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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술잔을 생각하시면 이해하시기가 아주 쉽습니다.
내 앞에 있는 잔은 내가 마실 분량입니다.
그래서 잔은 어떤 사람의 몫, 그의 운명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잔을 함께 마시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자기들이 예수님의 잔을 마실 수 있다고 대답합니다.
그들이 청하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그 잔이 어떤 잔인지도
아직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게 대답한 것일까요?
당신의 잔이 무엇인지를 아셨던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아버지께
“이 잔이 저를 비켜 가게 해 주십시오.”(마태 26,39)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너무나 고통스러우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야고보를 비롯하여 대부분의 사도들은
예수님의 잔을 결국 마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던 일을 그들이 계속하고,
그분께서 선포하신 하늘 나라를 선포하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분을 하느님이시라고 고백하면,
당연히 그 잔을 마실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습니다.
사도들 가운데 가장 먼저 순교한 야고보는,
그가 마실 잔이 무엇인지 분명히 알게 되었을 때에 그 잔을
거부하지 않았고 예수님의 고난을, 그분의 죽음을 함께 지고 갔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고백처럼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지니지 않고서는 부활을 선포할 수 없습니다.
죽음 없이는 부활이 없습니다. 은연중에 죽음 없는 부활만을
바라고 있지는 않은지, 또한 적극적인 자세로 우리의 신앙에서 십자가와
죽음은 어떤 의미를 갖는지 곰곰이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 보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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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주님 사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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