문명 공동체 역시 그리스도교 문명권 안에서 살아가는 신앙인 못지않게 도덕적이고 철학적이며 예술적이고 영성적임을 알게 되었다.

  이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Nostra aetate)1)이 명시하는 정신에 따라 한국 가톨릭 교회는 한국의 비그리스도교 형제들과 이웃종교들에 대하여 관용과 존중, 배움과 포용정신으로 한국이라는 다종교 사회에서 효과적인 전교활동을 이뤄가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이 글의 목적은 이러한 종교다원사회 속에서 종교간의 대화 협동정신이 더욱더 가속화되어가고 또 현실적으로 요청되는 사회상황 속에서, 한국 기독교(개신교)는 왜 이 문제를 한국의 가톨릭 교회가 취한 태도처럼 보다 포용적 입장으로 전환하지 못하는가 그 이유를 선교 신학적 관점에서 분석하고 그 극복 대책을 제시해보려는 것이다.

 

  2. 타종교에 대한 한국 기독교의 현황과 그 신학적 의미

 

  한국 기독교의 타종교에 대한 태도를 고찰 하기 위해서 먼저 타종교에 대한 태도나 입장을 세 가지 유형별로 나누어 설명했던 앨런 레이스(Alan Race)의 견해를 먼저 소개해야 하겠다.2) 널리 알려져 있는 세 가지 유형은 배타주의(Exclusivism), 포용주의(Inclusivism),그리고 다원주의(Pluralism)이다.

  배타주의 입장은 유일무이한 계시종교, 참 종교, 그리고 구원종교인 기독교 이외의 타종교는 이교사상, 비진리, 우상, 인간종교, 거짓종교등으로 매도되면서 일체의 대화 협동을 거부하며 배타적 태도를 견지하려는 입장이다. 가급적 뜨거운 선교열을 통하여 그들을 ‘개종’시키거나 불가능하면 ‘정복’해서라도 기독교화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3)

  포용주의 입장은 세계의 다양한 종교들 및 종교문화가 하나님의 인류구원 경륜 속에서 이루어져 온 섭리의 결과라고 보며, 비록 불완전하지만, 그들 종교 안에도 구원 진리와 계시적 진리와 치유의 빛이 있다고 본다. 다만 그 종교들은 하나님의 직접적 화육 진리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증언되고 계시된 진리의 빛에 비하여 볼 때, 불완전하고 모호성에 휩싸여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진리 안에서 타종교의 예비적 성격은 온전하게 성취되고, 그 불완전성은 완성되어야 할 것이라고 보는 입장이다.4)

  다원주의적 입장은 현실적으로 종교간의 비교우열 논쟁은 의미가 없다고 본다. 왜냐하면 세계 고등종교들은 하나님의 구원계시에 대한, 또는 ‘궁극적 실재’에 대한 문화-역사적이고 해석학적 응답의 다양성에서 기인한 결과물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서로 다른 구원 패러다임을 지닌 역사적 종교들 상호간에는 상응성과 공통성 못지않게 특수성과 고유성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성숙한 사람이라면 각 종교들간의 공통성 못지않게 차이성을 축복으로 받아들이고, ‘상호보완’과 ‘조화정신’으로서 서로 배우고 협동하자는 입장이다.5)

  이상의 세 가지 입장 중에서, 한국 기독교는 배타주의 입장을 취하는 교회나 신도들이 압도적으로 많고, 진보적 교회 목사 지도를  받는 교회 신도들은 포용주의 입장을 견지하지만, 지극히 일부 소수 학자들이나 젊은 세대중 일부가 다원주의적 입장을 취하고 있는 형국이다. 정확한 통계 수치는 아니지만 일반적으로 한국 개신교의 총 신도 숫자는 850만-1,000만 명으로 추산한다. 종교사회학적으로 신빙성 있는 객관적 통계 수치는 아니지만, 한국 기독교 신도 중에서 60% 이상이 배타주의적 입장이요, 40% 미만이 포용주의적 입장이요, 5% 미만이 다원주의적 태도라고 추정된다. 그러면, 같은 한국사람으로서 그리스도교 신앙에 귀의했으면서도 한국 가톨릭 신도들과는 전혀 다르게 왜 타종교에 대한 배타주의적 입장을 가지게 되었는가? 그 교회 선교 역사적 배경, 신학및 교리교육적 배경, 그리고 교회론적 선교 현장의 배경을 좀더 자세하게 분석해 보기로 하자.

 

  3. 한국 기독교 신도들의 ‘배타주의’ 태도 형성의 배경

 

  모든 일에는 원인이 있게 마련이다. 한국 기독교 교인들이 타종교에 대하여 매우 배타적 태도를 갖게 되고, 한국의 전통문화와 기독교 신앙간의 ‘문화갈등’을 남달리 많이 느끼게 된 데는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나누어 고찰할 수 있다.

 

  (1) 기독교 선교 역사적 배경

  우선 무엇보다도 기독교 선교 역사적 배경을 한국 기독교 신도들이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입장의 먼 원인으로 분석해 볼 수 있다. 또한 선교 역사적 배경으로서는 두가지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한국에 기독교가 본격적으로 전래되기 시작한 1880년대는, 이 땅에 가톨릭 전교가 이뤄진 지 100년쯤 지난 때이므로, 한국 가톨릭의 전교 역사에서처럼 순교를 동반한 심각한 박해시대가 지난 ‘개화시기’ 였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나라 전체가 `개화’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는 ‘개화시기’의 물결을 타고 ‘개화의 방편’으로서 기독교가 기능하면서 한국에 전래되었다는 사실이다.

  한국 기독교가  `개화물결’을 타고 전래되었다는 사실은 그만큼 개화를 열망하는 대중들의 욕구에 호응하여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는데 좋은 조건을 맞이하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할 수 있다. 아시아 여러 나라에는, 대체로 서방기독교 문명국가들의 식민지 지배정책에 편승하여 기독교 복음이 전파되었으므로, 아시아 여러나라 국민들의 마음 속에 기독교는 ‘서양 문화 제국주의 세력과 본질상 동질의 것’으로 생각하는 깊은 불신감이 잠재되어 있다.

  18-19세기 서구 기독교 문명국가들의 식민정책에 희생이 된 아시아 국가들이 기독교에 대한 태생적 불신감을 갖는 것에 비교해 볼 때, 한국의 기독교 선교사들은 ‘개화와 해방’의 복음 전파자로서 받아들여졌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초창기 기독교에로의 개종자는 ‘개화주의자’와 동의어라 할만큼 복음 선교, 신교육, 서양 의료제도가 삼박자로서 조화를 이루며 복음 선교가 이뤄졌다. 1880년대부터 1910년대 이르는 초기 30년동안 특히 한국 기독교의 전래는 복음 수용이 ‘개화의 방편’이라는 시대 문화적 요구와 상응하여 전파되었던 것이다.6)

  한글 보급과 문맹의 퇴치, 사립학교 설립, 병원의 설립, 여성 권리 신장과 남녀평등권 고양, 미신타파와 장례의식의 변화등 개화의 충격과 열풍은 1910년대 일본에게 나라를 잃은 국권회복운동과 연계되면서 더욱 가속화되었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가 ‘개화시기’에 개화 열풍을 타고 전래된 것은 장점 못지않게 처음부터 커다란 문제점을 그 안에 이미 내포하고 있었던 것이다. ‘개화’란 이미 그 이전 사회단계 또는 문화전통은 개화되지 못한 상태 및 미성숙 단계라는 의식이 잠재된 것이다. 그러한 의식은 서구 계몽주의시대에 ‘계몽’의 이름으로 모든 기존전통의 권위와 전통유산들이 일단 비판적으로 의심받고 성급하게 폐기처분되는 경박성을 노정했듯이, 한국 기독교의 전래시기 ‘개화운동’과 맞물려 들어온 기독교 지도자들과 신도들의 의식 속에 ‘전통’에 대한 불신과 거부, 전통으로부터의 탈출 욕구, 전통의 무거운 억압으로부터 해방의식이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전통’이란 ‘전통문화’라는 문화적 형태 속에 담겨져 전승되는 것이요, ‘문화의 실체는 종교’7) 이기 때문에, 한국 기독교의 초기 전래시기(1880-1910년) 한국 기독교로 개종을 단행한 대부분 신도들은 무교는 물론이요, 당시 조선사회를 지배해 온 유교의 가치질서와 유불선 삼교의 유산 마저도 일단 부정과 의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이다.

  마을의 무속과 무당을 철폐하는 것은 물론이요, 유교의 번잡한 제사제도나 불교라는 고등종교의 ‘상징체계’들도 깊은 고찰 없이 일단 부정되는 형국이었다. 왜냐하면, 한국 기독교의 전래대상은 주로 평민들과 하급계층이었는데, 기존의 전통종교들이 그들의 현실적 고통을 제거해 주거나 위로해 주지 못했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둘째, 선교 역사적 측면에서 주목해야 할 점은, 1880-1910년대 한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선교사 집단들이 대체로 복음주의적 선교 열기에 불타는 젊은 청년 전도자들이었기에, 동아시아 문명의 깊은 종교적 유산에 대하여 무지하거나 매우 피상적인 이해를 했던 세대들이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한국 기독교의 전도자들 중에는 중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마태오 리치같은 선교사들이 아니었다. 초기 한국에 기독교를 전파한 선교사들의 배경에 대하여 한국 기독교의 교회사가 민경배 교수는 이렇게 요약하고 있다.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한마디로 복음주의자들(evangelicals)이라 할 수 있다. 부흥회적인 형태의, 감리교적 생태의 선교사들이라 할 수 있겠다.

  이 말은 긍정적인 공헌을 말하는데도 할 수 있는 말이지만, 동시에 부정적인 면을 언급하는데도 꼭 같이 불가피 한 근거가 된다는 내력을 가지게 된다. 신학의 빈곤, 교회론의 약화, 사회 부재의 영혼구제, 정치무관의 정숙주의(靜肅主義), 합리성의 결여, 그리고 이원적(二元的)인 신앙의 전제가 그것이다. 오랜 기복을 통하여 이것이 한국 교회사의 저류(低流)에 도도히 흐르는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있게 된다.8)

  위와 같은 교회사가 민경배 교수의 말은 왜 한국 기독교가 그 이후, 한국의 전통종교들에 대하여 배타적 태도를 가지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다.

  선교사들도 시대의 아들 딸들이기 때문에, 그러한 그들의 시대적 제약을 그들의 책임으로만 모두 돌릴 수는 없다. 왜냐하면 18-19세기는 물론이요, 20세기 초기까지만도, 서구 사상계를 지배하는 시대적 풍조가 아시아 종교나 문화에 대한 이해가 매우 적었고, 헤겔류의 역사의식에 사로잡혀 아시아 종교문화는 인류사 발전단계에서 극복 지양되어야 할 저급한 단계의 ‘문명유산’으로 이해되었기 때문이다.

하물며, 주로 어려운 한자문자로 기록되었고 전승된 동양 종교와 정신문화의 진수들을, 평균 연령 20세-30세로 추정되는 영미계의 초기 전도사들이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크게 비난 할 수 없다.

  여하튼 왜 오늘날 한국 기독교가 대체로 타종교문화에 대하여 배타적 입장을 지니게 되었는가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초기 선교사들의 시대상황적 배경, 특히 ‘개화시기’에 들어온 기독교 선교가 ‘개화’의 대상으로서 전통종교까지를 포함시킨 결과라는 것을 이해함이 중요하다.

 

  (2) 장로교 초기 선교사들과 목회자들의 성경지상주의

  한국 기독교가 타종교에 대한 배타주의적 태도를 형성하게 된 더 중요한 근본 원인은, 한국 선교사들이 초기 한국의 목회자 육성과정에서 주입시킨 ‘근본주의 신학’의 주요 교리들 특히 ‘성경의 무오설’이 크게 작용하고 있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 역사는 구미 개신교 역사보다도 짧기 때문에, 비록 장로교 교파가 아니더라도 성경관에 있어서 장로교의 보수적 견해 곧 ‘성경의 문자적 무오설’을 대체로 받아들이는 경향이라는 점을 기억함이 중요하다.

  1910년 이후, 한국에 파송된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의 신학적 배경은 대체로 미국에서 1910년대 이후 강력하게 형성된 ‘근본주의 신학운동’의 영향 아래 있었던 선교사들이었다. 신학적으로 개신교의 ‘근본주의’(Fundamentalism)란 18-19세기에 유럽에서 일어난 자유주의 신학운동에 대한 반동으로 발생한 신학적 입장을 두고 일컫는 말이다.

  특히 18-19세기 유럽의 자유주의 신학운동은 성경연구에 있어서 비판적 경전연구방법을 수용하고, 기독교와 경전의 형성사에서 ‘종교사 학파’의 연구 결과를 참조하며, 과학적 진화론을 수용하여 인간의 기원이 영장류의 고등생물의 진화결과임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특징을 포함하고 있었다. 말하자면, 서구 계몽주의 비판정신을 거치면서, 기독교 신학이 합리적  사유와 지적 정직성을 받아들이고 기독교진리의 인간학적 측면을 강조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보수주의적 기독교 신학은 이러한 일련의 유럽 자유주의 신학풍토가 기독교의 초자연적 계시신앙의 근본을 무너뜨리고 기독교 신앙을 인본주의적 휴머니즘이나 내재주의적 범신론으로 전락시킬 것이라고 우려한 것이다.

  그리하여, 근대와 현대 여러 학문분야의 업적에 등을 돌리고, 극단적인 ‘성경문자무오설’ 이라는 최후 방어선을 설정하여 세상 학문의 기독교 신앙과 신학에로의 유입을 차단해 보려고 노력한 ‘방어적 신학’ 이 ‘근본주의 신학’이었던 것이다.

19세기 말, 한국에 파송된 대부분 장로교 선교사들의 신학적 입장은 이러한 근본주의 신학으로 훈련된 사람들이었고, 근본주의 신학이 주장하는 다섯 가지 기독교 신앙의 ‘근본교리들’중에서 가장 기초가 되고 근본이 되는 것은 ‘성경문자무오설’ 이었던 것이다.9)

    1901년부터 평양에 설치된 장로교목사양성신학교는 후일 평양신학교 및 장로교신학교로 발전하는데, 그 곳의 대부분 주요 교수진들은 ‘근본주의 신학’으로 무장한 선교사들이었고, 대부분의 조선교회 목사들은 그들의 ‘근본주의 신학’ 이론으로 훈련받았다.

   그리고 그 핵심이 ‘성경무오설’이었던 것이다. 종교개혁 이래 개신교 신학은 성경의 중요성을 강조해왔고, 어떤 다른 신학 문서나, 교회 공의회에서 논의하고 결정해서 선언한 주요교리나 가르침보다, 복음의 진리와 하나님의 계시적 진리를 알려 주는 일차적이고도 규범적인 권위와 중요성을 성경이 지닌다는 신념을 공유해 왔다.

   그러나, 근본주의 신학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성경의 단어 하나 하나, 구절 하나 하나, 문단 하나 하나가 문자 그대로, 사실 그대로 전혀 오류가 없을 뿐만 아니라, 해석학적 측면에서 인간의 응답적 책임성과 역사적 제약성이 그 성경 내용 안에 전혀 내포되지 않았다고 보는 그런 경직된 성경관은 마틴 루터나 존 캘빈이나 가르친 적이 없었다. 근본주의 신학은 성경의 ‘문자적 무오설’을 믿는 것이요, 그 어떤 융통성 있는 해석도 거부하는 것이다.

    근본주의 신학으로 훈련된 한국 기독교 목회자들이 ‘성경’이라는 경전의 ‘신언성’(神言性)과 그 절대 권위를 강조했을 때, 한국 기독교 신도들은 대체로 그러한 가르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왜냐하면, 일반 신도들은 성경 안에서 너무도 놀라운 영적 보화들을 발견하고 감동받았기 때문이다. 한국에 가톨릭 교회가 최초로 전파되었을 때, 초기 가톨릭 신도들이 처음으로 접한 기독교 문서는 경전으로서의 ‘성경’이 아니라 가톨릭 교회가 거룩한 교회 전통 속에서 전승하고 가르쳐 온 각종 교리학습 책들과 경건한 영성 수련의 문헌들이었다.

   그러나, 한국 기독교 신도들은 처음부터 직접 한글로 번역된 ‘성경’을 손에 받았다. 그리하여, 수천년간 영적으로 굶주려 온 민중은 한글로 번역된 ‘성경’ 이라는 영적 샘물에서 무한한 은혜의 생수와 진리의 떡을 먹을 수 있었다.

한국 개신교들처럼 성경을 많이 읽고,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통해 은혜받는 그리스도인들도 세계에서 흔하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의 성장은 ‘성경을 통한 은혜체험’에 근본적 원인이 있었다.

  성경이 기독교 신자들의 심령을 영적으로 감동시키고 은혜를 체험하게 하는 역동적 ‘감화력’을 발휘하여, 성경을 읽을 때 성령이 신도들의 심령 속에 역사(役事)하여 신도들을 새롭게 영적으로 변화시켜 ‘새로운 존재’(new being)로 변화시키는 일이 일어날 때는 ‘성경문자무오설’이든 다른 성경관이든 신자들에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리고, 이런 저런 ‘성경관’에 대한 신학적 이론들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일단 신학자, 목사, 신도들의 심령이 성령의 은혜로운 감화 상태에서 떨어지고, 성경을 ‘객관적 계시의 증빙문서’처럼 해석하기 시작할 때부터 교회 안에는 큰 ‘해석학적 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면, 신구약 성경 안에 나타나는 다음과 같은 성경말씀들은 특히 아주 강력한 초대교회의 실존적, 전인적 신앙고백의 증언들인데, 그 증언들을 문자적으로 받아들임으로 인하여, 타종교들에 대한 배타적 태도가 생기게 된 것이다. 대표적 성구들을 인용해 보기로 하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 6).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며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의 중보자도 한 분이신데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라”(딤전2, 5).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더라”(행4, 12).

 

  위에서 예로 들은 세 마디 성경구절 안에는, 초대교회 신앙고백의 절대적 궁극성, 계시의 유일회성, 유일한 중보자 신앙, 배타적 진리의 길 등이 증언적 언어로, 신앙고백적 언어로 표현되어 있다. 그리하여, 한국 기독교 신도들은 ‘성경무오설’을 받아들이고, 성경의 절대권위를 믿도록 훈련되고 교육되어 있기 때문에,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신학적으로 말하면, 어떻게 성경의 계시적 문헌으로서의 절대적 권위와 영감성과 규범성을 충분히 살려내면서도 ‘문자적 해석의 경직성’에 빠지지 않도록 ‘해석학적 눈뜸’을 지도해 낼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로 귀착된다.10) 한국 기독교 교회 안에는 성경을 뜨겁게 사랑하고, 그 계시적 영감성과 권위를 절대 신뢰하고, 입에 오르도록 많이 읽고 암기하고 있는 신도일수록 타종교와 이웃종교에 대하여 배타적 태도를 취하게 된다는 역설적 비극을 경험하게 된다.

 

  (3) 개신교 교회론의 자본주의적 개별교단, 개별교회 중심주의

  왜 한국 기독교는 이웃종교에 대하여 열린 마음, 포용주의적 태도를 쉽게 취하지 못하고, 대체로 배타적이거나 공격적 태도를 취하는가 이해하기 위하여 필자는 그 세 번째 원인으로서 개신교회의 취약점으로 지적되는 교회론상의 문제를 그 이유로 들고 싶다.

  한국 기독교 역시, 신학적 교리상으로는 사도시대 이후 교회에 정립된 교회 본질의 네 가지 특성, 하나의(Una), 거룩한(Sancta), 보편적(catholica), 사도적(Apostolica) 교회를 믿는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독교는 교파적으로 분열되어 있을 뿐 만 아니라, 같은 교파 안에서도 개별교회로서의 개체성이 강조되면서 교회의 통일성과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유기적 통전성이 심하게 왜곡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자본주의 시장 경쟁 원리가 지배하는 문화풍토 속에서 개별교회는 ‘생존’을 위한 선교적 전략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다.

  한국 개신교의 경우, 개척교회 형태로서의 미자립교회 숫자는 전체 교회 숫자의 30% 가까이 육박하는데, 이들 개척교회의 회중신도들의 숫자는 100명 미만의 경우도 태반이다. 말하자면, 개별교회는 아직 한국이라는 문화 종교적 상황 속에서 ‘종교적 소수집단’으로서 자기방어 의식을 갖는다. 그 결과, 개별교회 공동체의 자기정체성 확립을 위하여, 그리고 개별교회로서 강력한 결속을 통한 생존자체를 위하여, 타종교들과의 관계성에 있어서 공통성이나 협동보다는 차별의식과 공격적 방어의식을 강화해야 한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갖게 된다.

  그 결과, 교회 신도들의 교회 교육 커리큐럼 내용 속에, 이웃종교들(불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천주교등)에 대한 이해를 위한 긍정적 교육 프로그램을 설정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오히려, 그와 반대로 타종교들에 대한 무관심, 공격적 경쟁의식, 또는 개종시키려는 적대의식을 갖도록 교육된다. 그리하여, 일가 친척 전체가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고, 형제 친척중 다른 종교에 귀의하고 있는 가정에서 추석이나 음력설 등 민속명절에 혈족이 모이게 되는 경우, 종교문제로 인해 불화와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필자는 지금까지, 왜 한국 기독교는 타종교와의 관계정립에 있어서 열린 태도나, 포용적 태도를 지니지 못하고 닫힌 종교적 태도와 배타적 태도를 지니게 되었는지 그 선교 역사적 배경, 성경무오설이라는 신학적 이유, 그리고 선교적 교회 현장상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이러한 바람직스럽지 못한 상황을 보다 긍정적이고 밝은 상태로 전환시켜 갈 수 있을까 몇 가지 대안을 생각해 보고 이 글을 마치려 한다.

 

  4. 한국 기독교의 타종교에 대한 배타적 태도의 변화 모색

 

   첫째, 한국 기독교의 선교 역사를 역사적 상황 속에서 검토하고, 선교사들의 노고와 공헌을 정당하게 평가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한계점, 과오, 독선등에 대한 ‘역사비판적 시각’을 갖도록 교육해야 한다. ‘개화열풍’ 속에 기독교가 전래되면서 한국 전통적 종교문화와의 단절과 그것의 파괴를 ‘개화’의 이름으로 정당화했던 것이 잘못이었음을 뒤늦게라도 깨닫는 자기성찰이 요청된다. 가능하다면, 선교의 주체국이었던 구미열강들의 선교 정책이 잘못되었던 것임을 ‘죄책 고백’으로 과거청산해야 한다.

  둘째, 일반 중고등 교육의 교과 과정 속에, 교회교육의 교과 과정 속에, 특히 성직자 후보생들의 신학교육 과정 속에 한국문화를 형성해 왔고 우리 조상들의 신앙과 윤리의식과 예술능력을 키워왔던 전통종교들의 중심내용, 경전, 종교 상징체계를 교육해야 한다. 흔히 타종교들에 대한 배타적 태도는 타종교들에 대한 편견과 오해 및 무지에서부터 유래하는 경우가 태반이기 때문이다.

  셋째, 지식을 통한 교육과 병행하여 타종교인들과의 인격적 만남의 기회가 있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백마디 이론보다도, 타종교인들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그들도 크리스챤 못지 않게 헌신적이고, 사랑, 자비, 어짐을 실천하고, 진리에 대한 경외심과 구도정신이 있으며, 신유와 은혜체험이 있음을 발견할 때, 이론적 독단주의에서 벗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종교간의 대화모임이나 협의회에 신도들을 참여시키고, 타종교들의 성지를 탐방하거나 문화유산을 접촉하는 경험을 갖게 하는 것도 타종교에 대한 닫힌 맘을 열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넷째, 보다 높은 차원에서 인간이란 ‘역사적 존재’이며, 사물을 보고 진리를 체험함에 있어서 철저히 문화적-언어적 패러다임에 의해 제약되는 ‘해석학적’ 존재임을 깨닫도록 돕는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 경전의 권위와 계시성을 충분히 담보하면서도 문자적 무오설에 떨어지지 않도록 돕는것이야말로 진정한 형제사랑이기도 할 것이다.

  다섯째, 생태환경운동, 통일 평화운동, 인권운동, 사회정의 확립운동, 북한 어린이 돕기 운동 등 정행(正行)의 실천 운동에 함께 협력하는 경험이 많아야 한다. 이러한 사실들은 지난 30년동안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종교간의 대화 협력을 꾸준히 진행해온 각 종단의 중견지도자들이 몸으로 체험한 진리임을 확인하고 있다. 타종교에 대한 한국 기독교의 배타적 태도는 쉽게 짧은 세월 안에 이뤄지지 않겠지만, 사회의식의 변화와 특히 젊은 성직자들의 출현으로 말미암아 서서히 긍정적 방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희망의 조짐을 보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논 단 2

조규만 신부

(가톨릭대학교 교의신학 교수)

 

다종교 현상과 가톨릭 교회

 

  머리말 : 다원주의가 보편화된 현상이 된 현대 세계에서의 가톨릭 교회의 과제

 

  최근 “다원주의(Pluralism 多元主義)”1) 라는 용어가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그리스도교 신학계와 사상계 안에서도 열띤 논쟁의 쟁점으로 나타나고 있다.2) 다원주의란 사회적 구조, 감정의 표현, 삶의 방식, 교육의 형태, 신학적 진술 양식 등등에서 차이와 개성을 드러내는 다양성을 지시하고 있다.3)

  다원주의는 모든 실재가 하나의 유일 원리로부터 도출되지 않고, 서로 근거가 될 수 없는 여러 층의 존재 근거로부터 생겨났다고 보는 철학적 다원론으로부터 출발한다.4)

  현대 세계는 철학에서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에서 다원주의가 보편화된 현상을 보여 주고 있다. 예컨대 하나의 사회 안에 둘 이상의 상이한 문화 집단들이 그들의 특유한 생활 양식을 보전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문화적(文化的) 다원주의, 동일한 문화에 속한 사람들이 상이한 신분이나, 종교, 경제적 위치와 교육 수준에 있는 경우가 포용되는 사회적(社會的) 다원주의, 상이한 정치 세력들이 헌법이 보장하는 가운데 정치적 과정에 개입하는데 동등한 권리를 지님을 인정하는 정치적(政治的) 다원주의 등이 그렇다.5) 종교도 예외가 아니다.

  사실 아시아의 종교 상황, 그리고 한국의 종교 상황은 처음부터 다원적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리스도교 중심의 유럽의 국가들이나, 이슬람 종교가 대다수를 차지하는 중동의 국가와 달리 한국에는 많은 종교들이 난립하고 있다. 헌법으로부터 종교적 자유를 보장받고 있는 남한은 소위 ‘세계종교의 전시장’, ‘세계종교의 백화점’이라고 불릴 정도로6) 다종교(多宗敎)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비록 한국만이 아니라, 교통과 통신수단의 발달로 ‘지구촌’이라고 불릴 만큼 좁아진 오늘날 세계를 특징짓는 현상의 하나가 바로 “종교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이다.7)

  오늘날 다종교 상황 속에서 어느 특정 종교만이 자기의 절대성이나 우월성을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종교도 신과 그의 진리를 드러내는 유일한 수단일 수 없고, 자신의 종교만이 참되고 다른 종교는 모두 거짓이라는 절대주의적, 배타주의적 입장이 거부되고 있다.8)

  이러한 다종교 현상 속에서 한 종교가 타종교에 대하여 취할 수 있었던 입장은 여러 가지이다. 어떤 종교도 참된 것일 수 없다는 무신론적(無神論的) 입장, 자신의 종교만이 참되며 다른 모든 종교는 거짓이라는 절대주의적(絶對主義的) 입장, 모든 종교가 동일하게 참되다고 보는 상대적(相對的) 입장, 모든 종교가 하나의 참된 종교의 진리에 참여하고 있다는 포괄주의적(包括主義的) 입장이다.9)

  가톨릭 교회는 과거의 절대주의적 입장에서 전환하여 포괄주의적 입장을 표명하고 있다. 일부 다원주의 신학자들은 상대주의적 태도까지를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바로 이런 이유로 가톨릭 교회는 정체성에 심각한 위협을 느끼고 있다.

어떻게 자신의 정체성을 보존하며 다종교 상황을 받아들여 종교 대화를 진척시킬 수 있느냐는 과제를 안고 있다.

문제 해결을 위하여 과거 이스라엘 백성의 선민의식으로서의 역사와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처신에서 도움을 얻을 수 있다.

 

  1. 타종교에 대하여 배타적 입장을 보였던 과거의 가톨릭 교회

  하느님의 선택(選擇)으로 오만했던 이스라엘 백성은 철저한 선민의식(選民意識)을 통하여 타민족에 대해 극히 배타적 입장을 보였다.

  이스라엘 신앙을 물려받은 그리스도교는 이스라엘 백성의 선민의식을 극복하면서 출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세상과 타종교에 대하여 배타적인 입장을 공식화했다.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Extra ecclesiam nulla salus).10)

단순히 수세(水洗)만이 아니라 혈세(血洗)나 화세(火洗)까지 인정함으로써 교회의 울타리를 넓히는 것이 고작이었다.11)

가톨릭 교회는 오랫동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구원은 소수의 선택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는 배타적인 입장을 보여 온 것이다.

  그러나 신대륙의 발견과 더불어 새로운 문화, 새로운 종교에 대한 인식이 싹트고, 유럽 중심주의 세계관에서 탈피하게 됨으로써 이러한 입장을 수정하게 되었다.

  그러한 점을 1953년 교황청은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정식에서 교회를 가톨릭 교회로만 규정한 레오나르도 피니(Leonardo Feeney) 신부를 엄격주의자로 단정하여 파문한 사실(DS 3866-3873)에서 뚜렷하게 엿볼 수 있다.12)

 

  2. 다종교 상황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새로운 인식과 태도

  이미 1863년 교황 비오 12세는 교황과 또는 가톨릭 교회와 연결되어 있는, 소위 갈라진 형제들의 구원 가능성이 배제되지 않음을 천명한 바 있다(DS 2867).

  이러한 배경에서 교회 일치운동이 싹트기 시작하였다. 물론 참석하지는 않았지만, 교황 비오 9세는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에 참석해 줄 것을 동방교회와 개신교에 청한 바 있다.

  1949년 교황청 검사성성은 훈령 「가톨릭 교회」(Ecclesia Catholica)에서 일정한 조건 하에 가톨릭 신자들의 일치운동에의 참여를 허용하였다. 이와 같이 가톨릭 교회도 점차 종교 상황에 대한 인식을 함께 함으로써 그리스도교 교파와 교단간의 일치운동, 더 나아가서 타종교와의 대화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Nostra aetate)에서 타종교의 가치를 인정하고, 대화를 통하여 상호간의 이해와 존경이 증진되기를 권장하고 있다.

  “가톨릭 교회는 이들 종교(힌두교, 불교를 비롯한 타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성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 「…」 그것이 비록 가톨릭이 주장하고 가르치는 것과는 여러 면에 있어서 서로 다르다 해도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를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 않다. 「…」”(2항). 가톨릭 교회는 이렇게 타종교와 화해와 일치를 주장하고 기원할 수 있는 근거를 여러 민족이 하나의 공동체요, 하느님이 그 단일한 기원이며 하나의 최후 목적이라는 데 두고 있다. “여러 민족들은 단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것이다. 하느님께서는 전 인류를 온 땅 위에 살게 하시었으니(사도 17,26 참조) 모든 민족들은 단 하나의 기원을 가졌고 또한 단 하나의 최후 목적이신 하느님을 모시고 있다. 「…」”(1항).

  그러므로 교회는 타종교인들의 구원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이야기하고 있다.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교회를 알지 못하지만 성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으며 양심의 명령으로 알려진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힘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교회 헌장 16항).

  가톨릭 교회는 더 나아가 타종교와의 만남과 대화의 필요성도 긍정하고 있다. 따라서 종교간의 대화는 상대방을 제압한다든지 서로 완전한 합의에 이르거나 어떤 우주적 보편적 종교에 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지 않는다는 원칙13)을 포용하고자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교회의 고유한 정체성을 보존해야만 하는 어려움을 지니고 있다. 가톨릭 교회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궁극성을 자신의 정체성의 정수로 이해하고 있다.

 

  3. 다종교 상황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입장들

이러한 대화의 원칙과 교회의 정체성 두 가지를 보존해야 하는 어려움 속에서 신학자들마다 다양하게 그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카워드(Harold Coward)는 이러한 신학적 입장을 세 가지로 분류한다. 신중심주의(Theocentricism), 그리스도 중심주의(Christocentricism), 그리고 대화를 통한 접근방법이다.14)

 

  3.1. 그리스도 중심주의

  일찍이 칼 라너(K. Rahner)는 ‘익명의 그리스도론’을 내세웠다.15) 카워드에 의하면, 라너의 입장은 그리스도 중심주의적이다. 라너는 다른 종교들의 신봉자들 가운데 의화된 사람을 ‘익명(匿名)의 그리스도인’으로 부름으로써 비그리스도인들에게도 특정한 그리스도교성을 부여하였다. 라너에 의하면, 하느님의 자기 전달, 자기 수교의 제의를 개인으로서 자유롭게 받아들이는 자가 예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면, 그는 한 사람의 ‘익명의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다.16) 이 이론의 출발점은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의 명제이다. 아울러 여기에는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의 필요성, 가시적 교회의 소속의 필요성이 암시되어 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의 구원을 원하신다는 것과, ‘교회 밖에는 구원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두 가지 명제 사이에서 그리스도교 복음이 선포되지 않은 지역의 사람들의 실존적 현상을 두고 어떤 양식으로라도 모든 인간들이 교회의 지체일 수 있어야만 한다고 말하는 수밖에 달리 해결책이 없다고 보았던 것이다.17)

  이 이론은 하느님의 보편적 구원의지와 그리스도교의 우월성을 보존하면서도,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과 관심을 드러내는 장점을 지니고 있다. 은총과 거리가 먼 것으로 여겨져 왔던 타종교의 인간들에게도 은총을 자비롭게 확장하여 과거의 배타주의를 극복하고 있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형제들의 무리가 그리스도가 출현하기 이전부터 아니 그보다 훨씬 오랜 과거부터 존재해왔고, 또 현재와 다가오는 미래에 존재할 많은 형제들의 무리가 명시적으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하여 근본적으로 충만한 삶으로부터 배제되고 영원한 무의미성에로 떨어져 심판 받으리라고 한순간인들 믿을 수 있겠는가?”18)

  그러나 그의 이론에는 많은 문제점이 있다. 따라서 많은 논란과 비판이 있다.19) 무엇보다도 ‘익명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이 알고 있지도 못한 상태에서 ‘그리스도교인’이 되고 있는 사실은 정당하지 못하다. 오히려 ‘그리스도인’인 ‘익명의 불교인’ ‘익명의 유다인’ ‘익명의 이슬람교도’로 불릴 수 있다는 주장에 선뜻 답을 제시하기 어렵다.

 

  3.2. 하느님 중심주의

  그러므로 일부 그리스도교 신학자들은 ‘그리스도 중심주의’에서보다 ‘하느님 중심주의’에서 구원의 보편성을 제시해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리스도 대신에 하느님을 중심에 놓을 때, 그리스도 이전에 태어난 사람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하느님의 은총과 자비가 적용될 수 있기 때문에 구원에 대한 개방성이 더욱 확장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닌다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에서 윌프레드 캔트웰 스미스(Wilfred Cantwell Smith)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은 우리 인간을 위하여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죽으셨고, 그 안에서의 신앙을 통해서 우리는 구원받는다.’는 그리스도교의 핵심이 포함되면서도 ‘하느님 중심주의’ 입장을 통하여 그리스도교의 배타적 입장을 극복하기를 시도하고 있다.

  따라서 그는 다음과 같이 제안하고 있다. “구원을 받은 불교인, 혹은 힌두교인, 혹은 이슬람교인, 그 어떠한 종교인이든 간에, 구원에 이르는 이유는 오직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가 제시한 바로 그런 하느님이기 때문이라는 것을 긍정하자.”20)

그리스도 중심에서 하느님 중심에로 패러다임(paradigm)을 전환할 때 그리스도교가 유다교, 이슬람교, 힌두교와의 대화에 더 접근할 수는 있다. 그렇지만 근본적으로 신을 언급하고 있지 않는 불교와는 여전히 대화의 지평을 마련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21) 그러므로 이제는 신중심주의에서 ‘구원중심주의’로 건너가야 한다고 주장이 새롭게 대두되고 있다. 인간의 구원이 모든 종교 간 대화에서 공통 분모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22)

 

  3.3. 대화적 접근

  일부 신학자들은 종교간의 대화의 방법을 주장한다. 대화는 각각의 종교가 상대화될 수 없는 절대적 주장을 가지고 있음을 전제하고, 각각의 절대적 확신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자는 입장이다. 이런 입장을 주장하는 파니카(R. Panikkar)는 대화에 있어서 종교간의 관계는 ‘동화의 관계도, 대체의 관계도 아니고, 서로가 풍요로워지는 관계의 하나’임을 강조한다.23) 다종교 상황 속에서 종교간의 대화는 교회가 교회 밖을 넘어서 하느님의 구원을 이야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대화의 원칙은 하나의 이론으로서 제시될 뿐, 실제적으로는 대화의 동등성을 주장하며 타종교에 대한 상대주의적 입장으로 혼합주의 내지 절충주의 내지는 평행주의 현상을 나타내고 있다. 실제로 가톨릭 신자들 간에 이러한 혼동을 찾아볼 수 있다. 이 종교도 좋고, 저 종교도 좋은 게 아니냐는 종교무차별주의의 풍조를 찾아 볼 수 있다. 따라서 그리스도가 유일한 계시의 완성자요, 인류 구원의 유일한 중재자라는 그리스도 교회의 정체성을 상실할 위험성도 지니고 있다. 최근 교황청의 신앙교리성이 발표한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24)은 다원주의로부터 유래하는 상대주의의 위험성과 가톨릭 교회의 정체성을 뚜렷하게 다시 한번 상기시키고 있다.

 

  4. 그리스도교의 정체성과 다원주의의 위험성(「주님이신 예수님」을 중심으로)

 

   4.1. 그리스도교의 정체성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특히 가톨릭 신앙인들에게(3항) 우리가 믿어야 하고 굳게 지켜야 할 근본적인 신앙을 명시하고 있다.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을 인용함으로써 가톨릭 교회가 그동안 지켜왔던 전통적 신앙을 보존해야 할 의무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다(1항).

그리고 그러한 신경의 내용으로부터 유래하고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으로 대변될 수 있는 그리스도교의 근본적인 진리들을(4항) 구체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그러한 진리들은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의 절대성과 완전성, 상대화될 수 없는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 혹은 고유성, 하느님의 영감을 받은 성서의 특성, 영원하신 말씀과 나자렛 예수의 인격적 일치성,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적 보편성과 유일성, 교회의 보편적 구원의 중재성, 하느님 나라와 그리스도의 나라와 교회의 불가분리성, 가톨릭 교회 안에 있는 하나의 그리스도의 교회의 실재성이다.

 

  4.2 다원주의의 위험성

  문헌은 무엇보다도 오늘날 그리스도교의 고유한 진리를 위협하는 사상은 다원주의로부터 나오는 상대주의임을 지적하고 있다.   

  “교회의 변함 없는 선교 사명인 복음 선포는 오늘날 실제적으로(de facto)뿐 아니라 원칙적으로(de jure)도 종교다원주의의 정당화를 모색하는 상대주의의 이론들 때문에 위협을 받고 있다”(4항). 아울러 문헌은 교회의 진리들을 위협하는 상대주의의 이론들을 구체적으로 열거하고 그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밝히고 있다.

  1) 하느님에 대한 진리는 파악이 불가능하며 표현할 수 없다는 신념이다(4항). 이러한 신념이 그리스도교 계시의 완전성을 거부하게 한다(5항).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신적 진리의 완전한 계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요한 14,6)이신 강생하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 안에서 실현되었음”을 굳게 믿는다(5항). 그 근거로서 마태 11,27; 요한 1, 18; 골로 2,9-10; 요한 3, 34; 5, 36; 17, 4; 14, 9; 1 디모 6, 14; 디도 2,13 등의 성서와 계시헌장 2항, 4항, 「교회의 선교 사명」, 5항, 「신앙과 이성」, 14항 등의 교도권의 가르침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다른 종교들 안에 나타난 계시가 제한적이고 불완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보완한다는 이론은 교회의 신앙에 위배되는 것이다(6항).

  2) 어떤 사람에게는 진리인 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진리가 아닐 수 있다는 상대주의적 태도이다(4항).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하느님에 대한 진리는 인간의 언어로 말하여진다하여 없어지거나 축소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유일하고 충만하며 완전하다.”(6항)고 믿는다. “왜냐하면 말씀하시고 행동하시는 분은 바로 하느님의 강생하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6항)

  3) 성서(聖書)가 하느님으로부터 영감 받은 책이라는 특성을 부인한다(4항). 그러나 교회는 교회전통을 따라서 성서 모두를 거룩한 것으로, 또 정경으로 간주한다(8항).

  4) 영원하신 말씀과 나자렛 예수 사이의 인격적 일치성을 거부한다(4항). 하느님의 절대적이고 궁극적인 신비가 여러 방식과 많은 역사적 인물의 모습으로 나타나는데 나자렛 예수는 이들 가운데 한 분이라는 입장을 보인다(9항).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성서와 교회의 전통을 따라서 나자렛 예수님만이 홀로 하느님 아버지의 아들이시며 아버지의 말씀이심을 굳게 믿는다(10항). 이것은 니케아 신경(DS 125)과 칼체돈 공의회의 신앙의 정식(DS 301)이 규정한 것이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사목헌장, 22항) 역시 재천명한 진리이다. 따라서 말씀의 구원 행위와 사람이 되신 말씀의 구원 행위를 분리시키는 것은 가톨릭 신앙에 위배된다(10항).

  5) 상대주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비의 유일성과 구원적 보편성을 거부한다(4항). 그러나 교회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이 계획하신 구원 경륜은 하나이며, 그 구원 경륜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이 그리스도의 신비는 영원한 선택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통일성을 이루고 있다고 확신한다(11항). 따라서 일부의 사람들이 주장하는 성령의 구원 경륜, 그리고 그 경륜을 그리스도의 구원 경륜과 구별하고, 그리스도의 구원 경륜보다 더 보편적이라는 가설을 거부한다(12항).

  6) 다원주의는 가톨릭 교회 안에 존재하는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의 유일성과 단일성을 위협한다(4항). 그러나 가톨릭 교회는 사도적 계승과 유효한 성체성사로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를 유지 보존한다(16항). 사도적 계승과 유효한 성체성사를 보존하지 못하는 교회들과 교회적 공동체들의 성화와 진리의 요소들이 무의미하거나 무가치한 것은 아니지만 단계적 구별이 있다(17항).

  7) 다원주의 신학이 하느님 나라와 교회, 그리스도 왕국과 교회의 불가분리성을 위협한다(4항). 교회는 하느님과의 일치, 전 인류와의 일치의 표지이며 도구이다(18항). 교회는 물론 하느님 나라와 동일시 될 수 없지만(19항), 교회가 하느님 나라를 목적으로 지향하는 만큼, 하느님 나라의 싹이며 표지인만큼, 분리되는 것은 아니다(18항). 물론 그리스도와 성령은 교회의 가시적 범위 밖에서도 작용한다는 사실을 거부하지 않는다.

  8) 다원주의는 가톨릭 교회 안에 있는 하나의 그리스도의 교회의 실재성을 위협한다(4항). 이에 대하여 문헌은 구원을 위한 교회의 필요성을 강조한다(21항). 하느님은 교회가 모든 인류 구원의 도구가 되기를 바라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22항). 물론 비그리스도인의 구원을 배제하지 않는다. 하느님은 당신께서만 아시는 방법으로 그들에게 구원의 은총을 주시기 때문이다(21항). 타종교간의 대화에서 동등성이란 참여하는 사람의 동등한 인격적 품위를 말하는 것이지, 교리 내용이나, 교회 설립자 예수가 타종교의 교리 내용이나 타종교 설립자와 동등하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22항).

 

  5. 다종교 상황의 문제 해결을 위한

     이스라엘 백성의 선민의식의 역사와 역사상 예수의 태도에 관한 성찰

  선언 「주님이신 예수님」은 발표되자마자 많은 논란이 있었다. 그리고 타종교, 타종파로부터의 많은 비판이 있었다.25) 그들에게 회칙의 입장은 일부에 대해서는 포괄주의적이지만, 여전히 절대주의적이고 배타주의적인 입장으로 간주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그리스도교의 정체성으로서 그리스도의 구원의 보편적 중재성과 유일성, 계시의 유일성과 절대성, 구원을 위한 교회의 필요성은 여전히 보존되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타종교에 대한 이해와 배려를 포기할 수 없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해결을 과거 이스라엘의 신앙 역사, 특히 선민의식과 하느님의 선택, 그리고 지상 생애 동안의 예수 그리스도의 처신을 통해서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5.1. 이스라엘의 선민의식과 하느님의 선택

  이스라엘 백성이 수세기 동안 어려운 고비를 넘어 하느님과 함께 한 역사적 백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하느님이 그들을 특별히 선택하셨다는 사상이 그 바탕을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선택이란 타민족이 경험하지 못한 이스라엘만의 고유한 역사적 체험이고, 인간의 노력이나 그 성과와는 관계없이, 야훼 하느님의 자유로운 뜻에 의해 결정되는 특별한 행위로 나타난다.26)

  즉 그들이 쌓은 어떤 공적(功績) 때문이 아니라, 다만 야훼가 사랑하시기 때문이다(신명 7,6).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선택된 민족으로 다른 이방인들에 대해서 우월감을 지녔다. 이러한 우월의식은 철저한 순수 혈통 보전,27) 사마리아인들이나 이방인들에 대한 엄격한 차별28)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이렇게 투철한 선민의식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방인에 대해 철저하게 배타적이었음을 보여 준다. 아주 드물게 종말사상과 관련해서 이방인들에 대해서도 개방성을 보여 줄 뿐이다. “온 세상 모든 인간들아, 머리를 돌려 나에게로 와서 구원을 받아라. 「…」 모든 민족이 제 나라 말로 나에게 신앙을 고백하리라”(이사 45, 22-23).

  이러한 선민의식은 기원전 8세기경의 예언자들, 소위 아모스, 호세아, 이사야 등에 의해 도전 받게 되었다. “너희는 내게 에티오피아 인들과 마찬가지가 아니더냐? 이스라엘 백성아, 야훼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이스라엘을 에집트 땅으로부터, 팔레스티아인들을 갑돌로부터, 시리아인들을 키르로부터 끌어 올리지 않았더냐?”(아모 9,7) 이러한 예언자들의 선언은 선민의식에 투철한 이스라엘 백성의 분노를 자아냈다. 그러나 예언자들은 비로소 야훼 하느님이 이스라엘 민족만의 하느님이 아니라 세계의 모든 민족의 하느님이심을 선언한 것이다. 요나 예언서가 이러한 사실을 압축하여 설명해 주고 있다.

성서는 하느님이 구체적인 인물을 선택하는 과정에서 ‘작은 자’, ‘보잘것없는 형제’를 선택하고 있음을 보여 준다. 카인보다 아벨을(창세 4, 5참조), 에사오보다 야곱을(창세 25,29 이하; 27장; 28,10-22 참조), 야곱의 열두 아들 가운데 요셉을 선호하셨다(창세 39장 이하 참조). 하느님은 ‘입이 둔하고 혀가 굳은’ ‘말재간이 없는’ 모세를(출애 3,1-12), ‘입술이 더러운 사람’인 이사야를 선택하셨다(이사 6,1-10). 이런 선택에서 하느님의 주도권, 하느님의 선택의 자유로움이 잘 드러난다. 이스라엘 민족도 예외가 아니다. 여러 민족 중에서도 작은 민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선택된 것이다(신명 7, 7-8참조). 하느님이 베푸시는 은총으로서의 선택은 선택된 자의 특전(特典)을 의미한다. 하지만 하느님의 선택은 선택된 자의 특전만으로 머물지 않는다.29) 선택된 자는 항상 소명(召命)을 아울러 받게 된다. 이 소명은 항상 다른 이를 위한 것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선택도 예외가 아니다. 세상의 모든 백성들이 축복을 받기 위한 것이다(창세 12, 3; 22, 8; 26,4; 28,14 참조). 여기서 우리는 선택 받은 자로서의 교회의 소명을 생각해 볼 수 있다.

 

  5.2. 이스라엘을 위한 예수와 이방인에 대한 예수의 개방성

 

   5.2.1. 예수와 이스라엘

  예수는 12제자들을 특별히 선택하셨다. 예수의 선택 기준 역시 그들의 장점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 즉 예수의 주도권이다. 제자단의 ‘12’이라는 숫자는 이스라엘 백성의 열두 지파와 관련된다. 12이라는 숫자는 온 이스라엘에 파견된다는 것을 의미하며, 이스라엘이 종말의 구원 공동체로 일깨워지고 모여지기 시작함을 예증하는 표징이다.

  이 12라는 숫자의 상징에는 파견된 제자들이 당시에 경험적으로 파악될 수 있던 이스라엘만을 상대로 한다는 것이 남김없는 조건으로 주어져 있는 셈이다. 그럼으로써 예수가 이스라엘에 관심을 쏟기로 단호히 작심하였음을 보여 준다.30)

  이러한 예수의 의도를 정확하게 지적해주는 성서 구절이 있다. “여러분은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말고 사마리아인들의 도시로도 들어가지 마시오. 오히려 이스라엘 가문의 잃은 양들에게로 가시오”(마태 10,5-6). “자녀들이 먹을 빵을 강아지에게 던져 주는 것은 옳지 않다”(마태 15,26).

  이미 세례자 요한에 의하여 선포된 하느님 나라와 세례는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선포되고 베풀어졌다(요한 1,31 참조). 세례자 요한이 상대로 하는 것은 인류 일반도 아니요, 개인 각자도 아니며, 바로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 즉 이스라엘이었다. 세례자 요한의 세례 운동은 참 이스라엘의 모임을 위한 것이었다.31)

  예수 역시 세례자 요한을 뒤이어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세례자 요한의 하느님 나라와 세례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리고 예수 부활 이후에도 복음은 제자들에 의해서 먼저 이스라엘에게 선포되었다(사도 2,36; 4,19 참조). 이스라엘은 물론이지만 이방인들도 모두 예수의 수난 사건에 참여하며(사도 4,27), 다같이 신앙에 초대되었다(사도 9,15참조). 그러나 거기에는 일정한 순서가 있다. 나면서부터 “이스라엘 사람”인 유다인(로마 9,4), 그리고 다음으로 다른 모든 백성들이 초대된다(로마 1,16; 2,9-10; 사도 13,46). 제자들의 이러한 태도에는 예수의 의도와 처신이 반영된 것이다. 이처럼 선택된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특권이 묘사되고 있다.32)

 

  5.2.2. 예수와 이방인

  그러나 예수는 이방인들에게도 치유를 베푸셨다(루가 17, 11-19; 마태 8,10-13 등 참조).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는 이스라엘만이 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 준다. 물론 이 하느님 나라 선포는 일차적으로 이스라엘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가문의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습니다”(마태 15,24). 그렇다고 하더라도 예수는 결코 이방인을 구원에서 배제하지 않으셨다. 그 하느님 나라에는 이방인들에게도 여전히 개방되어 있다. “잘 들어라. 많은 사람이 사방에서 모여들어 하늘 나라에서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과 함께 잔치에 참석하겠으나 이 나라의 백성들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땅을 치며 통곡할 것이다”(마태 8,11-12; 루가 13, 28-29). 믿지 않는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방인들을 대립시키는 예수의 말씀 속에서도 나타난다. “심판 날이 오면 니느웨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부활하여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은 요나의 설교만 듣고도 회개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요나보다 더 큰 사람이 있다. 심판 날이 오면 남쪽 나라의 여왕도 이 세대와 함께 일어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마태 12, 41-42; 루가 11,31-32).

  이방인들은 예언자의 호소를 듣고 따랐지만 선택된 이스라엘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했음을 질책하고 있다. 이런 질책은 이방인의 두 도시, 띠로와 시돈, 그리고 이스라엘의 두 도시, 코라진과 베싸이다를 날카롭게 대립시키는 말씀 속에 그 절정에 달한다. “코라진아, 너는 화를 입으리라. 베싸이다야, 너도 화를 입으리라. 너희에게 베푼 기적을 티로와 시돈에서 보였더라면 그들은 벌써 베옷을 입고 재를 머리에 들쓰고 회개하였을 것이다.”(마태 11,21-24; 루가 10,13-15).

  무엇보다 예수의 죽음은 많은 사람을 위한 대속적 죽음으로 이해된다. 여기서도 이방인의 구원에 개방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많은 사람”은 당시 언어관습으로 보아서 우선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이라고 볼 수 있지만, 하나의 개방된 표현으로서 세상의 많은 사람을 배제하는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33)

  일찍이 예수에게 이방인에 대한 개방성이 없었다고 하면, 제자들 시대에 이방인 선교(宣敎)란 엄두조차 내지 못할 일이었을 것이다. 말하자면 예수는 이스라엘 사람만을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을 위해 오신 분이시다. 하느님 나라가 먼저 이스라엘과 명백히 연결되어 있지만, 한편으로 이스라엘 이외의 백성과도 연결되고 있다.34) 여기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일차적으로 교회를 겨냥하고 있지만, 교회는 세상 구원을 위해 선택된 존재임을 시사해준다고 말할 수 있다.

 

  결론

 

  오랫동안 가톨릭 교회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배타적 입장을 공식화하였다. 그러나 새로운 문화와 새로운 종교의 실존적 상황에 직면하여 그 공식을 수정하였다. 이브 콩가르(Yves Congar)의 주장처럼 “교회 밖에는 구원 없음”이라는 배타적 입장의 정식은 “누가 구원될 것이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간주되어서는 안되고, 오히려 “누가 구원에 봉사할 책임을 지녔느냐?”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 보아야 한다.35)

배타적인 의미의 “교회 밖에 구원 없음”의 공식이 긍정적인 의미의 “교회 내에 구원 있음”의 공식을 위하여 포기되어야 한다는 한스 큉(Hans Kung)의 견해 역시 정당하다.36) 이 공식 수정은 교회의 본질에 대한 재인식이다. 하느님은 보시기에 좋게 세상을 창조하셨다(창세 1,2-31참조). 예수 그리스도 역시 보시기에 좋게 창조한 세상과 인간을 긍정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는 세상과 인간을 위하여 세상 속에서 인간과 더불어 사셨다. 예수에 의해 소집된 신약 공동체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1 고린 12,12) 구별 없이 “모든 이를 위하여 모든 것(omnibus omnia)”이 되기를 희망하였고, 또 그렇게 노력하였다. 이러한 교회의 본질적 사명을 통하여 교회는 자기만의 우월 의식과 자만을 반성하며 타종교의 가치와 진리를 긍정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교회는 세상과 또는 타종교와 구별되는 정체성을 마땅히 지녀야 한다는 로핑크(G. Lohfink)의 대조사회 이론 역시 정당하다.37) 이 구별은 혈연이나 민족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그리스인이나 유다인, 할례 받은 사람과 받지 않은 사람, 타국인, 야만인, 노예, 자유인 따위의 구별이 없다”(골로 3,11). 이 구별은 “자신의 공덕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특별한 은총”에 기인하는 하느님의 선택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러므로 그 선택에 맞는 윤리 생활이 요청된다. 세상의 사회질서와는 첨예한 대조를 이루는 그런 사회 질서를 교회가 참으로 실천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으로 말미암아 세상과 다른 형태의 사회, 즉 “교회 안에 구원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일은 실천을 통해서만 설득력이 있다. 그럴 때 대조사회로서의 교회만이 세상에 대해 징표가 될 수 있다. “세상의 소금”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한 민족의 선택됨이 다른 민족을 위한 선택됨이요, 교회의 선택됨이 세상을 위한 선택됨이라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다. 마침내 아브라함이 하느님과 흥정한 의인 10명은 소돔과 고모라를 위해 선택된 존재였던 것처럼(창세 18, 16-32). 교회는 하느님의 선택과 소명을 의식하는 그런 이스라엘이 될 수 있다.

  예수가 전적으로 ‘많은 사람들’ 아니, ‘모든 사람들’을 위한 위타적 존재였던 것처럼 교회는 세상을 위한 존재인 것이다. 무엇보다 예수가 선포한 하느님 나라는 모든 민족에게 도달하는 하느님의 다스림이다. 예수의 하느님은 모든 인간을 구원하고자 의지를 보이시는 분이시다. 풀 한 포기, 참새 한 마리까지 돌보시고 염려하시는 하느님이시다(마태 7,26-30; 루가 12, 7 참조). 그리스도의 유일성과 궁극성은 여기에 있다. 대조사회로서의 교회 정체성은 여기에 있다. 바로 위타적 존재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이다(마태 8,22; 9,9; 마르 8,34 참조). 세상을 위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하느님을 믿는 일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구원을 원하시는 하느님의 보편적 의지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소집된 교회 공동체는 대조사회로서 세상과 구별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백성’일 수 있고, 전적으로 타자를 위해 사셨던 위타적 존재 예수 그리스도의 추종자일 수 있다. 그래야만 세상을 위한 구원의 성사일 수 있다. 타종교와의 대화 역시 정체성 없이 가능하지 않다. 정체성 없이 타종교와 타문화에 대한 존경과 가치 긍정도 가능하지 않다. 필경 대화에 있어서 “참된 만남의 장소란 나와 상대방과 무관한 어떤 변증법적인 중립적 영역이 아니라 나 자신이 되면서도 또 상대방도 공유하고 있는 자기이다.”38) 이러한 정체성을 지닌 대조사회로서의 교회는 타종교를 위해서도, 토착화를 위해서도, 타종교와의 대화를 위해서도, 그리고 하느님이 보시기에 좋게 창조한 세상을 위해서도 필요하다.

 

논 단 3

진 월 스님(조계종, URI Korea 대표)

 

 다종교 현상과 불교

 

  머리말

 

  지구 전체를 조감해 볼 때, 현대 사회의 여러 특징들 가운데 종교계에서 주목할 것은 다종교 현상의 보편화라고 할 수 있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옛날부터 지역에 따라 약간의 예외는 있으나 여러 종교들이 혼재해 왔던 사실을 알 수 있지만, 오늘날처럼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여러 종교가 더욱 가까이 공존하며 서로에게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종교 상황은 그 사실을 바로 알고, 종교간의 이해와 평화를 요청하며 공동선을 위한 협조를 필요로 하는데, 불교는 이웃종교에 대하여 어떠한 교리와 사상을 갖고 있으며, 어떠한 역사적 선례를 보이고 있나를 돌아봄은 바람직한 종교간의 관계를 생각해 보는데 도움이 될 줄 안다.

  근래 세계 현실은 기술문명의 발달을 통해 시ㆍ공간적 단축으로 말미암아 “지구촌(地球村 Global Village)”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온 지도 30여 년 되었고, 이즈음은 “지구공동체(地球共同體 Global Community)”라는 말이 더 실감나는 정보ㆍ세계화의 과정을 겪고 있지만, 그러한 거시적 변모와 아울러 미시적으로는 다원주의적 문화양상을 보이는 내면세계를 간과할 수 없다.

  종교계도 다원주의 상황 아래서 성숙한 이들은 서로 존중하며 자주 만나 더욱 친밀해 질 수 있고 평화 속에 공존과 협력의 상생문화를 조성해 갈 수도 있는 반면, 미숙한 이들은 경쟁과 불화 속에 오히려 갈등과 배척의 관계로 악화될 수도 있음에 유의하여야 한다. 필자는 우리사회에 평화와 상생의 문화를 조성하기 위한 종교간 협조가 필요함을 느끼며, 한 불교인의 입장에서 불교의 이웃종교에 대한 견해와 몇 가지 역사적 선례를 들추어 보려 한다.

  불교는 기본적으로 삼보체계로 인식하고 설명할 수 있다. 삼보(三寶)란 세상에 보배스럽게 존귀한 세가지 존재라는 뜻으로서, 불(佛 Buddha), 법(法 Dharma), 승(僧Sa gha)을 가리키는데, 창교자인 석가모니(釋迦牟尼   kyamuni) 부처님 및 그의 가르침과 그를 따라 사는 이들의 공동체를 가리킨다.1) 본고와 관련하여 구체적으로는 석존과 그의 제자들 및 신자들을 포함한 불교인들과 그들이 더불어 살았던 이웃종교인들의 관계를 알아보며, 불교인들은 이웃종교인들에게 어떻게 하여왔나를 돌아보려는 것이다. 먼저 불교의 이웃종교에 대한 교리와 사례들을 인도를 중심으로 살펴본 후, 불교가 다른 지역으로 전파되면서 각 지역의 불교인들이 이웃종교인들과 어떻게 관계해 왔나를 알아보겠다.

 

  불교의 이웃종교에 대한 사상과 사례

 

  1. 석존 재세시

 

  (1). 석존의 종교적 상황과 기존 전통종교에 대한 견해

  초기 불교문헌은 석존의 일생과 아울러, 교단 창립 당시의 인도 내부 종교사정에 따른 불교의 대응입장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2)

  싯다르타가 출가 수행시 명상과 고행 등 기존의 종교 수행법을 따라 행했었음과 성도 후에 기성 종교 수행자의 귀의를 받았음을 통해 석존 때부터 인도에는 다종교 상황이 전개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깨달은 내용과 가르침의 핵심은, 모든 존재의 실상과 현상으로서 모든 것이 상의상존(相依相存)함을 강조한 연기설(緣起說 Pa iccasamupp da, Prat tyasamutp da) 및 그 인식과 수행의 도리로서 네 가지 진리인 사성제(四聖諦 Catv riaryasatyana)와 여덟  가지 올바른 길인 팔정도(八正道 A th  gam rga)라고 할 수 있다.

  연기설은 모든 사물의 존재구조와 인식태도를 가르치는 것으로, 자기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다른 이가 있어야 하며, 다른 이가 존재하기 위해서도 자기가 있어야만 하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것의 상호의존성을 드러내어 각자의 도리와 책임을 다하고 이웃을 배려하며 더불어 살아야 되는 필연성과 당위성을 깨우치는 것이다. 이는 다른 종교들의 존재도 포괄하는 것이며, 연기과정의 설명 가운데 주목할 것은 인간의 고통과 번뇌의 근원은 무명(無明), 즉 진리와 실상을 알지 못하는 어리석음으로부터 비롯된다는 점이다.3)

  사성제는 인생의 고통스러운 상황인식과 그 고통 해결의 가능성 및 방법을 보인 것이며, 팔정도는 그 방법의 구체적 제시이다. 팔정도는 인간의 정신생활과 언어생활 및 일상 직업활동을 포괄하는 전인적 생활방식의 명시로서 개인뿐만 아니라 사회정의도 감안한 방도이다.

  여기서는 인간의 일생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윤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해탈과 자유의 즐거움 즉 열반(涅槃 Nirv  a)을 가르친다.

  석존은 교화의 기본으로 쾌락주의와 고행주의의 양극단에 치우치는 폐단을 경계하고 중도(中道)를 가르쳤으며, 이는 어떠한 시간과 장소에서도 주어진 상황 아래 최선의 길을 찾아가라는 개방적 가르침이다.

  석존은 생활 윤리로 각자의 수행성취를 돕고 공동체의 질서와 화합을 위해 계율을 정하였는데, 그 기조는 개인의 성숙하고 절제된 생활로 수행과정의 문란과 타락을 막고 다른 이들에게 폐해를 방지하여 공동체의 질서와 화합을 유지하기 위한 것이었다.

아울러 건전한 언어와 행동을 위해서는 마음을 안정하고 순화 집중하여 지혜를 얻고 모든 생명을 위해 자비심을 발현할 것을 가르쳤다. 아울러 누구라도 그의 가르침을 따라 수행하면 깨침을 얻고 부처가 될 수 있음을 선포하였다.

  그 스스로를 절대화하지 않았고 다만 길의 안내자로 자처하였다. 기존 바라문 중심의 신분계급질서를 긍정하지 않았고 사람은 출신배경에 따라 인격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지혜와 능력에 따라 평가되어야 한다고 했으며 모든 개인의 가능성이 열려 있음을 강조하였다.

  그의 제자들 공동체 안에서는 성직자 계급인 바라문 출신이나 서민(Vai ya 毘舍) 및 노예(dra 首陀羅)들이 출신성분에 관계없이 평등하게 대접받도록 배려하였다.

  여러 강물이 바다에 이르러서는 차별 없이 하나가 되듯이 불교 공동체에는 모두가 인격적으로 동등하게 인정되고 존중되도록 하였다.

  공동의 일은 공론을 통해 합의정신으로 추진하였고 독선과 억지가 없는 민주적 방식으로 진행하였다.

  모든 중생을 관용과 자비로써 보살피도록 했고 폭력의 사용을 죄악시하였다.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누구나 제대로 수행하면 성취할 수 있다고 격려했고 모든 인간의 미래는 각자의 의식과 노력에 달려 있음을 가르쳤다. 석존은 모든 가르침을 대상의 상황에 알맞게 설하였고 제자들에게도 상대방을 배려하여 대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므로 상대가 이해하기 쉽도록 언어의 선택과 표현의 방법을 합당히 하는 것이 불교의 전통이 되었다.

  불교 성립당시의 기존 종교로는 힌두교의 전신이라고 볼 수 있는 바라문교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으나 석존은 민중적 입장에서 저들의 집단이기주의적 행태와 주장을 부정하였다.4) 석존은 성도 후 우르빌라로 가서 우루빈라가섭(優樓頻螺迦葉 Uruvilv -k  yapa)과 그를 따르던 500제자, 나제가섭(那提迦葉 Nad -k  yapa)과 그의 250제자, 가야가섭(伽倻迦葉 Gay -k  yapa)과 그의 제자 250인 도합 1000여 명의 제자를 한꺼번에 얻게 되었는데 그들은 본래 불(Agni)을 섬기던 바라문교적 무리로서 사화외도(事火外道)였지만 석존에 감화되어 일시에 불제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는 그 당시 사회의 굉장한 사건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갈등과 분란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없는 점으로 보아 석존의 교화는 매우 평화스럽고 합리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당시의 기성 종교는 이미 진지한 수행자들에게 매력과 지도력을 상실했으며 석존의 가르침은 구도자들에게 신선한 희망과 신뢰를 주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2) 신흥종교들에 대한 견해

 석존이 성도하기 이전에도 이미 브라만교에 불만을 갖고 그 체제에 승복하지 않는 여러 부류의 신흥종교집단이 발생되어 있었다. 초기 불교성전 (D gaha-nik ya)에서는 62종의 견해 (六十二見)로 분류하여 보일 정도로 많은 것들이 있는데, 그 가운데 유력한 것으로서 이른바, “육사(六師)”로 알려진 여섯 명의 대표적 사상가와 그들을 따르는 각각의 집단이 있었다. 불교인들은 그들을 어떻게 보았고 그에 대한 반응은 어떠했는지 알아보면: 푸라나(P ra a Kassapa)의 사상은 도덕부정설(道德否定說)5); 파쿠다(Pakudha Kacc yana)는 칠요소설(七要素說)6); 고살라(Makkhali Gos la)는 결정론(決定論)7); 아지타(Ajita Kesakambalin)는 유물론(唯物論)8); 산자야(Sa jaya Bela  iputta)는 회의론(懷疑論)9); 니간타(Niga  ha N taputta)는 부정주의(否定主義 Sy dv da)10)로 파악하였다.

  이상의 각종 주장과 교설들은 베다성전의 권위를 무시하는데 공통점이 있어 바라문 중심의 전통교단은 이들을 이단설로 간주하고 불온시 하였다. 석존과 불교 공동체에서는 그들을 외도(外道)라고 보고, 별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그들과의 불화와 갈등이 심각하게 들어난 사례는 보이지 않는다. 석존은 다만 그의 제자들에게 저들의 사상과 행태의 불합리성 및 비윤리성을 지적하고 비판하며 오염되지 않도록 한 것으로 보인다.

  석존의 제자들은 이웃 종교인들에 비교하여 도덕적으로 존경과 신망을 얻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테면, 석존의 양대 제자로 알려진 사리불(舍利弗 S ri putta,   riputra)과 목건련(目連 Moggall na, Maudgaly yana)이 본래 산자야의 제자였다가 최초 5인의 불제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아설시(我說示 A vajit 馬勝)의 훌륭한 수행에 감동되어 그들 각각의 제자 100명씩 도합 200인과 함께 석존에 귀의하고 제자가 된 사연이다.

  그들이 산자야의 회의론에 한계를 느끼고 자발적으로 개종을 하였던 사연들은 그로 인한 어떤 불화도 없었던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석존은 이웃종교인들에게 어떤 강제와 억지 없이 온화하게 설법하고 교화하여 평화로운 관계를 유지하였음을 알 수 있다.11)

  비록 석존 재세시의 불교판도는 그 당시의 지정학적인 한계 상황으로 인도 중북부 일대에 한정되었으며, 이웃 종교라야 제도적인 것으로는 바라문종교를 꼽을 수 있고 기타 잡다한 신흥 수행자 그룹이 산견됨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석존의 사상과 교설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보편성과 융통성을 기조로 하고 있으므로, 이후 인도 전역과 인도 밖의 지역에 확산되고 세계종교로 전파되어 갔다. 그러한 과정에서 석존과 그 제자들이 항상 이웃종교에 대하여 평화적인 관계를 유지해 왔다.

  우리는 석존의 가르침에서 기존 종교와 체제에 대해 혁명적인 사상을 보면서도, 석존이 자신의 가르침을 펴기 위해, 혹은 그의 제자들이, 누구와도 폭력과 투쟁을 일으키거나 폐해를 입히며 개종을 강요한 흔적을 발견할 수 없고, 평화롭게 공존공생의 길을 가르치고 실천해왔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이웃과 평화롭게 더불어 사는 공존상생의 불교 정신과 관행은 석존의 입멸이후 계속하여 세계각지에서 전승되어 오고 있다.

 

  2. 대승불교의 흥기12)

약 2000여 년전, 일반 대중에 초점을 맞춘 대승불교운동이 일어났는데, 대승사상을 교리로서 제시하는 많은 경전 가운데 주요한 것으로서는 『반야경』 (般若經 Praj ap ramit -s tra), 『법화경』(法華經 Saddharma pu  ar ka-s tra), 『화엄경』(華嚴經 Buddh vata saka-s tra), 『아미타경』 (阿彌陀經 Sukh vat  vy ha-s tra) 등을 들 수 있다.

『반야경』은 지혜의 완성을 가르치고 이끄는 것으로 그 진리를 공(空   nya)으로 표현하는데, 이는 연기법에 기초하여 중도의 실상을 가르치며 어떤 것을 절대화하고 집착하는 데서 오는 병통을 고쳐 자유와 해탈의 길로 인도한다.

궁극적으로는 불교 자체에까지도 집착하지 않도록 하며 항상 열린 자세로 일체를 용납할 수 있는 여유를 준다. 『법화경』은 공사상을 기초로 하면서 새로운 불타관을 제시하고 있으니, 부처님의 본성은 법신불 (法身佛)에 있고 역사에 출현하심은 중생을 깨우치기 위한 방편이었음을 보이며, 모든 교설의 차이도 결국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궁극적 목표인 성불에 이끄는 부처님의 자비방편임을 설명한다.

『화엄경』 역시 공사상에 기초하여 부처님의 깨달은 세계를 설명하고 있으며, 우주의 진리를 발현하는 해인삼매(海印三昧)로부터 나타난 진리의 세계(法界)가 법신불인 비로자나(毘盧遮那 Vairocana)불의 현현(顯現)이며, 일체 모든 것이 전부 한없는 연기(重重無盡 緣起)로서 비로자나이며 법신은 진리 그 자체임을 깨우친다. 아울러 모든 존재가 서로 다르면서 하나이고(一卽一切 多中一), 진리와 현상이 둘이 아니며 걸림이 없이(理事不二 一切無碍) 서로 어우러져(相卽相入) 있으므로, 자기와 남이 모두 이롭고(自利利他) 원만한 수행을 하도록 가르친다.13)

『아미타경』은 한량없는 수명과 빛(無量壽 Amit yus 無量光 Amit bha)의 존재로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부처님을 보이며, 그러한 존재와 세계도 한 수행자(法藏比丘)의 원력(願力)으로 이루어졌음을 통하여 큰 뜻과 바람을 갖고 수행하기를 가르친다.

염불을 통해 극락세계에 갈 수 있다는 신앙체계를 통하여 민중들에게 쉽게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14) 후기의 여러 가지 대승경전들도 이러한 기본 사상을 발전시킨 것으로 볼 수 있다.15)

대승불교의 실천 수행방법으로서 육바라밀(六波羅密  a -p ramit ) 혹은 십바라밀(十波羅密Da a-p ramit )이 널리 알려져 있다. 육바라밀은 보시(布施 D na), 지계(持戒   la), 인욕(忍辱 K  nti), 정진(精進 V rya), 선정(禪定 Dhy na), 지혜(智慧 Praj) 바라밀로서, 바라밀이란 수행의 완성 혹은 안락의 피안에 이르는 길이란 뜻으로 통한다16).

십바라밀은 육바라밀에 방편(方便 Up ya), 원(願 Pra idh na), 역(力 Bala), 지(智 J  na) 바라밀을 추가한 것이다17). 이 모두 자신과 더불어 이웃 모두에게 깨달음과 안락을 주는 지혜와 자비의 실천이다. 모든 생명을 보살피는 보살행의 중요한 덕목 가운데 하나로서 사섭법(四攝法 Catru-sa graha-vastu)이 주목된다. 중생을 섭수하여 깨달음에 이끄는 네 가지 방법으로서 보시,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 하는 것인데,18) 그 가운데 특히 동사섭법의 실천이 강조되는 바, 이는 이웃에게 소외감이나 차별의식이 없이 공동체 정신으로 친근히 호흡하게 하는 가장 적극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이지만 또한 가장 행하기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십바라밀행이나 사섭법이나 결국 개인을 포함하여 대중들 나아가 일체중생의 구제와 성불을 지향하고 추구하는 수행이며 생활 방법이므로 불교인은 물론 이웃종교인뿐만 아니라 동물과 식물을 망라하여 자연에 이르는 모든 것들을 포함하는 동체대비(同體大悲)사상에 기초하고 있다.

 

  인도 국외 불교인들의 이웃종교 관계

 

  1. 중국

  불교가 인도 주변지역으로 전파되면서 현지의 토착종교나 기존의 세계종교와 만나게 되는데, 그 대응이 각 지역의 환경과 문화특성에 따라 달랐음을 보여 준다. 남방이나 서방은 접어 두고, 동방으로 한국에 유입되는 경로를 보자. 불교가 서역을 거쳐 중국에 전래된 시기는 1세기 후반인데, 중국에서의 불교와 이웃종교 사이의 관계는 토착 전통종교인 유교(儒敎) 및 도교(道敎) 와의 관계로 압축할 수 있다.

  외래종교인 불교가 유교 및 도교와 어떻게 조화하였으며 혹은 경쟁하였는지에 주목하는 것이다. 종교로서의 유교는 하늘과 조상에 제사를 지내는 등을 제외하면 공자(孔子)와 그 제자들이 여러 가지 인간관계를 가르친 윤리도덕의 차원에 비중을 두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

  유교는 인간의 실존적 구원과 사후의 세계 등 이상과 초월의 세계보다 가정과 국가 등 다분히 정치사회적 측면에 관심이 큰 현실적 종교이다. 도교는 노자(老子)의 가르침에 기초한다고 하지만, 후대의 장도릉(張道陵), 장노(張魯) 장각(張角) 등에 의해 새롭게 조직된 것으로 중국 전래의 잡다한 민속신앙과 결부시켜 신선(神仙) 사상과 음양(陰陽) 사상, 양재(禳災)와 치병(治病) 등 공리적 현세중심의 종교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종교인들과 불교인들은 사회 상황에 따라 서로 각축하기도 했고 협조하기도 했으나 서로 경쟁의 상황에서도 불교인들이 그들에게 공격을 가한 사례는 없다. 호계삼소(虎溪三笑)로 유명한 혜원(慧遠) 스님 등 유ㆍ도교인과 친교한 사례들이 주목된다.

 

  2. 한국

  불교가 한반도에 들어온 것은 4세기 중엽 중국으로부터였다. 유교는 그 이전에 들어와 있었지만 도교의 존재는 알 수 없다. 다만 무교(巫敎)라고 할 토착신앙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므로 한국에서의 불교와 이웃종교와의 관계는 근래 기독교와의 관계를 제외하면 불교와 유교 및 무속과의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불교와 유교 모두 중국에서 들어온 외래종교라고 할 수 있지만 긴 세월을 거쳐 토착화된 지 오래이다. 불교는 삼국시대에 들어오면서부터 왕과 귀족들로부터 환영되고 존숭되었다.

  초기의 신라에서는 기존 토착종교인들의 저항도 없지 않았지만 결국 자리를 잡았고, 그 후 전국에 걸쳐 불교가 신앙되었다. 유교는 주로 관리들의 행정분야에 역할을 하였고, 무교는 불교권에 포괄 습합되어 종교간 갈등은 별로 들어 나지 않았다. 불교인들이 이웃종교인들에게 보인 태도는 친화적이었고 건전한 사회생활을 위하여 상호 보완적이었다고 하겠다. 불교를 신앙한 왕들은 종교적으로는 불교를, 행정수단으로는 유교를 통해 국가를 통치하였다.

  원광 법사는 세속오계(世俗五戒)를 주면서 충효 등 유교적 덕목을 포함시켰고, 원효 대사는 설총을 유학의 대가로 만들었지만 불교를 강요하지 않았다.

  국민 모두가 종교생활은 불교로, 일상생활은 유교식으로 하며 두 종교를 함께 따르는데 별 무리가 없었다고 하겠다.   

  고려시대에도 불교는 왕으로부터 서민에 이르기까지 국가 전역에서 신앙되었다.

  대부분의 불교인들도 유교서적을 읽었던 것 같고, 유학자들도 불경에 소양이 있었을 줄 안다. 태조 왕건 이후 후대의 왕들은 모두 불교신자였다고 볼 수 있는데, 유교와 토착신앙을 박해하거나 소외시키지 않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고 본다. 특히 팔관회를 통해 불보살뿐만 아니라 천지의 신령과 산악 및 하천의 신들까지 제사의 대상으로 삼아 토착 전통들을 포용하고 국민정서를 편안하게 한 것으로 생각한다.

  당시 불교는 종교적으로 경쟁할 만한 대상이 없이 국가와 민중의 존경과 보호를 받고 안일과 타성에 빠져 점점 창조적 활력을 잃어간 듯 싶다. 뜻있는 유학자들의 비판도 겸허하게 수용하지 못하고 무시하거나 변명과 호도에 급급하지 않았나 짐작된다.

조선조에서는 불교가 억압되고 유교로부터 핍박과 소외를 당하면서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반성과 쇄신을 통해 본분을 찾아가는 시기였다고 본다.

  유학자들과 유교정권으로부터 비판과 배척을 받은 것이 종교적 이유보다 정치 경제적 사유에 원인이 있었던 것이 사실이지만, 불교 수행자들은 불교를 지키고 사명을 다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였다.

함허(含虛) 선사는 현정론(顯正論)으로, 보우(普雨) 대사는 일정론(一正論)으로 불교를 변호하며, 유교와 본질적으로 일치한다는 논리를 펴기도 했다. 휴정(休靜) 선사는 삼가귀감(三家龜鑑)을 지어 유교, 불교, 도교가 깨닫고 보면 근본이 다르지 않음을 밝히고 유학자들과도 교유했다. 초의(艸衣) 선사는 유학자인 김정희와 천주교인이었던 정약용 등 이웃종교인들과 교유하며 불이법문(不二法門)을 통해 일체가 하나임을 깨우쳤다.

  불의로 당하는 이웃종교인들과 고통을 함께 하며 종교를 넘어 인간으로서 동체대비를 실현해 보였다. 일제하에서 용성(龍城) 선사와 만해(萬海) 스님은 천도교인 및 기독교인 등 이웃종교인들과 더불어 민족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광복후 1960년대 중엽부터 능가 스님은 강원룡 목사 등과 종교간의 대화운동 시작에 참여했고, 근래의 진보적 불교인들은 이웃종교인들과 더불어 통일과 사회문제 등 공동과제 해결에 협력하고 있다.

 

  맺는 말

 

  이상에서 우리는 석존과 그 후예들의 이웃종교에 대한 인식과 견해 및 대응방식을 불교의 발생지인 인도와 중국을 거쳐 한국에 이르는 역사적 사례들을 통해 대강 알아보았다. 불교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생명의 무한한 자유와 평등한 성불의 가능성을 가르치고 그 실천 수행법을 보여 왔으며, 각지의 성숙한 불교인들은 그들이 처한 문화와 시대적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응해 오며 기존의 이웃종교들과 평화적으로 공존상생의 길을 걸어왔다고 할 수 있다. 종교의 차이를 넘어 온 인류를 포함한 뭇 생명들과 나아가 자연환경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더불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연기설에 근거하여, 독선적 극단에 치우침을 지양하며 모든 집착과 이기심을 비우는 중도와 동체 대비의 정신을 실천하고자한 것이다.

  정치 사회적 상황 때문에 갈등이 생겨도 진정한 불교인들은 비폭력 관용정신으로 중생의 근기와 형편에 따라 지혜와 방편으로서 당면한 과제들을 평화적으로 해결해 왔음을 보았다. 비록 이교도로부터 부당한 비판과 공격을 당해도 대화로 해명하고 설득하는 합리적 방법과 인욕 정진의 보살도를 행해 온 것이다.

  한편 이웃종교와 능동적으로 친교하고 서로의 발전에 협조하며 사회적 공동과제들을 연합하여 해결하려는 모범도 많았다. 오늘날 불교인과 기독교인 숫자가 비슷한 나라로서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다종교 상황의 전형인 한국 사회에서 저들의 훌륭한 선례들로부터 모든 종교인들이 각자 이웃종교인들과 평화롭게 상생할 수 있는 지혜를 얻을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논 단 4

민영진 목사

(대한성서공회 부총무, 구약학)

 

이스라엘은 타종교에 어떻게 대처하였는가?

 

  1. 이스라엘의 신앙고백: 야훼 신앙의 차별성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은 야훼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하신 구원 사건을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한 신앙고백에서는, 구체적으로는, 야훼께서 세상을 창조하고, 이스라엘의 족장을 인도하고, 전제군주의 노예가 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고, 이스라엘과 계약을 맺어 “하느님과 그의 백성”이라는 특별한 관계를 맺고, 땅이 없던 백성에게 땅을 주어 살게 하셨다는 것이 골격을 이룬다. 이러한 신앙고백은 구약에 나타난 이스라엘의 역사적 신앙고백(신명 6, 3-9)과 교육헌장(敎育憲章)(신명 6, 20-24)과 설교(여호 24, 2-13)와 찬양(시편 136, 1-26)에 두루 나타나 있다. 찬양에 나타난 신앙고백을 예로 들어 본다.

 

  (프롤로그)

1. 할렐루야, 어지신 분, 야훼께 감사노래 불러라.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2. 모든 신들의 하느님께 감사노래 불러라.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3. 모든 주인들의 주님께 감사노래 불러라.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4. 홀로 놀라운 일 이루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창조 전승)

4. 홀로 놀라운 일 이루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5. 지혜로 하늘을 만드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6. 땅을 물 위에 펼치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7. 큰 빛들을 내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8. 낮을 다스리라고 해를 만드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9. 밤을 다스리라고 달과 별을 내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출애굽 전승)

10. 이집트 사람들의 맏아들을 치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11. 그 속에서 이스라엘을 구해 내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12. 억센 손, 그 팔을 휘두르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13. 홍해바다를 둘로 쪼개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14. 그 한가운데로 이스라엘을 건네 주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15. 파라오와 그 군대를 홍해바다에 처넣으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16. 사막에서 당신 백성 인도하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17. 대왕들을 무찌르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18. 세력 있는 왕들을 없애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19. 아모리 왕 시혼을 죽이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20. 바산 왕 옥을 죽이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정착 전승)

21. 그들 땅을 우리에게 물려주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22. 당신의 종 이스라엘에게 대대로 물려받게 하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23. 우리가 망했을 때 아니 잊으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24. 우리를 원수들 손에서 빼내 주셨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25. 입 가진 모든 것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26. 하늘에 계신 하느님께 감사노래 불러라. “그의 사랑 영원하시다.”

  (공동번역 시편 136, 1-26)

 

  프롤로그(시편 136, 1-4)에 이어 창조 전승(시편 136, 5-9)이 언급된 것을 볼 수 있다. 우주가 피조물임을 고백하고 있다. 이것은 “한 처음에 하느님께서 하늘과 땅을 지어 내셨다.”(창세 1, 1)는 선언과 함께, 우주의 여러 구성 요소 곧 하늘, 땅, 해, 달, 별, 산, 바다 등을 신적인 존재로 보는 이스라엘 주변 여러 종교에 정면으로 대립되는 개념이다.

한때는 이스라엘의 옛 조상들 역시 이러한 이방 종교를 가지고 있던 이들이었다.

  “옛적에 너희 조상들은 유프라테스 강 건너 저 편에 살고 있을 때 다른 신들을 섬겼었다. 아브라함과 나홀의 아비 데라도 그러했다”(여호 24, 2).

  그러나 출애굽과 해방의 역사에서 야훼 신앙이 이스라엘 속에 자리를 잡는다.

 

  (족장 전승)

  내 조상은 떠돌아다니면서 사는 아람 사람으로서 몇 안 되는 사람을 거느리고 이집트로 내려가서,

 

  (출애굽 전승)

  거기에서 몸 붙여 살면서, 거기에서 번성하여, 크고 강대한 민족이 되었는데, 이집트 사람이 우리를 학대하며 괴롭게 하며, 우리에게 강제노동을 시킴으로, 우리가 주 우리 조상의 하느님께 살려 달라고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우리의 울부짖음을 들으시고, 우리가 비참하게 사는 것과 고역에 시달리는 것과 억압에 짓눌려 있는 것을 보시고,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엄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가나안 정착 전승)

  주께서 우리를 이 곳으로 인도하셔서, 이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신명 26, 5-9)

이렇게 하여 이스라엘과 야훼의 관계가 확인되고, 이스라엘은 야훼의 요구에 긍정적으로 응답할 의무를 지니게 된다.

 

  (가나안 정착 전승)

  주께서는, 우리를 거기에서 이끌어 내시고, 우리의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이 땅으로 우리를 데려오시고, 이 땅을 우리에게 주셨다. 주께서 우리에게 이 모든 규례를 명하여 지키게 하시고, 주 우리의 하느님을 경외하게 하셨다. 우리가 그렇게만 하면,   

  오늘처럼 주께서 언제나 우리를 지키시고, 우리가 잘 살게 하여 주실 것이다.(신명 6, 23-24)

  그리고 이스라엘은 오직 야훼만을 섬기도록 요청을 받는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출애 20, 3).

 

  2.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

 

  남 유다의 역사에서 부정적 의미의 민간신앙이 극성을 부린 것은 요시아왕 때였다. 요시아는 여덟 살에 왕의 자리에 올라 서른 한 해를 다스렸다. 신명기 역사가의 글에 보면 그는 그렇게 오래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야훼의 눈에 드는 바른 정치를 편 왕”으로 기록되어 있다(2열왕 22, 2).

  나라를 다스리는 동안 그가 이룩했던 장한 일 가운데 하나는 그가 왕위에 오른 지 18년 되던 해에 단행한 종교개혁이었다. 흔히들 말하는 그의 종교개혁이란 당시 야훼 종교에 만연하던 민간신앙의 요소를 없애 버리는 일이었다. 그가 야훼 보시기에 올바르게 다스렸던 왕이었던 만큼 그가 왕위에 오를 무렵 야훼 신앙의 순수성을 더럽히면서 기승을 부리던 민간신앙에 대해 그가 크게 걱정을 하고있었으리라는 것은 무리한 상상만은 아닐 것이다.

 

  1) 종교개혁을 불가피하게 했던 이교신앙의 극성

  (1) 사람들은 야훼의 전 안에서도 바알, 아세라, 하늘의 별들을 섬겼다(2열왕 23, 4). 바알과 아세라는 가나안에서 오랫동안 섬김을 받던 풍요의 신들이다. 바알은 남성 신, 아세라는 여성 신인데 이 두 신의 성적인 결합으로 풍년과 다산이 이루어진다고 믿었다. 바알과 아세라 외에 하늘의 별들도 섬겼다.

  (2) 전국 방방곡곡에는 산당이 없는 곳이 없을 지경이 되었다. 이것 역시 요시아 왕 때 갑자기 불어난 것이 아니고 역대 왕들이 이미 산당을 무수히 세워 왔고 거기서 바알, 해,  달, 별에게 재물을 바치도록 하였다 (2열왕 23, 5). 이런 민간 신앙을 장려한 왕 가운데 하나가 므낫세 왕이었다.

  므낫세는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그릇된 정치를 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야훼께서 이스라엘 사람들 면전에서 쫓아 낸 민족들의 역겨운 풍속을 따라 온갖 민간신앙을 양성화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자기 아버지 히스기야 왕이 허물어 버린 산당을 므낫세가 다시 세웠다. 각 고을마다 세워진 산당은 이교의 온상이었다. 산당은 본래 산꼭대기에 있던 것이었다. 사람들은 거기에 올라가 신들에게 온갖 제사를 지냈다. 그러나 므낫세 때에는 산꼭대기가 아닌 성안에도 산당들이 세워져 있었다(2열왕 17, 9). 그는 또 북 이스라엘 왕 아합을 본받아 바알 제단을 쌓았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어 세웠고, 스스로 솔선하여 하늘의 별들을 절하여 섬겼다. 야훼의 성전 안에 이방신들을 위하는 제단을 세운 것도 바로 므낫세 왕이었다.

  (3) 예루살렘의 힌놈 골짜기 도벳에서는 아들 딸을 몰록에게 바치는 인육(人肉) 제사가 행해지고 있었다(2열왕 23, 10). 왕자를 불태워 제물로 바친 예는 므낫세 왕과 그 이전에도 있었다. 유다 왕 아하스는 예루살렘에서 16년간 다스렸는데 자기 아들을 불살라 바쳤던 예가 있다(2열왕 16, 3).

  아들을 살아있는 그대로 불살라 제물로 바치는 것은 실제로 모압의 메사 왕이 이스라엘의 포위공격을 받고 전세가 기울자 세자인 맏아들을 죽여 성 위에서 번제를 바친 일이 있었고, 무서운 신의 저주가 이스라엘 군에 내려 이스라엘 군이 진을 거두고 철수한 적이 있다(2열왕 3, 24-27).

  (4) 나라 안에는 점쟁이와 술객, 혼백을 불러내는 무당과 박수가 늘어났다(2열왕 21, 1-9). 이것을 양성화시킨 이도 바로 므낫세 왕이었다. 점쟁이, 술객, 무당, 박수를 허용한 것은 야훼의 능력을 부정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므낫세 왕을 위시하여 당시 백성들은 야훼의 눈에 거슬리는 일을 하여 야훼의 진노를 불러일으켰다. 신명기 역사서(여호수아기와, 판관기, 사무엘기, 열왕기)가 경고한 우상숭배와 이교제사는 단순히 백성들 중 기층민 사이에 퍼져 있던 토속신앙을 두고 한 것이 아니라, 당시의 외세 앗시리아에게 예속된 상태에서, 지배하는 나라의 종교를 받아들여 고유의 신앙과 혼합시키는 것을 겨냥한 것이다.

  (5) 야훼의 성전 안에는 남창과 창녀들이 상주하고 있었다(2열왕 23, 7). 이것은 성 윤리의 타락이나, 퇴폐나, 윤락행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 남창과 창녀들은 제사의식을 돕는 이들로서 바알과 아세라를 위한 풍요 제사 행사 때 성행위의 제사의식 기능을 수행하는 이들로써 성전 안에 상주하고 있었다. 이것은 이교의 풍요와 다산 제사가 야훼의 성전 안에서 버젓이 행해지고 있을 정도로 만연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6) 사람들은 성전 문 어귀에 말의 동상과 태양신이 타는 마차를 세워 놓고 태양을 숭배하였다(2열왕 23, 11). 이것 역시 앗시리아의 종교였다. 이스라엘이 외세에 의존하는 동안은 이교의식을 많이 받아들이는 경향을 보였고, 외세를 거부하는 동안은 외세 거부를 이교의식의 제거로 표현하였다.

  태양숭배는 본래 농경사회에서 성행하던 민간신앙으로 알려져 있다. 땅이 풍성한 소산을 내기까지는 태양별의 따뜻한 온기가 필수적인 요인이기 때문이다. 말과 그것이 끄는 마차는 태양숭배 예배의 주요 도구로 쓰여졌던 것 같다. 태양신이 그 마차를 타고 하늘을 가로지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태양숭배 신앙은 야훼께서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신다(시편 19, 1-6)는 신앙과는 일치하지 않는다. 1967년, 예루살렘의 오벨에서 흙으로 만든 사람과 동물 모형들이 발굴된 적이 있는데, 사람 모형의 대부분은 풍요와 다산을 나타내려고 한 여인상이었다. 그리고 동물들 가운데는 말 형상들이 발견되었는데 앞 이마에는 태양을 나타내는 원반이 붙어 있었다. 이 발굴물들은 태양신 숭배의 흔적으로 해석되고 있다.

  (7) 올리브산(감람산)에는 그 옛날 솔로몬이 만들어 세운 아스다롯 여신상, 그모스 신상, 밀곰 신상이 버젓이 서 있었다(2열왕 23, 13).

  (8) 민간에는 도깨비나 귀신을 불러 물어보는 자들, 집안의 가문 수호신을 놓고 사는 자들이 많았다(2열왕 23, 24).

이미 지적했듯이 무당과 박수 등이 대량으로 생겨나기 시작한 것은 므낫세 왕 때부터였다(2열왕 21, 1). 신명기 법전은 그런 행위를 엄격하게 금하고 있다.

  아들이나 딸을 불에 살라 바치는 행위, 점쟁이, 점술가, 술객, 마술사, 주문을 외우는 자, 도깨비 등 모든 귀신을 불러 물어 보는 자, 혼백에게 물어 보는 자가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신명 18, 9-14). 집안 수호신이란 쉽게 옮길 수 있는 물건이었던 것 같다. 옛부터 이스라엘에서는 사람들이 그런 것을 부적처럼 소유하고 있었던 흔적이 있다. 예를 들면, 다윗의 딸 미갈은 집안에 수호신을 두고 있었고(1사무 19, 13-17), 그 이전에 야곱 이야기에도 드라빔과 같은 수호신 이야기가 있었다(창세 31, 19). 야곱 이야기에서 이 수호신상을 소유한다는 것은 곧 상속권을 갖는 것과 관계되어 있었다. 이런 것은 오래 전부터 내려온 허용된 민간신앙이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요시아의 종교개혁에서는 이런 것까지도 금지되었다.

 

  2) 이교신앙 배격의 근거

  성전을 수리 할 때 발견된 그 법전은 오늘날 ‘신명기’의 원본으로 알려져 있다. 요시아 왕에게 낭독된 그 부분은 이스라엘의 도덕적, 신앙적, 정치, 경제, 사회적 불의를 꾸짖는 부문이었을 것이다.

  신명기 법전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진입하기에 앞서 그 가나안이 어떤 곳인지를 알린다. 이스라엘에게 약속된 그 땅은 텅 빈 공간이 아니라 이교도들이 살아 온 땅이므로 들어가면 그 이교도부터 박멸하라고 한다(신명 12, 5. 11. 14. 26; 18, 9-11). 신명기에서 지적하듯이 먹을 수 있는 음식과 먹어서는 안 되는 음식을 구별하는 ‘정결음식법’(코셰르) 역시 결국은 이교에 대한 반대에 근거한 것이다(신명 14장).

  신명기 정신이 이교를 그처럼 철저히 배격한 배경은 무엇인가?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기 전이나 들어간 다음이나 계속해서 이교를 경계할 것을 요구받고 있는데 그 까닭은 무엇인가? 이집트의 전제군주 바로에게서 해방된 히브리인들(판관 6, 8; 1사무 10, 18), 그리고 가나안의 봉건영주들 밑에서 농노로 있다가 벗어난 이스라엘 히브리인들은 늘 가나안의 신들을 섬기지 말 것을 강하게 요청 받았다(판관 6, 8-9; 1사무 10, 17-19). 가나안의 신을 섬기지 말라는 것은 해방된 히브리인들 곧 자유인이 된 히브리인들이 늘 받아온 요청이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이교신앙, 그것이 이미 민간에 퍼져서 민속신앙이 되어 버렸는데, 해방된 이스라엘이 그것을 거부하도록 요청 받은 까닭이 중요하다. 가나안의 여러 나라들은 히브리인들을 억압하던 지배세력이었다. 그리고 가나안의 지배세력의 종교는 그들의 지배를 합법화하는 지배 이데올로기였다. “너희는 내 앞에서 다른 신을 모시지 못한다.”고 하신 하느님은 히브리인들을 이집트의 전제군주와 가나안의 봉건영주들에게서 해방시킨 하느님이다. 야훼를 떠나서 바알과 아세라를 섬긴다는 것은 단순한 개종행위가 아니다. 이미 얻은 해방과 구원을 예속과 저주로 바꾸는 것을 뜻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역대 왕들 가운데서 민족정신이 제대로 든 왕들은 외세 거부와 이교풍습의 제사의식 거부를 함께 진행했고, 외세에 의존한 왕들은 외세와 함께 그 외세의 확장주의를 합법화하는 종교를 함께 받아들여 완전히 예속되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3. 이방 종교의 자연숭배에 대한 양해 (신명 4, 19)

 

눈을 하늘로 향하여 해와 달과 별 등 하늘에 있는 모든 천체를 보고 그 앞에 엎드려 예배하고 싶은 유혹에 빠져서도 안 된다. 그런 것들은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만천하 다른 민족들에게 주어 섬기게 하신 것들이다.(신명 4, 19)

이 본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곁길로 떨어져 나가 하늘의 별들을 숭배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음을 지적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하늘의 별들이 그 찬란한 빛을 반짝일 때 그것에 매혹되어 그것들을 섬기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천체숭배를 금지한 이유는 그 천체숭배가 “그런 것들은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만천하 다른 민족들에게 주어 섬기게 하신 것”이라고 하는 관계절에 분명히 밝혀져 있다. 하느님께서 천체들을 이방인들에게 숭배의 대상으로 주셨음을 확언하는 본문이 성서 안에 들어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이방인들이 하늘의 별들을 그들의 예배의 대상으로 선택하는 것을 하느님이 허용하셨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의 우상숭배마저도 하느님의 허락과 동의가 있었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하느님께서는 다만 이방인들이 피조물을 보고서 조물주 하느님을 알게 되면서도 조물주를 하느님으로 찬양하지 않기 때문에 하느님께서는 이방 사람들을 우상숭배와 부끄러운 정욕에 그대로 내버려 두신다는 생각도 성서 안에 들어 있다(로마 1, 21. 24. 26).

바로 이어지는 20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방인의 천체숭배를 모방해서 안 될 이유를 말하고 있다.

이스라엘을 용광로와 같은 이집트에서 건져내셔서 당신의 것으로 삼으신 하느님께서 그 이스라엘을 이 세상의 다른 민족들과는 구별하셔서 당신 자신의 소유가 되는 백성으로 삼으셨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피조물들 속에서 하느님을 찾으려 하거나 피조물을 통하여 하느님께 기도하거나 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이스라엘은 하느님을 섬김에 있어서 하느님 자신이 아무런 형상도 보여 주지 않으셨으므로, 그래서 모방할 것도 없으므로, 어떤 형상이나 우상을 통함이 없이 하느님의 본성에 맞는 태도로 하느님을 섬겨야 하기 때문이다.

이방인들에게는 천체숭배가 허용되지만, 창조주를 직접 알 수 있도록 선택받은 하느님의 소유인 이스라엘에게는 천체숭배가 금지된다. 일찍부터 하늘의 별들은 이방인들 사이에서 신적인 존재로 여김을 받았고 구약 안에도 그 흔적이 남아 있다. 피조물을 섬기는 이방인의 자연숭배는 신앙의 원시 단계로서, 선택된 백성의 선교에 따라 이방인들도 피조물을 통하여 조물주 곧 창조주 하느님을 발견할 수 있다. 따라서 이방인의 자연 종교는 하느님을 찾아가는 방편으로서는 용납된다. 모든 이방 민족이 복을 받게 하기 위하여 하느님께서는 한 민족을 택하여 그들에게 선교의 임무를 맡기셨다.

자연숭배를 참 종교에 이르는 과정으로 보는 자연 종교에 대한 관용적 태도와, 자연 종교 자체에만 머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철저한 배타주의가 함께 나오는 경우는 지혜서 13장 1-9절이다.

 

하느님을 모르는 자들은

모두 태어날 때부터 어리석어서

눈에 보이는 좋은 것을 보고도

존재하시는 분을 알아보지 못하였고

업적을 보고도

그것을 이룩하신 분을 알아보지 못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불이나 바람이나 빠른 공기,

또는 별의 회전, 혹은 도도하게 흐르는 물,

하늘에서 빛나는 것들을

세상을 지배하는 신들로 여겼다.

이런 것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것을 신이라고 생각했다면,

이런 것들의 주님이

얼마나 더 훌륭한가를 알아야 했을 터이다.

그것들을 창조하신 분이

바로 아름다움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또 그들이 이런 것들의 능력과 힘에 놀랐다면

이런 것들을 만드신 분의 힘이 얼마나 더 큰가를

마땅히 깨달아야 했을 터이다.

피조물의 웅대함과 아름다움으로 미루어 보아

우리는 그것을 만드신 분을 알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사람들을 크게 비난할 수는 없다.

그들은 아마 하느님을 찾으려고

열렬히 노력하다가 빗나갔을지도 모른다.

그들은 하느님의 업적 가운데서 살면서

열심히 모색하다가

눈에 보이는 것들이 하도 아름다워서

그 겉모양에 마음을 빼앗기고 마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용서받을 수 없다.

그들이 세계를 탐지할 수 있는

지식을 쌓을 능력이 있다면

어찌하여 세계를 만드신 분을

일찍이 찾아내지 못했는가.

 

4. 타종교에 대한 현대 이스라엘의 대처

 

1977년 11월 11일, 이스라엘 국회는 “개종에 관한 법(the Charge of Religion)”을 통과시켰다. 통과된 법안 내용은 다음과 같다.

1977년 11월 23일자 개종 유혹에 관한 개정 형법 1313호 전문(全文).

1. 개종(改宗)을 유도하는 상여금 지불 행위: 개종을 유발시킬 목적으로 금전이나 금전에 해당하는 물건이나 특혜를 주거나, 주기로 약속한 자는 5년의 징역이나 5만 이스라엘 파운드의 벌금형에 처한다.

2. 개종을 유혹하는 상여금 수취 행위: 개종을 유발시킬 목적으로 금전이나 금전에 해당하는 물건이나 특혜를 받거나, 받기로 약속한 자는 5년의 징역이나 3만 이스라엘 파운드의 벌금형에 처한다.

위의 개정 형법에는 어떤 구체적인 종교가 명시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이 법이 두말할 것도 없이 이스라엘 국내에서 유대인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 기독교 선교 활동에 제동을 건 법률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랍비 아브라 모비츠 의원의 제안 설명 속에도 그런 의도는 충분히 암시되어 있었다.1)

“(이스라엘) 국내에서 활동하고 있는 선교 기관들은 각종 다양한 수법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그들의 올무에 걸려든 사람들이 스스로 개종하지 않고는 못 견디게 유인하고 있다.”

“이러한 선교 기관들은 막대한 금액을 물쓰듯 뿌리며, 사람들을 낚기 위해 물질 공세도 서슴지 않는다. 그들의 활동은 특히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빈민층을 대상으로 더욱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빈민들에게 거액의 금품을 약속하기도 하고, 구제금이라는 형식으로 거액을 희사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해외에서 팔레스타인으로 돌아온 이스라엘 사람에게까지 권유해 가면서 개종을 종용하고 있다.”

“최근 선교사들은 이스라엘 국내의 어려운 경제적 사정을 악용하여 그전보다 더욱더 열성적으로 그들의 목적 달성을 위하여 광분하고 있다. 심지어는 이스라엘 군부에도 침투하여 선교하고 있으며 군인들이 탈영까지 하도록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이스라엘 국내에서 선교사들의 그러한 활동을 중단시키기 위한 유일한 대책은 그런 활동을 금지하는 입법 조치를 취하는 길뿐이다.”

“제안된 이 재정 헌법의 목적은 물질 공세를 수반하는 선교 활동에 제동을 걸기 위함이다.”

“다른 나라에도 이와 유사한 법이 있다.”

위의 제안 설명에 나오는 선교사나 선교 기관은 모두 기독교의 경우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기독교 이외에 다른 어느 종교도 이스라엘 국내에서 괄목할 만한 규모의 선교 사업을 벌이고 있지는 않기 때문이다.

이 법 자체만 본다면 각 종교단체의 선교 활동을 엄금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다만 금전이나 그것에 준하는 물질이나 기타 특혜를 베풀어 가면서, 즉 사람들의 약점을 이용하여 개종을 강요하지는 말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 법이 확대 해석되어 헌금 행위나 해외에서 들어가는 선교비 전달을 막을 수도 있기 때문에, 실제로 이 법은 기독교의 선교 활동을 ‘상당히’ 제한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개종에 관한 형법 1313조는 유대교인을 개종시키는 기독교 선교 활동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유대교의 선교 활동도 제한한다. 그러나 이것은 유대교로서는 조금도 문제되는 일이 아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유대교는 선교의 종교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찍부터 예언자들은 이방인 아닌 유대인만을 위하여 부름 받은 자들로 이해되고 있었다. 이러한 이방인 선교 불필요론의 배경은, 이방인들은 야훼 하느님을 섬길 의무도 없고(계약 백성이 아니므로) 따라서 우상을 섬겨도 그것 때문에 형벌을 받지는 않는다는 유대인들의 확신이다.

어느 예언자도 유대교의 유일신 사상을 전파하기 위해 실제로 국외로 파견된 적이 없다. 유대교의 일반적 이해를 따르면, 민족주의를 초월하는 제2이사야와 같은 예언자들의 세계주의는 성격상 종말론적이다. “내가 그를 많은 민족 앞에 증인으로 세웠다”(이사야 55, 4)는 말을 유대인들은 ‘이스라엘’이 만백성 앞에 야훼의 이름을 알리는 증인으로 섰다는 의미로 이해한다. 즉 만백성에게로 보냄을 받은 것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이지 예언자 한 개인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의 길을 잃은 양들에게 보내심을 받았을 따름이다.”(마태 15, 24)라고 한 예수의 말씀 속에도 유대교의 전통적인 사상이 깊이 뿌리 박혀 있다고 유대인들은 해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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