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함의 실수

2009. 10. 24. 오전 11:3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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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의 게을렀던 시간에 대한 후회는 관심의 반경을 줄임으로써 작은 분량의 일들을 부지런하게 해치우는 습관으로 변해갔다. 자신의 한계를 받아들임으로써 많은 것들이 편안해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사실 이전에는 나의 곁가지치기가 너무 심했다. 하다못해서 책의 참고문헌을 찾다보면, 관련 관심 서적까지 찾아보곤 했었으니 그러다가 정말로 찾아야 할 주제는 잊기가 허다했다. 곁가지로 흐르다가 정말로 해야할 일들을 놓치기가 일쑤였다. 장을 보러 가서도 사야할 것들을 사기보다는 진열해 놓은 것들을 이리저리 구경하면서 이것도 필요할 것 같고 저것도 필요할 것 같고 해서 예산보다 많은 것들을 사들고 오기 일쑤였다.

   그러나 자신이 어느 곳에서 무슨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부터 엄청난 분량의 포기가 있었다. 아니 포기라기보다는 현실감을 익히기 시작했다는 것일 것이다. 집요하게 목표를 정하면 그것을 이루기 전에는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마트에 가서는 필요한 물건만을 사고서는 돌아보지 않고 돌아온다. 이런 틀에 갇힌 듯한 생활방식이 어느새 몸에 배인지 이십년도 더 지났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식으로 지내다보니 생활이 무미건조하고 딱딱해진다. 아니 그저 일들을 삽시간에 처리해버려야 직성이 풀린다. 그러나 그렇게 곁을 돌아다보지 않으니까 의외로 실수가 많이 생긴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래서 나는 일을 지저분하게 처리해서 미안하다는 이야기를 조교에게 하였더니 뭘요.. 하면서 나를 위로해주는 맘씨 좋은 조교다.

   사실 서류를 보내도 한번에 완성본을 보내는 일이 드물었었다. 물론 일이 숙달되지 않아서 그렇게 되기도 했지만, 후닥딱 일을 처리하다보니까 빠뜨리는 것이 많다. 그래서 ‘서류’라는 이름으로 메일을 보내고, 다음엔 ‘수정본’이라는 이름으로, 그 다음엔 ‘진짜 수정본’ 이라는 이름으로, 마지막으로 ‘진짜진짜 마지막 수정본’이라는 제목으로 서류를 메일로 보내곤 했었다. 이제는 프린터가 연구실에 설치되어 있다보니 파지도 많이 나오게 된다. 그런 어눌한 자신의 실수들이 조금은 부끄러워진다.

   나는 일을 빨리 했는데 왜 그렇게 잔소리를 하시냐고 투덜대던 기억이 아마도 어머니의 눈에는 이 잔 실수들이 눈에 먼저 보이셨던 것이라는 것을 이제사 깨달아간다. 나의 이 덤벙거림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니 부지런하다고 해서 한꺼번에 많은 일들이 처리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긴긴 세월을 무엇을 하면서 살아갈 것인가 생각해보면, 부지런하게 생각없이 움직이는 시간들이 그렇게 싫은 것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할 때는 나의 덤벙거림으로 해서 피해가 가거나 번거로워지게 만들지는 말아야겠다는 것을 이제는 깨닫는다. 그것은 내 자신의 특성이라고 생각했지만, 고칠 수 있는 한도 내에서는 특성이 아니라 단점이고 노력해나가야 하는 신중함이다.

   사실 서류를 내라고 공문이 오지도 않았는데 이맘때는 이런 서류가 필요하다고 후닥딱 내어놓는 나를 보면서 우리 조교는 황당해하였을 것이다. 그런 채로 여러 번 수정을 하는 자신의 정신머리 없는 구석들도 부끄럽다. 그러나 어떻게 하는가.. 반복하고 또 반복하는 실수인 것을..

   게으름이라는 것이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의미의 일이 아니라는 것은 안다. 그러나 후닥딱 중요한 일만 처리하는 습관은 곁가지치기를 너무 많이 한 탓이 아니라 곁을 돌아보지 않고 배려않는 자기중심성에 길들여진 탓이라는 것을 발견한다.

   타인을 지나치게 배려하고 관심을 두던 이전의 시간에는 자신이 남들보다 재미없는 길을 가고 있는 것 같아서 그렇게 행복하지는 않았었다. 그렇다고 중요한 일들만 처리하는 시간이 행복했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지만, 적어도 느끼지 못했지만 곁에서 함께 가고 있는 사람들을 느끼고 배려하면서 한번 돌아보고 다시 함께 걷는 그런 자세로 살아간다면 나의 덤벙거리는 부지런함은 조금 나아지지 않을까 생각한다. 조금씩 나아지는 맛이 있어야 나이드는게 덜 불편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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