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틀 |
그때에 예수께서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하셨다. 그러자 그는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 나섰다. 레위는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베풀고 예수를 모셨는데 그 자리에는 많은 세리들과 그 밖에 여러 사람이 함께 앉아 있었다. 이것을 본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그들의 율법학자들은 못마땅하게 생각하여 예수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당신들은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먹고 마시는 것입니까?” 하고 트집을 잡았다.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렇게 대답하셨다. “건강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
|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 앞에서는 불완전한 죄인이고 병자이며, 그래서 모두 예수님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고 하십니다. 복음은 예수님이 자신을 필요로 하는 죄인들과 관계를 가진다는 것을 여러 가지로 말해줍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했기에 자신의 불완전함을 그대로 지니고 우리를 필요로 하는 불완전한 다른 사람들이 있다면 그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초대이기도 합니다. 이 초대는 우리를 필요로 하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저에게는 이것이 사순시기에 지향하고 싶은 것 중 하나입니다. 서로에 대한 미움과 분열과 반목을 넘어서 용서와 화해와 일치와 친교의 삶으로 부름받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복음의 바로 앞부분에는 중풍병자를 고쳐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곳을 떠나 길을 가다가 레위라는 윤리적인 중풍병자, 정신적인 중풍병자를 만납니다. 다른 사람의 돈을 부당하게 착취하면서도 죄인지를 모르고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 윤리적인 중풍병자요, 새로운 세계를 보지 못하고 똑같은 생활을 매일 반복하고 있는 정신적인 중풍병자인 레위를 만납니다. 그는 어쩌면 1년 전이나 10년 전이나 늘 똑같은 생각, 똑같은 생활 습관으로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대부분의 중풍병자가 그렇듯 그도 역시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합니다. 늘 같은 죄를 반복하는 윤리적인 중풍병자, 또는 똑같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늘 같은 생각으로 살아가고 있는 정신적인 중풍병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길을 가시다가’(루가 5,27) 레위를 보시고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길이란 목적지에 아직은 다다르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아직 걸어가고 있는 중입니다. 레위 역시 혼자서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같은 죄를 반복해서 짓고, 생각을 바꿀 줄도 모르는 불완전한 사람입니다만 예수님은 그에게 하늘나라를 위해 같이 떠나자고 초대하십니다. 우리는 하늘나라를 향해 걸어갑니다. 예수님도 걸어가셨습니다. 아버지를 향하여 걸으셨습니다. 이 세상은 영원히 머물 곳이 아니라 지나가는 곳이라 하십니다. 그런데 저는 영원히 살 것처럼 착각할 때가 많습니다. 마음도 생각도 딱딱하게 굳어 있고 삶의 틀은 나를 중심으로 고정시켜 놓고 있어 그 이상의 세계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생각이 좁고, 생활의 폭이 좁고, 마음이 좁은 답답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저에게도 예수님은 함께 길을 떠나자고 하십니다.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내가 예수님을 따라가고 있는지 아닌지는 내가 얼마만큼 예수님을 닮아가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얼마나 기도를 많이 했는지, 얼마나 봉사를 많이 했는지, 사제이고 수도자라는 신분과 직책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기도를 하고, 봉사를 하고, 신부이고 수도자라 해도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걸림돌이 되는 것이 있으면 버려야 합니다. 가장 존귀하고 가장 아름다운 것, 참되고 진실한 것, 내면 깊은 데서 느끼는 욕망을 채우는 것 바로 나의 가장 완전한 모습인 하느님을 닮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느님 아버지를 향해서 끊임없이 걸어갈 때 가능한 일입니다. 나를 위해서 새롭게 펼쳐보여 주시는 새 하늘 새 땅을 보고 싶습니다. |
| 강희수 수사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