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 신앙의 의미

2009. 1. 18. 오전 8:05:41

글자

 

 

누구나에게 하느님을 믿는 의미와 시작은 조금씩 다른 자기 주관적 체험을 담으리라고 생각한다.

나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생명이었다. 모든 만물은 인간이 만들수 있지만 생명만은 인간이 만들수 없으니..

신의 창조물이라고 하는 나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의 소중함을 지켜서 살아나가는 것이 신앙이었다.

 

이 자그마한 소원을 하나 가지고 간절하게 기도하는 나에게 사람들은 거창한 것들을 들이대곤 한다.

사실 가톨릭 신자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나의 모습을 종종 바라보면서

내게 신앙이 있는가..그저 사는가..생각해보면서 더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지만..

그래도 그 처음 신앙을 받아들이던 체험의 시간과 처절하던 고통들을 아직도 내 맘안에 간직한다.

어느 수녀님은 그 기억 하나만으로도 평생을 수녀로 살아가시는 분도 있다고 하니까..

 

그러나 사실 이 세상에서 살면서 덕을 쌓고 마음 수양에 게을러진 자신을 돌아보면 그것만으로 신앙이라기엔

부족하고 미흡한 구석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저 살아서 감사합니다..이소리 들으면 누구나 힘이 빠지니까..

조금은 더 힘있게 삶을 살아서 열매를 맺고 싶은 것이 지금의 시작이기도 하다..오십대에 들어서면서..

덜렁대면서 조그마한 것들을 묵살하는 나의 허술함을 느끼지만 그채로 주님께 들이댄다..받아주세요..

참 염치도 없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죄송합니다..그러나 이 작은 것들이 어마어마한 원동력이니

내겐 그채로 소중한 것이 사실인 것이다. 나의 달란트를 불려내지 못한 삶은 욕먹어 마땅한 것이지만 말이다.

 

조금은 더 성숙하게 조금은 더 익어가는 열매를 맺도록 노력하면서 인생이 그렇게 허무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설명하여 주도록 살아내리라 마음 먹는다. 그채로 지구를 지키는 것도 하나의 일이지 않는가?

세상에 아름다움을 찾아보면 그채로 너무나 곳곳에 아름다움이 산재해 있는 것이다. 그채로 고운 것들..

그러나 그것이 편안한 것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하도록 노력해보기로 한다..새해에는..

 

 

댓글 2

  • 2009년 1월 18일 오전 9:41

    우리 방장님이 주신 우주의 크기에 기가 질리고 우리 인체의 신비에 감탄하면서도 풀 한포기, 공기 한 줌조차 '창조' 하지 못하는 - 발견이나 발명이 아닌 - 우리는 과연 그리 대단할 수 있을지 ...맞아요. 세상은 있는 그대로가 아름다워요. 그저 좀 뭐하지만 '겸손'이라는 단어로 신앙의 끈을 붙잡은 채 열심히 살아 보는 것도 의미?..... '자격지심' 보다는 좀 나을려나....

  • 2009년 1월 18일 오후 8:30

    어제 하루를 보내면서 얼마나 많은 감정에 휩싸였던지, 그리곤 그 모든 나의 허물을 감싸주시고 기댈분이 계신 것이 위안이었습니다, 오늘을 잘 사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숙제임을!

│ 이 │이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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