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단식할 때... 그러나 기쁜 굶주림

2005. 2. 11. 오후 10:2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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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단식할 때... 그러나 기쁜 굶주림

오늘 복음에서 우리 눈에 두드러지는 것은 ‘단식’이란 말입니다. 세례자 요한과 바리사이파들은 단식을 생활화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하느님에 대해 그토록 많은 말씀을 하시면서도 왜 하느님께 드리는 정성의 대표적인 모습인 단식은 하지 않는가에 대해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직접 묻습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아직은 때가 아니다’정도로 이해할 수 있겠지만, 예수님께서 단식하신 모습은 복음 속에서 찾아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복음에서 보이는 예수님의 모습에서 ‘단식’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잔칫집에 온 사람들과 같이 어느 집에서건 식사하시는 모습은 찾아보기가 쉽지만 예수님과 제자들은 단식한 흔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니 요한의 제자들이 먹고 마시기만 하는 예수님께 언제 하느님께 정성을 드리는지 궁금해 하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들의 스승은 먹지도 않고 극기와 인내의 힘겨운 삶을 살고 있었으니 더 그랬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단식의 모습을 우리에게 잘 보여주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사람들의 허기짐에 대해 걱정을 하시고, 오히려 그들을 먹이려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곳곳에서 발견될 정도입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은 예수님을 여러 날을 허기진 채 따라다닌 사람들을 걱정하셔서 생겨난 사건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우리를 오히려 먹이려 하셨고, 그렇게 그 자리에 늘 함께 하시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주님은 단식하지 않으셨다는 결론을 내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지난 수요일 사순절을 시작하는 재의 예식이 있는 날 주님이 하신 단식에 대한 가르침 하나를 기억하게 됩니다.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얼굴을 하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남에게 보이려고 얼굴에 그 기색을 하고 다닌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단식할 때에는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라. 그리하여 단식하는 것을 남에게 드러내지 말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보여라.”

이 말이 예수님께서 숨은 곳에서 단식하셨다는 이야기의 근거 또한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가르침 속에서 단식은 한 사람이 자신의 곡기를 끊고 하느님께 그 생명의 소중함을 하느님 앞에서 느끼고, 그 정성을 하느님께 드리는 가장 개인적인 신심의 노력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단식은 남들에게 드러나는 정성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일행이 단식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알려지지 않고, 드러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인 듯싶습니다.

하지만 오늘 예수님의 말씀은 분명 예수님의 일행들은 단식하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잔치에 온 신랑의 친구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야 어떻게 슬퍼할 수 있겠느냐? 그러나 곧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때에 가서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

단식이란 숨은 것도 보시는 하느님께 자신이 받은 소중한 생명의 깨우침에 감사와 그 소중한 생명의 정성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계시는 시기는 하느님과 함께 있기에 곡기를 끊고 정성을 보일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께 정성을 드리기도 전에 하느님께서 먼저 다가오시어 사랑을 주셨고, 우리가 기도드리기 전에 그분이 우리의 삶을 함께 나누고 계시기에 우리가 드리는 정성은 그 순간 하느님의 더 큰 사랑에 묻혀 필요하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신 분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와 함께 숨 쉬고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며 삶을 함께 하시는데 단식이 필요할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신랑을 빼앗길 날이 되면 단식할 것이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얼마 후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그 생명을 이기심에 사로잡힌 사람들에게 빼앗겨 버리십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집니다. 세상은 하느님께 사랑을 허락하지 않았고, 그래서 사랑이 생명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그리고 남겨진 제자들은 단식해야 할 시기에 접어듭니다. 주님이 부활, 승천하신 후에 남겨진 지금 이 시대의 우리에게도 단식은 필요해졌습니다. 왜냐하면 여전히 이 세상은 주님의 사랑의 생명을 허락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순절, 특별히 세상이 버린 주님의 생명을 안타까워하는 이 시기에 정성어린 단식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가르침, 단식은 보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내 생명의 교류와 일치에 의미가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기쁘게, 사랑하며 단식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 우리에게 주고자 하셨던 그 한 끼의 정성에 담긴 생명에 감사하며 웃으며 하느님께 우리 한 끼의 생명을 나누는 사랑의 단식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단식은 고통스런 것이 아니라, 선행을 하듯, 자선을 하듯, 기도를 하듯 기쁘고 행복한 것이어야 합니다. 하느님과 생명을 나누는 것, 그리고 그 몫을 주님처럼 다른 배고픈 이들과 나누는 것이 단식이니 말입니다. / 부산교구 정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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