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부활 팔일축제 내 화요일(3/29)

2005. 3. 29. 오후 10:54:11

글자
어제는 마태오 복음사가의 기록을 묵상했는데, 오늘은 사도 요한의 복음입니다. 주님의 부활을 전한다는 의미는 똑 같지만, 상세한 부분들에 있어서는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고 있습니다. ‘빈 무덤’을 본 후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는 침통한 표정으로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혼자 무덤 밖에 서서 울고 있습니다. 누구보다도 주님을 사랑하였던 막달라 마리아는 주님을 잃어버렸다는 큰 고통에 울고 있었습니다. 울고 있다가 몸을 굽혀 무덤 안을 들여다보았을 때, 무덤 안에 있던 천사들이 “왜 울고 있느냐?” 라고 묻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누군가가 제 주님을 꺼내갔습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주님의 시신마저 잃은 슬픔이 너무나도 커서 두 천사가 거기 앉아 있는 것조차 위안이 되지 못했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천사들에게 슬픔과 고통을 하소연하고 나서 뒤를 돌아다보았더니 예수님께서 거기에 서 계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예수님인 줄 마리아는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막달라 마리아에게 “왜 울고 있느냐?”고 묻고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막달라 마리아에게 나타나셨을 때 그녀는 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을까 생각해 봅니다. 그 이유는 첫째로 마리아의 눈물 때문이었고, 둘째로 마리아가 자신의 시선을 무덤에서 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첫째로 ‘마리아가 눈물 때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볼 수 없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생각하게 합니까? 우리는 흔히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마음에 슬픔이 깃들게 되고 눈에 눈물이 고이게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냉정하게 말해 그 눈물은 사랑하는 이를 위한 눈물이 아니라 자기를 위한 눈물이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막달라 마리아의 눈물은 예수님의 죽음으로써 따라오는 자신의 고독, 자신의 손실, 자신의 허망함에서 오는 눈물인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의 이 눈물은 다른 한편으로는 당연한 것이고 또 어찌할 수 없는 사람의 마음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눈물이 하느님 나라의 영광 곧 주님의 부활의 모습을 가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도 막달라 마리아처럼 자기중심적인 마음 때문에 우리와 늘 함께 하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고 둘째로 마리아는 잘못된 방향으로 바라보는 것을 고집했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동산지기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고개를 돌려 뒤돌아보았지만, 그러나 그녀의 마음의 시선은 예수님은 돌아가신 분으로만, 무덤 안에 있어야 하는 분으로만 바라보았기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녀는 무덤에서 눈을 돌릴 수가 없어서 예수님께 등을 돌리고 서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마리아처럼 주님이 아닌 곳에 시선을 두고, 주님께 돌아서지 못하는 일들이 일상생활에서 다반사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잘못된 시선을 돌려 승리를 거두시고 서 계시는, 우리와 함께 하기를 기다리고 계시는 주님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이 독수리 알을 발견하고는, 뒤뜰에 있는 닭장 우리에 넣어 두었습니다. 암탉이 다른 알들과 함께 독수리 알을 품었고, 알을 깨고 나온 새끼 독수리는 닭들과 함께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새끼 독수리가 하는 짓은 닭과 같았습니다. 새끼 독수리는 닭처럼 땅을 파헤치고 먹이를 찾았으며, 암탉이 울 듯 따라 울었고, 날개를 퍼덕이다가 닭들처럼 조금은 날 수 있었습니다. 세월은 흘러 독수리도 이제 늙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구름 한 점 없는 공중에 힘차게 나는 새를 보았습니다. 힘찬 나래를 쭉 펴고 위엄 있게 날고 있었습니다. 황금빛 날개를 닭처럼 퍼덕이지도 않았습니다. 늙은 독수리는 놀란 눈으로 바라보다가 “저게 뭐지?” 하고 옆에 있는 닭에게 물었습니다. “저건 새들의 왕인 독수리야!” 하고 대답하였습니다. 그리고 닭은 “그러나 다른 생각은 하지 마라. 너와 나는 독수리와는 달라.”하고 말하였습니다. 닭장에서 자란 독수리는 이내 단념했고, 뒤뜰의 닭으로 생각하면서 살다가 죽었습니다.

세상은 닭장과도 같습니다. 독수리가 닭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닭처럼 살 때, 창공을 훨훨 나는 자유를 빼앗깁니다. 기존의 삶, 현재에 만족하고 안주하는 삶은 바로 자유와 해방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없게 만듭니다. 우리는 땅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는 닭의 모습이 아닙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활로 하늘을 나는, 땅의 굴레 곧 죽음과 죄의 굴레를 벗어난 독수리인 것입니다. 진정한 부활은 일상생활 안에서 새롭게 거듭 태어나기 위한 자기 결단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일상의 삶 안에서 인간적인 욕심에서 눈을 돌려 부활하신 주님께 시선을 고정하고, 부활 신앙을 실천할 때 우리는 창공을 훨훨 나는 자유로운 독수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 천주교 부산교구 박만춘 아우구스티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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