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제 사무실 근처 수녀원의 수녀님들이 찾아와 부활계란 두 개를 전해주셨습니다.
'부활 축하해요'라며 예쁜 웃음과 함께 손에 쥐어준 계란 두 알,
삼십년만에 처음 받아 본 부활계란이었습니다.
지난 12월 세례받은 후 첫 부활절을 맞았습니다.
"죽기 전에 죽으면 죽을 때 죽지 않는다"는 말처럼 지금 내 안에 죽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새로운 삶은 어떻게 맞을지 생각합니다.
예비자 기간을 포함해 믿음을 가진 후 지난 10개월은,
지난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새로운 삶의 길을 원했던 시간이었지요.
'오늘도 새로운 날'이 되기를 기도하며 걸었던 새벽미사 길,
사랑으로 살기를 기도하며 성전을 향해 걸어 올라가는 계단길,
지난 모든 나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감사와 사랑의 삶을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미사시간.
그 모든 기도는 바로,
'다시 태어나는 삶' '새로운 나'를 원했던 마음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아주 어릴 적부터, 제 생각을 잡아둔 것은 '삶이 유한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열 살이 넘어서면서 삶은 무엇인지, 죽음은 어떤 상태인지,
그리고 '왜 영원한 것은 없는지'가 큰 고민이었습니다.
모든 것은 변하고 소멸한다는, 넘어설 수 없는 절대 사실 때문에 늘 생각이 많은 아이였고,
커서는 그 답을 구하려고 책, 연극과 음악을 늘 곁에 두고 살았습니다.
살면서 맞았던 많은 기쁜 일들로 때때로 접어지긴 했지만,
어김없이 또다시 같은 질문으로 돌아가곤 했지요. '시지프스의 노동' 같았습니다.
답이 찾아지지 않는 반복되는 질문, 채워지지 않는 마음 속의 찬 기운 때문에
주기적 불면상태를 겪기도 했지요. 물론 감사하게도 지금은 늘 숙면입니다.
그런데,
나의 오래되고 지난했던 질문에 하느님은
"너의 모든 순간에 '사랑으로 함께 하는 내가 있다"는 믿음을 답으로 주셨습니다.
그 사랑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는 것, 그 분은
제가 잊고 외면해 있는 순간에도 저를 바라보고 계시며,
나조차도 다 알지 못하는 내 모습을 모두 알고 계시며,
고통과 눈물이 은총이라는 것을,
외롭고 두려울 때는 기도만이 평화라는 것을,
사랑만이 다시 태어나는 길이며, 부활의 길이라는 것을 답으로 주셨습니다.
영원한 사랑이신, 그 분을 만난 순간부터 '새로운 삶'이 어떻게 가능하지를 조금씩 느끼게 됩니다.
성당의 모든 신자분들과 부활의 기쁨을 나누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