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아지는 연습

2016. 10. 1. 오전 7:0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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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아지는 연습]

 

남미에서 온 동료 관구장 신부의 나눔을 들었습니다.

한 수녀님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이런 하소연을 털어놓더랍니다.

 

“신부님, 어떻게 이럴 수가 있습니까?

저는 봉헌된 수도자로서 평생토록 목숨 바쳐 하느님을 사랑했고,

동료 수녀들을 사랑했고, 나환우들을 사랑했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담당의사는 제게 말기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내렸습니다.”

 

착하기로 유명한 그 수녀 앞에 동료 신부님을 할 말이 없더랍니다.

그 어떤 위로의 말도 찾을 수가 없어 한동안 침묵 속에 있다가

그는 돈 보스코가 그랬듯이 사무실에 걸려있던 십자가를 손으로 가리켰답니다.

 

그리 길지도 않은 이 한 세상 살아가면서

큰 탈 없이 무병장수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한 폭의 풍경화처럼 평화롭게 아기자기하게

그렇게 살아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평탄한 지름길만 우리 앞에 펼쳐지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일말의 위로가 되는 것은 위대한 신앙의 선조들 역시

다들 원치 않은 십자가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조금도 호의적이지 않은 삶과 매일 마주하며

비틀비틀 신앙의 여정을 걸어갔다는 것입니다.

 

특히 욥이라는 특별한 인물의 삶은 이해할 수 없는 고통 속에 신음하는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사실 욥은 한때 아주 잘나가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하느님으로부터 극찬을 들은 보기 드믄

참 신앙인이었습니다.

 

“너는 나의 종 욥을 눈여겨보았느냐?

그와 같이 흠 없고 올곧으며 하느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은 땅 위에 다시 없다.”(욥기 1,8)

 

이토록 하느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욥이었는데,

‘때로 이해 못할 하느님’께서 잘 나가던 욥을 크게 내리치십니다.

그를 심연의 구렁텅이로 떨어트리며 시험에 빠지게 하십니다.

그것도 적당히 내리치시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풍비박산이 나게 만드십니다.

 

그 많던 재산 모두를 약탈당하게 만드셨습니다.

그 많던 종들과 가축들이 모두 죽어나갔습니다.

결국 사랑하는 자녀들마저 모두 비참하게 죽고 맙니다.

뿐만 아닙니다.

 

악성 피부병에 걸린 욥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재를 온 몸에 둘러쓰고 사기그릇 조각으로

가려운 부위를 긁는 것이었습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히는

어이없는 인생이 되고 만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볼 욥의 모습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느님을 원망하지 않습니다.

자신 앞에 펼쳐지는 정말 이해하지 못할

억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합니다.

하느님 앞에 완전히 벌거벗은 알몸으로 엎드려 외칩니다.

 

“알몸으로 어머니 배에서 나온 이 몸,

알몸으로 그리 돌아가리라.

주님께서 주셨다가 주님께서 가져가시니,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토록 큰 불행 앞에서도 악담이나 저주,

투덜거림이 아니라 하느님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우리도

주님 앞에 완전히 알몸으로 설 때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난다 긴다 하지만 어느새 우리도

강렬한 밑바닥 체험을 할 때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은 잔뜩 이렇게 저렇게 치장을 하고 있지만

언젠가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을 하느님 앞에

드러낼 때가 있을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작아지는 연습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높은 곳에 있을수록 밑으로 떨어질 때 그 충격이 큽니다.

그러니 지금부터 낮은 곳으로 내려가는 노력을 되풀이해야겠습니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심연의 밑바닥 거기까지 내려가면

거기서 광대무변한 하느님의 얼굴을 뵐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낮아지고 작아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 살레시오회 한국관구 관구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글에서

 

댓글 1

  • 2016년 10월 2일 오전 4:38

    아멘! 주님, 언제나 주님과 함께 걷는 길은 행복합니다.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푸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