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야 할 욕심(/3/28)

2005. 3. 28. 오후 1:18:05

글자
2005년 3월 28일 부활 팔일축제 내 월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2,14.22-33
[오순절 날에,] 베드로가 다른 열한 사도들과 함께 일어서서 군중을 보고 큰 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유다 동포와 예루살렘 시민 여러분, 내가 하는 말을 귀담아듣고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내 말을 들으시오. 나자렛 예수는 하느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분명히 보여 주시려고 여러분이 보는 앞에서 그분을 통하여 여러 가지 기적과 놀라운 일과 표징을 나타내셨습니다. 이 사실은 여러분이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뜻과 계획에 따라 여러분의 손에 넘어간 이 예수를 여러분은 악인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되살리시고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계실 분이 아닙니다.
그분에 관해서 다윗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주께서 내 오른편에 계시오니, 나는 항상 주님을 가까이 뵈오며, 내 마음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내 마음은 기쁨에 넘치고, 내 혀는 즐거워 노래하며, 이 육신마저 희망 속에 살 것입니다. 당신은 내 영혼을 죽음의 세계에 버려 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거룩한 종을 썩지 않게 지켜 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나에게 생명의 길을 보여 주셨으니, 나는 당신을 모시고 언제나 기쁨에 넘칠 것입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우리의 선조이신 다윗에 관해서 분명히 말씀드려야겠습니다. 그는 죽어서 묻혔고 그의 무덤은 오늘날까지 우리 땅에 남아 있습니다. 다윗은 예언자로서 하느님께서 자기 후손 가운데 한 사람을 자기 왕좌에 앉혀 주시겠다고 하신 맹세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내다보며, '하느님께서는 그를 죽음의 세계에 버려두지 않으시고, 그의 몸을 썩지 않게 하셨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바로 이 예수를 하느님께서 다시 살리셨으며 우리는 다 그 증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예수를 높이 올려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성령을 지금 여러분이 보고 듣는 대로 우리에게 부어 주셨습니다.


복음 마태오 28,8-15
그때에 여자들은 무서우면서도 기쁨에 넘쳐서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려고 무덤을 떠나 급히 달려갔다.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께서 그 여자들을 향하여 걸어오셔서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여자들은 가까이 가서 그의 두 발을 붙잡고 엎드려 절하였다.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 여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여자들이 떠나간 뒤에 경비병 중 몇 사람이 성 안으로 들어가 그동안에 일어난 일들을 대사제들에게 낱낱이 보고하였다. 대사제들은 원로들과 만나 의논한 끝에 병사들에게 많은 돈을 집어 주며 "너희가 잠든 사이에 예수의 제자들이 밤중에 와서 시체를 훔쳐 갔다고 말하여라. 이 소문이 총독의 귀에 들어가게 되더라도 우리가 잘 말해서 너희에게는 아무런 해가 없도록 하여 주겠다."하고 말하였다.
경비병들은 돈을 받고 시키는 대로 하였다. 이 이야기는 오늘날까지 유다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다.





어떤 사람이 주일 아침에 그의 친구에게 찾아가 말했습니다.

“어이, 친구 우리 오늘 골프 치러 가지 않겠나?”

“고맙네만 오늘 나는 성당에 가야 한다네.”

잠시 후, 그 친구가 이렇게 말합니다.

“그래? 그런가? 나는 자네의 그 믿음에 정말로 감탄사가 나오네. 내가 그 동안 자네에게 주일 아침에 열여덟 번이나 골프를 치자거나 낚시를 가자고 했는데 열여덟 번 모두 거절당했네. 허헛 참! 그런데 말일세. 내가 정말로 궁금한 것은, 그 성당이라는 곳이 골프장이나 낚시터보다 훨씬 갈만한 곳은 못되는가 보네.”

“아니, 그게 무슨 말인가? 골프장이나 낚시터보다 훨씬 중요한 곳이기 때문에, 가장 친한 자네의 청을 거절하고 성당에 가는 것이 아닌가?”

그러자 친구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약 성당이 그렇게 중요한 곳이라면 적어도 한번쯤은 나에게도 함께 성당에 가자고 권해야 되는 게 아닌가? 나는 골프장이나 낚시터가 좋기 때문에 자네에게 열여덟 번이나 골프장, 낚시터에 가자고 했네. 하지만 자네는 단 한 번도 나를 성당에 가자고 말한 적이 없지 않은가?”

어쩌면 우리 신앙인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닌가 싶네요. 즉, 성당 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왜 성당에 가야하는지도 잘 알고 있지만, 그렇게 중요한 곳에 다른 이들과 함께 간다는 것은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지요. 자신에게 중요한 곳이라면 남들에게도 중요할 수 있는 곳인데, 왜 다른 이들에게는 권고를 하지 않을까요? 어쩌면 내가 겉으로는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중요하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또 어떤 분들은 이렇게도 말합니다. 그 사람에 대한 배려차원이라고……. 하지만 어떤 것이 진정한 배려일까까요?

오늘 복음을 보면, 대사제들과 원로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무덤 경비병들로부터 듣게 됩니다. 부활 소식은 바로 하느님 아버지의 또 다른 현존의 소식이기 때문에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하지요. 하지만 그들은 경비병들을 매수하여 빈 무덤의 원인을 제자들의 절도로 돌리지요. 가장 위대한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활을 사소한 절도 사건으로 축소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하느님 현존의 중대한 표시가 되는 부활사건이지만, 자신들이 직접 제거했던 예수님이기 때문에 받아들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특히 그들은 자기들뿐 아니라 남들 역시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이기심까지도 보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소식은 세상에 널리 알려야 하는 기쁜 소식입니다. 자신 혼자만 간직하는 그러한 소식이 아닌 것입니다. 따라서 남을 배려한다는 의미로 성당에 함께 가자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남을 배려한다면 성당에 함께 가보자는 말도 할 수 있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까지 당신의 기쁜 소식이 전파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기쁜 소식의 전파를 막고 있는 것은 아니었는지요…….


다른 이에게 성당에 가보자는 말이라도 해봅시다.



버려야 할 욕심

영국의 콩글톤은 경건한 사람이었다.

어느날 자기집 부엌에서 일하는 하녀 한명이 다른 하녀에게 하는 말을 우연히 듣게 되었다.

“오 나한테 돈이 5파운드만 있다면 나는 정말 행복할텐데…” 그는 그 하녀의 말을 무심코 들었으나 귓가에 사라지지 않았다.“나에게 5파운드가 하찮은 돈이나 하녀에게 5파운드는 그렇게도 행복감을 가져다 주는 것일까”

그는 정말 한 사람이 행복해 지는 모습을 보고 싶어 5파운드의 돈을 주기로 했다.부엌으로 하녀를 찾아간 그는 우연히 말을 듣게 되었으며 진정 행복해 지기를 바란다고 말한뒤 5파운드를 주었다.하녀는 감격하여 콩글톤경의 친절에 감사를 드렸다.

콩글톤경은 부엌에서 나와 자신이 베푼 작은 선행이 한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에 기뻐하며 잠시 문밖에 서 있었다.그때 하녀의 중얼거림이 들렸다.“난 참 바보야.왜 10파운드라고 말하지 않았지”

욕심을 버리자 그리고 작은 것에 감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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