칭찬을 잘 하는 사람의 주변에는 사람이 모인다(새벽을 열며)

2005. 4. 27. 오전 9:20:08

글자
2005년 4월 27일 부활 제5주간 수요일

제1독서 사도행전 15,1-6
그 무렵 유다에서 몇몇 사람이 안티오키아에 내려와 교우들에게 모세의 율법이 명하는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치고 있었다. 그래서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도와 그들 사이에 격렬한 의견 충돌과 논쟁이 벌어졌다. 그러다가 결국 교회는 바오로와 바르나바와 몇몇 신도들을 예루살렘에 보내어 다른 사도들과 원로들에게 이 문제를 의논하게 하였다.
그들은 교회의 전송을 받고 떠나 페니키아와 사마리아를 거쳐 가면서 이방인들이 개종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하여 그곳 모든 교우들에게 큰 기쁨을 주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그들은 사도들과 원로들을 비롯한 온 교회의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그들을 도와 이루어 주신 일들을 모두 보고하였다.
그런데 바리사이파에 속했다가 신도가 된 사람 몇이 나서서 “이방인들에게도 할례를 주고 모세의 율법을 지키도록 일러 주어야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도들과 원로들은 이 문제를 검토하려고 회의를 열었다.


복음 요한 15,1-8
그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참 포도 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모조리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잘 가꾸신다.
너희는 내 교훈을 받아 이미 잘 가꾸어진 가지들이다.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마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포도 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나에게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나는 포도 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나를 떠난 사람은 잘려 나간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말라 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런 가지를 모아다가 불에 던져 태워 버린다.
너희가 나를 떠나지 않고 또 내 말을 간직해 둔다면 무슨 소원이든지 구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어떤 사람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방안에 앉아서 밖에 있는 다른 사람의 흉을 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두 가지 허물이 있어요. 첫째는 성을 잘 내는 것이요, 둘째는 일을 경솔히 하는 것이라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에 문 밖에서 이 말들을 그 사람이 듣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사람은 자기가 없는 자리에서 자신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 화가 많이 났습니다. 그래서 성을 내면서 방에 들어와 그의 멱살을 잡고는 욕을 하며 주먹으로 때렸지요. 바로 옆에 있던 사람이 묻습니다.

“왜 때리는 거요?”

그는 대답했습니다.

“내가 언제 성을 잘 내고 경솔했소? 그래서 때리는 것이오.”

그 옆에 있던 사람이 말했습니다.

“당신은 성내기를 좋아하고 경솔하게 행동하는 것을 지금 바로 보여주고 있잖소? 그런데 왜 사실이 아니라고 하는거요?”

그 사람은 할 말이 없었습니다. 자신이 성을 잘 내고 경솔하다는 말에 화를 냈는데, 실제로 자신은 성을 내고 있었고 경솔한 행동을 하고 있었던 것이지요.

우리들은 스스로를 완벽한 사람이라고 착각할 때가 상당히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지를 못하지요.

“내가 언제 그랬어. 왜 없는 이야기를 가지고 사실처럼 이야기해서 나를 모함하는거야?”

이런 식의 말을 하고 있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일반적인 모습은 아니었는지요? 하지만 내 자신의 평가와 다른 사람의 평가는 분명히 다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부엌에 오래된 고기가 있다고 생각을 해보세요. 그래서 그 고기가 이제 부패하기 시작합니다. 분명히 고기 썩는 냄새가 부엌을, 아니 집안 전체를 진동시킬 것입니다. 그런데 파리에게는 이 냄새가 어떨까요? 분명히 좋은 냄새라고 생각하고서 그 냄새를 향해서 모여들겠지요.

이처럼 똑같은 냄새를 두고서도 누구에게는 좋은 향기로, 또 다른 누구에게는 썩은 냄새로 느껴질 수 있는 것처럼 나에 대한 평가도 이렇게 상반되게 드러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이 그렇지 않다고 굳이 따질 필요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앞선 예화에 등장하는 그 사람처럼 그렇게 따짐으로써 자신이 그렇게 부족하다는 것을 오히려 드러내는 것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서 예수님께서는 당신 스스로를 포도나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포도 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우리들의 모습이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당신 곁에 머물면서 살 때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고 하시지요. 그렇다면 주님 곁에 머문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주님께서 보여주신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누가 나를 모함해도 주님께서 사랑하라고 했으니까 그 사랑을 간직하면서 그를 대한다면 우리들은 주님 곁에서 크고 많은 열매를 맺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화를 내지 맙시다. 대신 주님의 사랑을 드러내도록 더 노력합시다.


화를 내지 말아요.



칭찬을 잘 하는 사람의 주변에는 사람이 모인다(사이토 시계타, '인기 좋은사람들의 12가지 습관' 중에서)

언제나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어 주변에는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 당신 주위에 이런 사람이 한 사람쯤 있지 않을까. 당신도 그런 사람에게 호의를 품고 가까이 다가가는 한 사람일지 모른다. 그 사람의 무엇이 사람들을 자기 주위로 불러들이는 것일까?

그 사람에게 다가 가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그사람과 함께 있으면 마음이 편하다" 고 느끼기 때문이다. 여러가지 장점을 가진 사람이겠지만 가장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잘 한다는 것이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칭찬받으며 성장하는 부류와 야단맞으며 성장하 는 부류가 있다"는 의견도 있겠지만, 여기서 다루고자 하는 내용의 핵심에서 비껴가는 이야기다. 특별히 신체적, 정신적 단련을 위해 호된 꾸중을 들으며 성장해 가는 사람도 있으나 그런 경우는 운동선수와 같이 자신감과 노력여하에 따라 재능이 점차로 확 대될 가능성이 있는 극히 일부에게 한정된 이야기다.

요즘은 부모에게서 야단 한 번 맞지 않고 자란 젊은이들이 밖에서 사소한 꾸지람을 들은 것만으로도 위축되어 쉽게 자신감을 잃기도 하지만, 칭찬을 받고 자신감을 잃은 사람은 없다.

가벼운 칭찬의 말 한 마디가 사람의 기분을 확 바꾸어 놓는 마법의 언어가 된다. 내가 가까이에서 본 칭찬을 잘 하는 사람의 전형은 바로 나의 할아버지였다.

할아버지는 자신이 경영하는 병원의 부하 직원들에게 아주 작은 업무상의 성과 에도 "정말 훌륭해, 역시 자네가 최고일세" 라는 칭찬을 자주 하고, 복도에서 마주치면 누구라도 "매일 수고가 많습니다" 하고 격려의 말을 아끼지 않았다. 이 칭찬의 말은 손자들에게도 아낌이 없었다. 나를 끓어안고 "우리 손자 참 멋지네" 라고 몇 번이고 흐뭇해 하셨던지, 나뿐만이 아니다. 그림을 그리고 있는 아이에게는 "참 잘 그리는구나, 장래에 화가가 되겠구나" 하면서 기분을 띄워 주시고, 피아노를 치는 손녀딸에게는 "우리 짐안에서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나 오겠구나" 하고 진심을 담아 칭찬해 주셨다.

커서 생각해 보니 과장 섞인 칭찬이었지만 듣는 당사자로썬 전혀 싫지가 않았고 한창 자라나는 어린 아이들에게는 꿈을 심어주려던 할아버지의 자애로움의 표현 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할아버지를 무척 좋아하고 따랐으며, 마법의 언어에 반해서일까, 할아버지의 주위에는 항상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자식처럼 사람을 끄는 이런 매력 덕분에, 할아버지는 중의원으로 정계에도 발을 들여 놓았다.

댓글 0

첫 댓글을 남겨보세요

매일미사/묵상

목록 전체보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