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알았으니 나의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알게 되었다. 아니, 이미 뵈었다.” 이번에는 필립보가 “주님, 저희에게 아버지를 뵙게 하여 주시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하고 간청하였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필립보야, 들어라. 내가 이토록 오랫동안 너희와 같이 지냈는데도 너는 나를 모른다는 말이냐?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그런데도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니 무슨 말이냐? 너는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는 것을 믿지 않느냐?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도 나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면서 몸소 하시는 일이다. 내가 아버지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다고 한 말을 믿어라. 못 믿겠거든 내가 하는 이 일들을 보아서라도 믿어라. 정말 잘 들어두어라.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그것은 내가 이제 아버지께 가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이루어 주겠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다 내가 이루어 주겠다.” (요한 14,7-14)
◆ 우리집은 끼니때마다 풀이 한 상이다. 오늘은 상에 부추가 푸짐하다. 아내가 부추 사연을 얘기한다. 채소가게에 갔더니 부추가 신문지에 싸여 구석에 놓여 있어 물었다는 것이다.
“이건 부추 아니에요? 왜 여기에 놓여 있죠?”, “글쎄 채소를 내린 차가 떠나고 보니 바퀴에 그만 뭉개져 있었어요. 그냥 드릴 테니 가져가실래요?”
“순간 당신이라면 이럴 때 어떻게 했을까? 하고 생각하는데 당신 마음이 주인 아저씨를 만났는지 그분은 그것을 제 장바구니에 조심스럽게 올려놓더군요. 집에 와서 다듬어 상에 놓았는데 그럴 듯하죠?”
“잘했구려.”
반쪽짜리 부추들이 싱싱하다.
‘안녕하세요? 비록 저희는 반쪽들이지만 당신의 힘이 되어 드릴게요.’ 부추들의 눈물겨운 인사말이 소곤대듯 들려오는 것 같다. 두 손 모아 부추의 인사를 기도대신 올렸다. 그 사이 집에 들어서는 딸이 큰소리로 인사한다.
“엄마! 하원이 선교원에 다녀왔어요.”
“잘 다녀왔니?”, “네.”, “밥 먹자.”
“하원아, 부추가 아빠에게 인사를 했단다.”
“정말?”
“그럼, 너도 인사해 봐.”
“안녕?”
“…….”
“나한테는 인사 안 하는데.”
“한 번 더 해봐, 귀를 잘 기울여서.”
“안녕”, “……”, “안 들리는데?”, “…….”
부추를 젓가락으로 들더니 “야, 넌 왜 아빠하고만 인사하고 나하곤 안 해, 난 하원이야, 일곱 살이구 보문선교원에 다니는데 내가 제일 큰 언니야. 오늘 노래 배웠다. 따라 해봐.”
“♬ 새싹들이 말하기를 봄이 왔어요. 참새들이 말하기를 봄이 왔어요. 시냇물이 말하기를 봄이 왔어요. 짹짹 짹짹 짹짹, 뾰로롱 뾰로롱 뾰로롱, 졸졸 졸졸 졸졸졸 ♬”
그날 우린 상처난 부추가 따라서 부르는 봄노래로 배가 불렀다.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 ● 송호일 목사 (북수원 감리교회)
나를 보았으면 곧 아버지를 본 것이다.(4/23)
2005. 4. 23. 오전 8:3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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