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정신을 사는 구체적 길

2011. 2. 1. 오전 7:3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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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정신을 사는 구체적 길
                                                                                                                                                        2011.1월 사목정보

      가난의 정신을 삶으로 살아내는 구체적인 길의 전개를 아래와 같이하고자 합니다. 먼저 가난의 정신에 대한 개념을 보고, 두 번째로는 유혹받으시는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구체적인 길과 세 번째로 성령의 열매와 칠죄종이 만들어내는 결실을 다루면서 하느님과 함께 동행 하는 삶과 하느님을 떠난 삶의 차이를 다루고 마지막으로 가난의 정신으로 살아야만 하는 일상수행에 대해서 다루고자 합니다.

 

 

1. 가난의 정신이란?

      가난의 정신이란 맑은 마음으로 무소유의 삶을 사는 청빈의 덕이라 하겠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하지만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하고 있으며 온 몸과 마음을 다하여 자신이 받은 은총과 사도직을 완수하기에 필요한 덕목입니다.

        공의회는 수도자 교령에서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자발적으로 지키는 청빈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나타내는 표지라고 말하고 있으며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모든 것을 투신하는 수도자들은 청빈을 통하여 부유하셨지만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시고 그 가난하심으로써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고자 하신(2고린 8,9;마태 8, 20참조) 그리스도의 가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보배를 하늘에 쌓으며(마태 6,20참조) 실제적으로나, 정신적으로나 가난하게 살기 위하여 자기들의 생활과 사업에 필요한 것을 얻는데 있어 합당치 않은 모든 걱정을 피하고 하늘의 성부의 섭리(마태 6, 25참조)에 신뢰하여야 한다.(수도자 교령 13 참조)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가난의 정신인 청빈(淸貧)의 의미는  가난하게 사신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모든 것이 아버지의 것임을 깨달아 모든 영광을 하느님께 돌리며, 동시에 가난한 이들에게서도 아버지의 영광을 알아보는 데 있습니다. 그러므로 청빈은 단순히 물질을 소유하지 않는 것 뿐 아니라. 순수하고 단순함과 관대함을 통하여 소유와 집착에서 해방된 삶입니다.

          성경은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계명을 잘 지킨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가진 것을 포기해야한다고 못 박고 있습니다.(마태 19,21, 마르 10,21, 루카 11,22 참조) 청빈이란 주님을 따르기 위해서 필연코 가야하는 과정입니다. 청빈의 길을 가기위해서는 먼저 주님을 알아 뵙고 만남이 필요하며, 이 만남은 발견한 보물입니다. 밭에 묻힌 보물과 진주를 발견하면 가진 것을 다 팔아 보물과 진주를 사는 것처럼(마태 13,44-46 참조)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해는 가진 것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가난한 정신을 사는 것은 주님의 은총으로 이루어집니다. 때때로 하느님의 크신 사랑을 느낄 때, 자신의 초라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고 모든 것을 은총으로 받아들일 마음이 생깁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섭리와 사랑을 신뢰하게 되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기쁨과 평화를 깨달을 때, 가진 것을 다 팔아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게 됩니다.

 

2. 예수님이 받으신 유혹과 가난

         예수님의 가난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신 후 광야에서 받으신 세 가지 유혹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그 유혹 중에 하   나는 유혹자가 다가와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이 돌들에게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라는 유혹을 받으셨을 때, 예수님은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살지 않고 하느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마태 4,1-4 참조)고 대답하십니다. 예수님은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자신의 능력과 부를 상징하는 빵보다도 삶의 의미를 풍요롭게 하는 아버지의 말씀을 선택하시어 모든 것에 말씀을 우선으로 하십니다.

           또 하나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그분께서는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 라는 유혹 앞에서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하지 마라.’”(마태 4,5-7 참조)고 대답하십니다. 이는 당신이 이 세상에서 하느님을 섬기는 자세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과 이에 따른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계신 것입니다. 마지막 십자가를 지시는 모습에서 온전히 아버지를 향한 삶을 보여 주셨습니다.

         다른 하나는 당신이 땅에 엎드려 나에게 경배하면 저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겠소.”라는 유혹에 주 너의 하느님께 경배하고 그분만을 섬겨라.’”(마태 4,8-10 참조)라고 대답하십니다. 다른 어떤 것을 얻기 위해서 하느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하느님을 섬길 뿐이고, 아버지가 하시는 일을 할 뿐임을 말씀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아버지 하느님의 일을 하십니다.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하는 순간에는 온전히 자신을 투신하여 살아가는 걱정도, 위험이나 갈등에 직면했을 때에도, 권력과 명예 앞에서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흔연히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하십니다.

 

3. 칠죄종과 성령으로 살아가는 가난.

           우리가 하느님을 섬기는 삶은 성령의 빛으로 살아가는 삶인데, 여기에 이기적인 자아는 갈등을 만들어 주님을 따르는데 혼선을 빚어냅니다. ‘이기적인 자아가 만들어내는 갈등은 칠죄종에서 비롯된 것들로 그 사람의 성품에서 보입니다. 발견한 보물 즉 그리스도의 현존을 얻기 위해서는 이기적인 자아를 내려놓는 수행이 필요합니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갈라 5,22-23) 인데, 이는 그 사람의 성품에서 알아 볼 수 있습니다. 그 반대인 칠죄종은 교오(교만). 간린(인색). 분노. 질투. 해태(게으름). 탐도. 미색(색정)인데, 이것들도 그 사람의 성품으로 나타납니다. 형성된 성품에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것 즉 그 열매가 보여 집니다.

          성령의 열매가 성령의 것이라면, 칠죄종은 나의 이기적 자아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의 열매를 얻기 위해서는 진주 장사꾼이 가진 것을 다 팔아 값진 진주를 사듯 이기적 자아를 팔아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자 청년이 가진 것이 많아 예수님을 떠나듯이 그리스도를 떠나게 됩니다. 칠죄종으로 이루어진 성품은 신약성경의 유다인이나 바리시이들 등 지도자들을 보면 쉽게 그림이 그려집니다.

           칠죄종을 하나하나 간단하게 보면, 첫째 교오(교만)의 성품은 이웃이나 하느님에 대한 의식에서 벗어나 자기의 시각에만 의존하게 되어 하느님을 보지 않도록 하는 악의 세력입니다. 둘째 간린(인색)은 하느님과 이웃에게 관대한 마음을 갖지 못하고 자신과 세상 것에 얽매여 옹졸해진 모습으로 이해와 용서의 여유가 없고, 일상에서도 하느님께 대한 여유 있는 마음을 못 갖도록 하는 악의 세력입니다. 셋째는 분노인데 이는 자비심도 없고 분개하고 쌀쌀맞고 복수심에 가득 찬 성품으로 자신의 십자가를 받아들이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웃을 십자가에 못 박고 모멸감을 주어 죄에 빠지게 하는 세력입니다. 넷째는 질투인데 하느님의 사랑이 있어야 할 자리에 자신이 중심이 되어 불편한 이웃을 죽이고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사람들을 교묘하게 죽여서 자신이 주인이 되게 하는 악의 세력입니다. 다섯째 해태(게으름)은 하느님과 동행하고 수행정진 하는데 집중하지 않고, 딴 짓이나 하며 게을리 하여 무기력한 사람이 되게 하는 악의 세력입니다. 여섯째는 탐도(욕심)인데 이는 욕심이나 열정이 자신을 짓눌러서 하느님의 섭리를 다르지 않게 하는 악에 세력입니다. 일곱째는 미색(색정)인데 눈에 보이는 것 또는 감각으로 감지되는 색()에 빠지게 하여 영이 어두워져서 주님을 사랑하는 힘과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과 정신이 없어지게 하는 세력입니다.

          죄의 뿌리이며 죄의 세력인 칠죄종은 사람에게서 나올 때(성품)에는 악의 힘을 가지고 있고, 때로는 악령의 조종당하기도 합니다. 이런 세력 앞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를 준비하여야 합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십자가의 길을 주님과 함께 하는 길입니다.

 

4. 받아들이고-놓아주기, 침묵 그리고 변모

         가난의 정신으로 사는 삶이란 세상 것의 풍요보다는 하느님의 풍요를 누리는 삶이라 하겠습니다. 하느님으로 인한 풍요로움이란 어둠에서 빛이 비쳐나오 듯, 이룰 수 없는 꿈이 이루어지듯 일상에서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는 기적 같은 체험입니다.

         이 풍요를 위해 먼저 필요한 자세 세 가지를 들어보겠습니다. 수도자들이 허원 하는 청빈, 순명, 정결의 세 가지와 같은 맥락으로 받아들이고 놓아주기’, ‘침묵그리고 자신의 변모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보려합니다.

         먼저 받아들이고 놓아주기는 하느님이 주신 나의 삶을 받아 들이여서 그 안에서 의미-말씀을 발견하고, 이를 방해하는 것들을 무심히 놓아주는 수행입니다. 나의 삶은 보물이 묻힌 밭입니다. 그 밭을 사기위해 가진 것들을 파는 것처럼, 그리고 값진 진주를 사기 위해서 그 동안 나의 값진 것들을 다 팔아서 그 값진 진주를 사는 일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의 삶을 용서하고, 나의 한계를 받아들이다 보면 고독이 다가옵니다. 이 고독이 보물이 있는 자리입니다. 이 고독의 어둠을 무심히 바라보다보면 빛이 보입니다. 이 빛이 나를 온전히 감쌀 때까지 머물면 말씀(로고스)이 새 생명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그 생명을 얻기 위해 놓아버릴 것들이 장애물처럼 또는 아쉬운 것들로 다가옵니다. 그러나 내 삶의 보물과 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현존입니다. 그분의 기쁨과 평화입니다.

         다음으로는 침묵입니다. 하느님과 동행하기 위해서 하느님의 현존을 알아차리기 위해서 침묵이 절실해 집니다. 실패나 성공을 기억에 끌어들여 끊임없이 소란을 피우는 이기적 자아를 잠재우고 하느님의 고요에 머무는 일입니다. 하느님과 동행하기 위해 모는 것을 여의고 순수한 현존에 머무는 일입니다. 진정한 행복이 깃드는 순간입니다.

침묵으로 이르는 길은 먼저 관조(觀照) 즉 바라보고 느끼고 머물기 시작하는 일입니다. 이는 내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내 삶의 의미인 말씀을 발견하는 길이고, 기쁨이 따르게 됩니다. 이 침묵으로 하느님의 침묵 앞에 서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것처럼 내 안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랑의 불꽃을 더욱 키우기 위해 자신의 변모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위해 외형적인 것 즉 지금까지 하느님과 동행해온 자신의 모든 것 즉 습관과 덕들도 필요와 상황에 따라 놓아 주어야 합니다. 좋은 황금이 용광로를 여러 번 거쳐야 하듯, 하느님의 사람은 시련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람이 됩니다. 하느님은 끊임없이 나를 새로운 세계로 동행하기를 바라십니다. 내 몸에 배인 나의 의식과 습관들을 놓아주어야 합니다. 오직 하느님을 향한 순정으로 새 순간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변모는 깨달음입니다. 그동안 배우고 체험한 것들이 내 삶으로 녹아서 나의 씨앗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사랑이 하느님의 사랑의 향기를 담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사랑해 온 이웃과 하느님을 더욱 사랑하기 위해 그동안 해오던 여러 가지 삶의 기법을 놓아버리는 마치 어린아이의 사랑과 어른의 사랑이 다르듯이 물러서서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 순간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아픔과 기쁨이 함께하는 순간들입니다.

 

 

댓글 1

  • 2018년 6월 5일 오후 12:36

    신망애 삼덕 안에서 이제는 내가 사는것이아니라 그리스도가 내안에 사시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