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장의 어머니

2010. 4. 26. 오전 12:19:15

글자
쓰레기장의 어머니
 
          -김홍식 지음 ‘행복 울타리 가족’에서 옮긴 글입니다.-
 
엄마! 여기 있던 원서 버렸어요?”
아니, 오늘은 그 방에 안 들어갔는데?”
에이, 또 버렸으면서. 내 물건 만지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잘됐네, 대학 안 가면 돼지 뭐! 오늘 마감인데, 아주 잘됐어!”
왜 또 그래? 잘 찾아봐!”
다 찾아봤어!” 책상 위에 둔 걸 엄마 아니면 누가 만져? 청소한다고 쓸어버린 거지 뭐. 아들 인생을 망쳐요. 망쳐!”
 
재수생 혜수는 지난해보다 덜 나온 수능 점수 때문에 4년제 대학에 떨어지고 전문대 전형 원서를 사놓고 망설이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내내 책상 위에 올려 놓고 시간만 보내다가 마지막 날이 돼서야 원서를 내려고 찾았는데 그것이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어머니에게 한참 화풀이를 하고 침대에 누워 뒹굴고 있는데 어머니도 속이 상하시는지 밖으로 나가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사실 따지자면 어머니 책임도 아닌데, 누군가에게 자신의 실수를 떠넘길 대상을 찾는다는 게 그만 가장 가까이에 있고 가장 편한 사람인 어머니에게 돌아갔던 것입니다.
 
어머니의 축 처진 어깨가 눈에 그려지자 혜수는 자신이 너무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얼른 침대에서 일어나 다시 찾아보려는 순간, 침대와 책상 사이에 봉투 하나가 걸려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혹시나 해서 보니 자기가 찾던 그 원서였습니다.
 
어머니께서 돌아오시면 원서를 찾았다고, 어머니 책임이 아니라 제 잘못이라고 말씀 드릴 생각이었는데, 그때 문소리가 들렸습니다. 방문을 여니 어머니의 힘없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여전히 어머니는 자신이 원서를 버렸다고 생각하시는지 아들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였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어디를 갔다 오셨는지 머리에는 거미줄이 잔뜩 결려 있었고, 옷과 손에도 먼지가 뽀얗게 묻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원서를 찾으려고 동네 쓰레기장을 뒤지다 오신 모양입니다.
 
혜수는 그런 어머니에게 차마 원서를 찾았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랬다간 뭔가 더 큰 일이 벌어질 것만 같았습니다. 혜수는 얼른 원서를 가방에 넣고 다시 원서를 사서라도 올해는 꼭 대학에 가야겠다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왔습니다.
 
집을 나오기는 했지만, 혜수의 눈에는 자꾸만 어머니의 모습이 선하게 그려졌습니다. 자신이 버리지 않은 원서를 찾으려고 쓰레기장을 맨손으로 파헤치시는 모습을 생각하니 올해는 정말 어떻게든 합격을 해야만 할 것 같았습니다.
 
지금 혜수는 군대에 갔다 왔고, 우여곡절 끝에 들어간 대학도 졸업을 했습니다. 취업 후 직장에서도 인정 받는 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어머니께는 아직도 그때의 일을 말씀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실수도 아닌 일 때문에 쓰레기장을 뒤져야 했던 사실을 알게 되면 어머니가 정말 아들에게 실망하실까 염려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게 된다고 해도 아들을 미워하실 리는 없습니다. 그러나 혜수는 그 사건을 이실직고해 후련한 마음으로 살기보다는 어머니를 볼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부족한 아들인지 되새기며 빚진 마음으로 사는 게 낫겠다고 생각합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위해서라면 맨손으로 쓰레기장도 파 헤칠 수 있는 분입니다. 그보다 더한 일이라도 하실 수 있는 분이 어머니입니다. 어머니 머리 위에 가득한 거미줄, 손발에 묻은 먼지나 오물들은 자식을 위한 어머니의 희생입니다. 어머니가 아니라면 그럴 이유가 없습니다.
 
어머니의 손이 부드럽지 못한 것은 자녀들이 해야 할 일을 대신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가 두통으로 시달리는 것은 자식들의 고민을 대신 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어깨가 작은 이유는 자식들이 그 어깨에 매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모습이 초라한 것은 자녀에게 자신의 화려함을 물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어머니는 가장 먼저 일어나고 가장 늦게 잠자리에 드시는 분입니다.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자녀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머니만 아니라면 손이 거칠어질 이유도 없고, 어머니만 아니라면 일찍 일어나고 늦게 누울 필요도 없습니다. 어머니만 아니라면 눈물을 흘릴 일도 없습니다.
 
어머니는 오늘도 자녀를 위해 어디선가 누군가를 만나고, 무슨 일인가를 하고, 눈물을 흘리고 계실 것입니다.
 
다음달 5월 8일은 어버이의 날입니다. 저는 일찍 부모님을 여의고 살아온 터라 아쉬움이 많습니다. 살아 생전에 내 힘으로 효도 한 번 못하고 가시는 길을 붙잡지 못하였습니다. 조금만 더 오래 사셨다면 하는 아쉬움에 ‘쓰레기장의 어머니’라는 글을 읽고 가슴이 뭉클해옵니다.
이제 딸 아이를 시집 보내고 외손자를 보아 성당 앞 신도브래뉴 아파트로 이사를 시켜 놓고 요즘 두 달 된 손자 봐주는 재미로 소일하고 있습니다.
내가 건강하게 삶으로서 딸 크리스티나에게 나와 같은 아쉬움을 안겨 주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직 부모님을 모시는 분들에게 고합니다. 살아 생전에 부모님들 잘 모시십시오. 돌아가신 뒤 후회는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저는 자식들이 모두 장성하여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우리 애들 잘 못될까 봐 지금도 항상 노심초사하고 있습니다. 이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쓰레기장의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그리고 그 아들의 마음 또한 충분히 이해를 합니다. 사실을 말씀 드림으로써 어머님이 더 서운해 하실까 봐 말씀 드리지 못함 또한 효도하는 마음이겠지요. 부모는 자식들의 울타리에서 해방되려 하지 마십시오. 자녀분들은 부모님을 울타리 밖으로 내 몰지 마십시오. 그 울타리 안에 있어야 부모이고, 자식이고 가족입니다.
십계 중 제4 계명이 ”부모에게 효도하라”입니다. 이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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