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원하는 것은
2005. 4. 27. 오전 9:14:41
글자
한 남자가 있었습니다. 그 남자는 이상하게도 방구를 끼면 소리만 크게 날뿐 냄새 가 전혀 나지 않는 것이었어요. 이를 이상하게 여긴 남자는 급히 병원으로 갔습니다.
"선생님 전 방구를 끼면 소리만 크고 냄새가 전혀 나지 않아요. 제가 무슨 병이라도 있는건 아닌지 요."
"그럼 방구가 나올때까지 기다려 보죠"라고 의사선생님은 말씀하셨고, 같이 기다렸습니다. 시 간이 좀 흘렀습니다. 그러자 큰소리와 함께 방구가 나왔어요.
그리고 얼굴이 누렇게 변한 의사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어요.
"급히 코수술부터 해야 겠습니다"
이 사람은 자기 코가 막힌 것도 모르고서, 다른 병이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을 했던 것이지요. 정작 중요 한 원인을 찾지 못하는 이 사람의 모습이 혹시 우리들의 모습은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내 자신의 의지와는 정반대로 돌아가는 세상에 대해서 우리들은 많은 말들을 하게 됩니다.
사실 세상은 내 뜻과는 정반대로 돌아가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평화가 아닌가 싶습 니다. 누구나 평화를 원하고 있지요. 개인적이로든 국가적으로든 또는 세계적으로든 평화가 싫다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 다. 모두가 평화를 바라고 있으며, 또한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평화를 이루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습니다.
개인과 개인의 관계에서는특히 그렇지요.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서로에 대한 미움과 분노를 남겨둔 채 형 식적으로 하는 화해로 진정한 평화를 이루었다고 할 수 없지요. 왜냐하면 평화를 이루었다면 마음이 편해야 할텐데 미움과 분노가 들끓 고 있는 마음이 편할 리 없지요.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 와는 다르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마라.”
주님께서 주신 평화는 세상 사람들이 생각하는 힘의 균형을 통한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특히 형식적으로 하는 화해로 이루어지는 평화 역시 아닙니다. 바로 자신의 목숨을 희생함으로써 우리에게 주시는 평화였습니다.
앞서도 말씀드렸듯이, 우리들은 정작 중요한 것을 잊고 있습니다. 그래서 남을 탓하고 세상을 탓합니다. 그리고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흘러가는 세상이라면서 단순히 평화를 염원만 하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이런 모습은 예수님을 따라는 신 앙인의 모습이 아닐 것입니다. 즉, 우리 역시 예수님처럼 자신의 희생을 통해 내 주위에 평화를 가져오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지요. 아씨시의 성 프란치스코가 당신 자신을 평화의 도구로 써 달라고 기도하셨던 것처럼 우리 역시 주님을 닮아서 평화의 도구로 써달라 고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주님, 나를 당신 평화의 도구로 써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 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슬픔이 있는 곳 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고,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해주소 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 인천교구 조명연 신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