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
우리 사이트에 정치 이야기를 싣는 건 바람직 하지 못하다고 평소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구나 정치적 소견은 다를 수 있으며 주장이 너무 세지면
감정 싸움으로 번져 우리 신앙 공동체에 별로 득 될게 없다는 그런 이유에서 입니다.
그러나 정치는 공기와 같아서 아무리 부정하려 해도
정치 없이는 살 수 가 없습니다.
2 사람만 모여도 정치는 시작 된다고 합니다.
오늘은 제가 소시적에 겪었던 계란을 바위 치기 이야기를 할 까 합니다.
때는 90년 초 온나라가 정태수 한보 그룹 회장의 수서 사건으로 떠들석 했습니다.
그 사건은 로비로 수서 그린벨트 재개발권을 따낸 사건으로 기억합니다.
이 문제가 처음부터 이슈화 된건 전혀 아닙니다.
그 전 해 11월 쯤엔가 한겨레 신문에 조그맣게 보도 되고 그 다음은 잠잠 해졌습니다.
맨 먼저 들고 일어난 건 혈기왕성하고 정의 감에 불타던 젊은 기자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편집권이 없는 그들로서는 기사를 보내 보아야 데스크에서 다 짤리고
어찌 해 볼 도리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작전을 짰읍니다.
우선 타겟 신문을 정해서 집중 공격 하는 방법이었는데
그 신문은 동아일보였습니다.
그 당시는 신문 원고를 기자들이 현장에서 취재해서 팩스로 보내는 방법이었는데
주로 시간대가 4시에서 5시였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그 시간을 택해서 동네 문방구에서 집중적으로 항의 메세지를 보냈습니다.
공중 전화를 이용하여 그 시간에 집중적으로 항의 전화도 했습니다.
특별 행동 대원은 편집국장 집에 한밤에 전화하고 .....
이러자 원고를 받지 못하는 동아일보는 패닉 상태에 빠졌고
할 수 없이 아주 조그맣게 문제를 보도 했습니다.
이에 질 수 없는 중앙일보는 다음 날 좀 더 크게 나왔고
조선일보는 아예 예전 부터 준비 했던 거 마냥 특집 연재 기사를 싣고
kbs mbc 떠들어 대고 ......
급기야 정태수는 구속되고 ....
이래서 우리의 소시적 계란으로 바위치기 작전은 성공 한 듯 했습니다.
그러나 ys의 후원자인 정씨는 그대로 죽지 않고 다시 일어 났습니다.
다시 나와서 활개를 치고 다니더니만
결국 한보 사건을 터트려 우리나라가 IMF 경제 위기로 가는 데 일조했더랍니다.
나중에 청문회에 나와서 자기 회사 직원들을 머슴이라고 말한 걸로 더 유명한 사람입니다.
시간이 가면 특히나 한국 사람들은 사람들은 다 잊어버리고
그러기에 노련한 권력의 핵심들은 시간 벌기 작전을 주로 이용하는가 봅니다.
지금 노통이 자살했다고 울고불고 해 보아야
시간이 가면 다 잊어버리고 나중에는 왜 불고불고 그 난리를 쳤는지도 모르고
그러면 무슨 소용입니까 ?
자기 소 잃어 먹고도 외양간 못 고치는 자들은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자들과 같습니다.
그들은 앞으로 더 한 아픔에 반복적으로 가슴을 쥐어 짤지도 모릅니다.
제 생각으로는 지금 당장 해야 할 일은
그 조중동 구라 찌라시를 당장 끊는 겁니다.
발행부수가 줄어들면 광고 수입이 줄고 그러면 더이상 신문사는 버티지 못합니다.
신문사는 수익의 70~80 %가 광고 수입이기 때문입니다.
노통의 죽음에 정권과 검찰 그리고 언론의 3 박자 합 작품이라는 건 누구나
알 수 있습니다.
밥 좀 먹고 살겠다고 경제통으로 기대 되는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국민들을 탓 할 생각은 없읍니다.
그러나 이러한 구라 찌라시 언론들을 계속 살려두는 건
또 다른 소를 잃어먹을 준비를 하는 거나 같습니다.
돌고 돌아 따져 보면 노통을 죽인 사람 들은 결국 국민들인 것입니다.
제 2의 노통을 또 죽일 사람들도 국민들인 것 입니다.
우리 신앙 공동체 매체에 이런 이야기 어울리지 않는 거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살은 하느님의 창조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 하는 행위 라는 것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서민을 사랑했고
제국주의의 압력에서 벗어나려고 했고
특히 배우자를 사랑했던 노통을 이리 보내고 보내고 나니
웬갖 상념이 다 들고 슬퍼지는 건 어쩔 수 없네요.
2009년 성령 강림절 주일에
도밍구 드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