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 사람들, 평균 수명이 엄청 높아져서
OECD회원국 평균을 따라잡는다는 이야기 들으셨죠?
여성들은 80세 남짓, 남성들도 75세 정도라고 하니
대단한 수치입니다.
추석을 지내며 먼저 떠나신 선조들 기억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남은 날들도 헤아려보며
‘죽음’이란 단어에 대해 조금은 생각해봐야하는 날입니다.
과연 몇 살까지 살다
이 세상 떠나는 게 적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80살까지?
아니면 100살까지?
그도 아니라면 150살까지?
혹시 200살까지 살면 행복할 것 같습니까?
오히려 반대일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것은 정말이지 축복이 아니라 저주입니다.
이미 친구들은 다 세상 떠났을 것입니다.
아들들이나 손자들도 세상을 떠났을 것입니다.
새해만 되면 KBS, MBC, SBS, 세계 기네스 협회에서
다들 찾아와 난리들일 것입니다.
그 정도 되면 오래 산다는 것이 축복이 아니라 고통입니다.
불행입니다. 정말 끔찍한 일입니다.
임종자들을 떠나보내며 드는 한 가지 생각이 있습니다.
죽음이 있어 정말 다행이란 생각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죽음은 하나의 은총입니다.
죽음은 해결사입니다.
만일 죽음이 없다면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 방황의 세월을 어떻게 할 것입니까?
죽음이 없다면 끝도 없이 되풀이되는
이 악습의 굴레를 어떻게 할 것입니까?
죽음이 없다면 이 처절한 소외감, 이 심연의 고독,
이 비참한 현실을 어떻게 한없이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어떤 의미에서 인간은 죽음이 있어 행복합니다.
죽음을 통해 거칠고 험난했던
오랜 여행길을 마칠 수 있습니다.
결국 죽음은 인간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군요.
그 오랜 세월,
상처와 고통의 나날을 접고 마침내
하느님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가는 한 영혼을 바라보며
죽음이야말로 인생의 가장 궁극적인 해결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 죽음은
결코 마지막 날, 인생 종치는 날, 밥숟가락 놓는 날,
쫄딱 망하는 날, 무작정 슬퍼할 날이
아님을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우리에게 있어 죽음은 그간 힘겹게 지고 왔던
모든 멍에를 홀가분하게 내려놓은 날,
기쁜 얼굴로 주님의 얼굴을 마주 뵙는 날,
환희와 축제의 날이 되길 기원합니다.
이 세상을 떠난 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허전하고, 싱숭생숭하시겠지요.
너무 그렇게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제 그들은 우리보다 훨씬 사정이 낫습니다.
영원하신 하느님 아버지의 품에 안겨
영원한 복락을 누리고 있습니다.
편안한 얼굴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더 이상 고통도, 슬픔도, 울부짖음도, 원망도 없는 곳에서,
자비하신 주님 품안에서 기뻐하고 있습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글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