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4/27)

2005. 4. 27. 오전 9:18:03

글자
요한 15,1-8

우리는 방금 너무나 유명한 비유인 포도나무에 관한 비유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성서를 읽을 때마다, 아니 강론을 준비할 때마다, 예수님의 비유이야기를 접하면 참 많은 어려움을 느낍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비유이야기는 너무나 쉽고 때론 적절하게 그 가르침을 우리들에게 전해주고 있기에 어떤 설명이나 강론이 필요없을 것 같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우리들에게 들려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하느님과 나, 그리고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설명해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며, 너희는 내 교훈을 받아 이미 잘 가꾸어진 가지들이다”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우리들에게 간절히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마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포도 나무에 붙어있지 않는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나에게 붙여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이처럼 오늘 비유는 하느님과 우리 사이의 떼레야 뗄수 없는 관계를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분명히 오늘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떠나지 마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주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분이시며, 우리와 언제나 함께 하고파하시는 분이십니다. 저는 이런 주님의 마음에 관한 체험이 하나 있습니다.

중3 예신캠프 때였다고 기억합니다. 그 캠프 중 이런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그래프로 그리는 작업을 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X축은 자신이 살아온 세월을 뜻하며, Y축은 X축을 기준으로 위쪽으로는 행복의 정도를 밑으로 불행의 정도를 표시하는 것이었습니다.

비록 짥은 16살 동안의 기억이지만 나의 삶을 정리하면서 열심히 그래프를 그렇고, 결국 완성된 나의 삶의 그래프는 위, 아래로 요동치는 파도 모양의 그래프였습니다. 그리고 그 그래프를 발표하면서 나의 머릿속에 강하게 스쳐간 느낌은 ‘아 나의 삶속에서 누군가 나와 함께 계셨구나, 그래서 특히 내가 힘들 때,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힘을 주셨고, 내가 기쁠때, 묵묵히 함께 기뻐해 주시는 누군가 계셨셨구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그 기억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그 후에 저는 한번도 하느님의 존재를 의심한 적도 없고, 때론 그 느낌 때문에 겁 없이 세상을 살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우리 피조물과 하느님의 관계는 이처럼 떼래야 뗄수 없는 그런 관계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니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들에게 다가오십니다. 우리들이 그것을 인식하고 있던 못하고 있던 말입니다. 하느님과 피조물과의 이 관계는 신앙인들이 겪는 깊은 신앙의 체험입니다.

흔히 우리는 신앙 생활을 하다가 큰 어려움을 닥치게 되면, 하느님께 매달립니다. 하지만 그 고통이 자신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가 되며, 오히려 하느님을 원망하고 멀리하게 됩니다. 왜 내가 이런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왜 아무 잘못도 없는 나에게 이런 고난을 주시는지 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결국은 그분에게 돌아올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혼자 설수 없는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나를 일어켜 주실 뿐은 오직 그분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우리는 주님의 포도나무의 포도가지입니다. 이는 어느 누구도 부인할 수도, 부정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저는 오늘 비유에서 예수님의 너무나 뜨거운 사랑을 느낍니다. 농부는 자기 마음대로 포도나무의 가지를 짜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주도권을 오히려 우리들에게 주셨습니다.

오늘 주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마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이는 너무나 큰 사랑의 역설입니다. 전지전능한 신이 하찮은 미물인 인간이 되신 그분의 삶과 같이 말입니다. 이렇듯 우리 모두는 주님의 포도가지입니다. ● 부산교구 이재현 루도비코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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