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7월 31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2010. 7. 31. 오전 11: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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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7월 31일 성 이냐시오 데 로욜라 사제 기념일

제1독서 예레미야 26,11-16.24

그 무렵 11 사제들과 예언자들이 대신들과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의 귀로 들으신 것처럼, 이 사람은 이 도성을 거슬러 예언하였으니, 그를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
12 이에 예레미야가 모든 대신들과 온 백성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이 집과 도성에 대하여 여러분이 들으신 이것을 예언하게 하셨습니다.
13 그러니 이제 여러분의 길과 행실을 고치고, 주 여러분의 하느님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러면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내리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거두실 것입니다.
14 이내 몸이야 여러분 손에 있으니, 여러분이 보기에 좋을 대로 바르게 나를 처리하십시오.
15 그러나 이것만은 분명히 알아 두십시오. 여러분이 나를 죽인다면, 여러분 자신과 이 도성과 그 주민들은 죄 없는 이의 피를 흘린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참으로 주님께서는 나를 여러분에게 보내시어, 여러분의 귀에 대고 이 모든 말씀을 전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16 그러자 대신들과 온 백성이 사제들과 예언자들에게 말하였다. “이 사람은 사형당할 만한 죄목이 없습니다. 그는 우리에게 주 우리 하느님의 이름으로 말하였습니다.”
24 예레미야는 사판의 아들 아히캄의 도움으로, 백성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지는 않게 되었다.


복음 마태오 14,1-12

1 그때에 헤로데 영주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2 시종들에게, “그 사람은 세례자 요한이다. 그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난 것이다. 그러니 그에게서 그런 기적의 힘이 일어나지.” 하고 말하였다.
3 헤로데는 자기 동생 필리포스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붙잡아 묶어 감옥에 가둔 일이 있었다. 4 요한이 헤로데에게, “그 여자를 차지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고 여러 차례 말하였기 때문이다.
5 헤로데는 요한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웠다. 그들이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이다.
6 그런데 마침 헤로데가 생일을 맞이하자, 헤로디아의 딸이 손님들 앞에서 춤을 추어 그를 즐겁게 해 주었다. 7 그래서 헤로데는 그 소녀에게, 무엇이든 청하는 대로 주겠다고 맹세하며 약속하였다.
8 그러자 소녀는 자기 어머니가 부추기는 대로, “세례자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 이리 가져다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임금은 괴로웠지만, 맹세까지 하였고 또 손님들 앞이어서 그렇게 해 주라고 명령하고, 10 사람을 보내어 감옥에서 요한의 목을 베게 하였다. 11 그리고 그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다가 소녀에게 주게 하자, 소녀는 그것을 자기 어머니에게 가져갔다.
12 요한의 제자들은 가서 그의 주검을 거두어 장사 지내고, 예수님께 가서 알렸다.




저의 부끄러운 과거의 한 조각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건강한 남자라면 반드시 가야 하는 곳인 군대에 저 역시 다녀왔습니다. 그런데 군대 생활의 시작이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지요. 저를 괴롭히고 사사건건 간섭하는 한 고참 선임병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선임병이 제게 자신의 수건을 빨아가지고 오라고 했습니다. 냄새나는 수건을 들고 세면장으로 가면서 문득 앙갚음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그 수건으로 냄새나는 변기를 깨끗이 닦았지요. 그리고 다시 깨끗이 빨아서 선임병에게 가져다주었습니다. 저로써는 최고의 복수를 했다는 생각에 통쾌하고 만족스러웠습니다. 그런데 그 선임병이 “너 이거 깨끗이 빨은 거야? 그런데 왜 이상한 냄새가 나지?”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라고, 깨끗이 세탁을 했다고 말은 했지만 제 속마음이 얼마나 불안했었는지 모릅니다. 죄 짓고 못 산다는 이야기가 생각나면서 다시는 이러한 행동을 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했지요.

일이 자기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또 누군가가 자신의 앞길을 가로 막을 때, 우리들 대부분은 공격적이고 교묘한 속임수를 쓰며 화를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행동은 자신의 에너지를 갉아먹는 꼴이 되어 버릴 뿐입니다.

사실 자신의 목표를 위해 공격적인 태도나 성급한 행동으로 일관하는 사람은 스스로 힘이 없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몸집이 작은 강아지를 보세요. 이 작은 강아지는 쉴 새 없이 짖어댑니다. 자신의 힘이 없기 때문에 소리로 쫓아내는 것이지요. 그러나 몸집이 큰 개는 자기가 가진 힘을 알고 있기 때문에 자주 짖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 등장하는 헤로데와 헤로디아 그리고 헤로디아의 딸 모두는 작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체면을 지키려는 이유만으로 세례자 요한을 죽이는 공격적이고 성급한 행동을 합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과연 마음이 편했을까요? 아마 죽을 때까지 아무 죄도 없는 사람을 죽였다는 죄책감에 시달릴 수밖에 없었을 것이며, 죽어서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데 커다란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사람들에게 나쁜 영주로, 나쁜 여인으로, 나쁜 딸로 기억되어 우리들 가운데 회자되고 있습니다.

한 순간의 만족이 이렇게 자신에게 커다란 불이익을 가져올 수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추구하는 것은 과연 무엇일까요? 후회하지 않을 행동이 아니라, 계속해서 후회할 수밖에 없는 한 순간의 만족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요?

이제는 순간이 아닌 영원을 지향하는 우리들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후회하지 않으면서 주님과 함께 참 행복의 길에 설 수 있습니다.


세월은 흐르는 것이 아니라 쌓이는 것이다(이외수).



원하는 것을 얻는 법(김영희, ‘20대, 세계 무대에 너를 세워라’ 중에서)

독일의 대학은 박사과정만 마치는 데도 10년 정도 걸린다. 보통 문리대 학생들은 주 전공 외에 최소 2개 이상의 부전공을 선택해야만 한다. 나 역시 전공인 교육학 외에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철학을 공부했다. 박사과정을 공부할 때는 라틴어까지 해야 했으니, 공부 분량이 만만치 않았다. 사람들은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잘했느냐고 묻지만, 내가 믿는 건 ‘머리 좋은 사람보다 노력하는 사람이 낫다’는 사실이다.

나 역시 특별한 공부 비법 같은 건 없다. 공부는 하루도 빠짐없이 매일 하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쾰른 대학 예비과정부터 박사과정을 마치기까지 10년 동안 하루 4시간 이상 자 본 적이 없었다. 무조건 양적으로 많은 시간을 투자했다. 그리고 수없이 읽고 또 읽기를 반복했다. 박사과정을 공부할 때는 ‘박사가 된 다음 죽어도 좋다’는 마음으로 매달렸다.

‘죽을 각오로, 정말 독하게 한번 해 보자!’ 박사 논문을 쓸 때는 전투 같은 생활을 했다. 당시는 컴퓨터가 보급되지 않아 320쪽에 달하는 논문을 타자기로 한 자 한 자 쳤다. 한 자라도 오타가 생기면 그 페이지는 처음부터 다시 쳐야 했다. 그나마 고추장에 밥을 비벼 먹으며 매달릴 때는 나았다. 마지막엔 물만 마시며 타자기와 씨름했다. 논문을 제출하고 돌아와 거울을 들여다보니 눈이 퉁퉁 부어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그대로 자리에 누워 며칠을 꼼짝없이 앓았다. 열이 나는 몸보다 가슴속의 벅찬 성취감이 더 뜨거웠다. 혹자는 나를 ‘강한 사람’이라 말하고, 어떤 이는 ‘지독하다’며 고개를 젓는다. 그러면 나는 반문한다.

“그 정도로 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원하는 걸 이룰 수 있겠어요?”


댓글 2

  • 2010년 7월 31일 오후 6:06

    감사합니다. 묵상글이 기도도 되니 하나로 통합해도?... 매번 좋은 글 고맙습니다.

  • 2010년 8월 1일 오후 3:47

    ㅎㅎㅎ 요런 실수를.. 제가 요즘 정신이 없다보니..

└ 기 도 ┘기도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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