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보면 만나게 되는 사람들이 자신의 취향에 맞아 떨어지는 사람들이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 틈에서 질식할 것만 같은 시간들을 보내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러한 자신이 무엇인가 어느 구석이 이상한 탓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었지만 살아가다가 보면 자신과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도 만나게 되니, 그렇게 자신이 이상할 것도 없이 그저 다를 뿐이라는 것을 받아들이고 나면 자신에게 주어지는 강요들이 생각보다는 수월하게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렇게 세상을 살아나가는 이치를 받아들이게 되지만, 그래도 수월한 일은 아니다.
처음 가졌던 직장에서의 동료들의 시샘을 받아가면서 느끼던 외로움에 데었던 탓에 두 번째로 택한 직장에서는 어지간하면 져주고 어지간하면 밟혀주자고 마음을 애시당초 먹고 일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직장이라는 곳은 경쟁사회인 탓인지 사람들에게는 그것이 만만하게 보이고, 함부로 굴어도 된다는 표현으로 받아들여지게 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나중에 깨닫게 된 것이었지만, 상식이 다르다는 것은 정말로 힘들고 어려운 일이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 직장으로 이 직장을 택한 한 동료는 잘 지내보고자 한다고 생각을 했겠지만, 첫 대면부터 참 무례한 거짓말을 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주장하는 실수를 하기 시작하였다.
조교로부터 연구실은 두 개가 비어있으니 둘 중의 하나를 택하라고 하였는데, 하나는 창이 있는 보통 연구실이었고, 다른 하나는 창고였다. 당연하게 창고를 쓰기 싫었고, 지난 직장에서 창 없는 방에서 고생하던 기억에 보통 연구실 키를 받아가지고 집으로 왔다. 그러나 이 동료는 같이 임용이 되어서 임명장을 받는 날 얼굴을 보자마자 그 키를 내어놓으라고 했다. 그 이유는 자신이 햇볕을 못보는 곳에서 너무 힘이 들어서 남편을 미국에 두고 먼저 귀국을 했을 정도이니 그 연구실을 자기가 써야 한다는 것이었다. 별로 설득력도 없었고, 납득도 가지 않았다. 그리고 정말로 내어주기 싫었다. 이렇게까지 구는가.. 그러나 조금은 너그럽게 내가 싫으니 저 사람도 싫었을 거라고 생각해주기로 하였다.
그는 당장 학교로 가자고 버스까지 끌고 가서 학과장에게 데리고 갔다. 학과장은 서열이 우선이예요.. 그러나 이것은 그런 문제가 아니지 않은가.. 그러나 귀찮았다. 이전 직장에서 연구실을 옮기고 이사하는 문제로 따지다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고 싸우고 했었는지 기억하니까.. 더 이상 그런 문제로 복잡해지기 싫었다. 무례함과 깊이 없는 이야기들에 피곤해서 열쇠를 내어주고 창고방을 쓰기로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직장에서의 이미지 였나 보다. 그 사람들은 모든 것을 만만하게 보고서 훈계하고, 억압하고 가능한 한 나에게 부당하게 일들을 처리하였다. 사실 그 정도 양보하는 것이 뭐 큰 일은 아니라고 생각했었지만, 사실 큰 일 이었나보다. 그 동료는 그 이후 나를 이용하기 시작하는데, 그의 두뇌는 아주 특이했다. 자신의 시샘과 이익을 위한 일이라면, 즉각 새로운 명분을 만들어내는 일이었다. 예를 들면, 학과장이 근로학생을 상주시키는 것이 샘이 나면, 그것은 근로학생의 근로분량이 불공평하다고 파악된다고 주장했다. 학과장이 조교와 수학여행을 가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싱글의 자유이니 따라가라고 어거지를 부렸다. 결국 나는 욕만 먹고 말았다. 그의 권유대로 가면, 반드시 오물을 뒤집어썼다.
그는 나더러 수더분하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나 수더분한 것이 아니라 경우도 없고, 염치도 없는 사람에게 화가 나는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결국 어느 순간 그는 나의 방을 자신의 휴게실처럼 이용하기 시작했고, 간호과에서 전공이 다른 약자의 입장에서 받아주는 것이 조금은 나을 것 같았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는 최고 학부인 일류대학을 나온 자신이 박사라는 것을 확인받고 또 받는 일로서 스스로를 만족시키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 대학 정원이 몇 명인가? 그 사람들을 아들로 가진 친구들도 많고, 남편으로 가진 친구들도 많으며, 가족 중에도 있다. 존중을 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이상의 숭배는 자신의 열등감을 못넘어선 미성숙의 표현이 아닌가 싶었다. 또한 간호사라는 직위에 대한 열등감도 너무 깊게 감추어져서 건드려지기가 무서운 구석이었다.
정말로 따분하고 지루한 대화들을 해나가면서, 나는 견딜수 없는 피곤함을 느꼈다. 이런 사람을 동료라 여겨야 한다는 것이 직장에 대한 의욕을 더 낮추게 했다. 그의 대화주제는 모든 사람에 대한 험담이었고, 화제의 수준은 문과를 전공한 나에게는 언어로 성립되지 않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래도 참았다. 인간에 대한 예의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정도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학과 내에서 자신의 위치를 굳히기 위해서는 학과장이 필요했고, 그에게 달라붙어서 갖은 짓을 다하기 시작했다. 사회라는 곳이 생존경쟁의 장소이지만, 솔직히 너무 추해서 그 근처에 다가가기가 힘들었다. 그에게는 추어주는 지위 하나만 있으면, 명분은 얼마든지 만들어낼 수 있고, 일관성없는 양심으로 무엇이든지 주장해대는 수사를 구사하면서 나에게 목을 조여오기 시작했다. 너는 이 학과에서는 이것밖에는 안되는 지위이다. 그렇게 요구해오면서 감정의 왕따를 시키기 시작한 것이다. 느껴지는 그의 의도들을 치사해 하면서도 막을 만한 에너지를 쓸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점심을 같이 먹자고 하면서 악을 쓰면서 학과를 옮겨라, 자신에게 자격지심을 가지고 있다는 둥 갖은 악한 짓을 다 꾸미고, 그것이 아주 순수한 의도였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것이 아주 순수한 의도였다면 나에게 악쓰고 당황해할 필요가 없었을터인데 말이다..
거위는 머리만 숨기면 온몸을 숨긴 줄 안다고 한다. 그도 자신이 번드르하게 명분을 구사해내면 자신의 그 밑에 깔린 의도는 아무도 간파해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열등감으로 보복하는 그 행동을 누가 말릴 것이며, 거기에 당하고 있는 무기력한 자신에게 너무 화가 나서 그 사람을 내 연구실에 들이고 차를 타주었던 시간들마저 분했다. 그러나 그것은 내 감정일 뿐이다. 그런 사람은 그런 방식으로 세상을 떠돌면서 어떤 사람의 밑에 들어가서 어느 지위 하나 얻기 위해서 남에게 억울한 짓을 하고 남을 해치며 괴롭히고도 자신의 명분 속에 숨어서 자신은 안전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뻔히 알면서 그를 물끄러미 바라본다. 그렇게 살다가 죽을 인간아.. 그러나 집에 가면 아이의 엄마일 것이고, 남편의 아내일 것이니.. 그것으로 족하고 인생을 살기를.. 구역질을 참다보니 이제는 그 동료에 대한 지긋지긋함이 그채로 받아들여진다. 이 세상의 한 구석으로..
악질과 저질은 잘 맞는 짝이라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 기억이 난다. 서로의 필요에 의해서 공생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렇게 한 세상 함께들 살다 가는 것이려니.. 알 수 없는 무기력 속에서도 안부딪칠 수 없는 사람들의 악의에 몸서리치면서 그때 처음부터 싸웠어야 이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었나.. 정말로 이럴 때는 사람들이 싫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