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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의 첫 신학생이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올해 부제품을 받았고,
두 번째 신학생도 한국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김대건 신부님과
최양업 신부님을 자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박해 시대에도 우리나라에는 선교사들이 아주 없지는 않았고
지금 몽골에도 많은 선교사들이 있지만, 한 나라에서 그 나라 출신
첫 번째 사제는 그 나라 교회 전체를 위하여 참으로 소중한 의미를 갖습니다.
우리나라에서 공부하려고 몽골에서 파견된 첫 신학생들은
몽골 교회의 미래를 짊어진 이들입니다. 열심히 공부하는 이들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몽골에 돌아가 돌보아야 할 후배들과 신자들에 대한
강한 소명감과 책임감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김대건 신부님도 이와 같으셨을 것입니다.
최초의 신학생으로 마카오에 유학하여 공부하시면서,
늘 우리 교회의 앞날을 생각하셨을 것입니다.
박해받는 교회, 목자 없는 양 떼! 이 땅에 돌아와서는 사제로서
짧은 삶을 사시고 순교하셨으니, 신앙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 영광이야
아쉬움이 없으셨겠지만 이 양 떼를 두고 가시는 간절한 마음은 어떠하셨을까요?
김대건 신부님이 피로 순교하셨다면,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님은 우리나라 전국 각지에 복음의 씨를 뿌리고
46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난 땀의 순교자, 착한 목자이셨습니다.
두 분 신부님들이 오래 사셨다면, 사제 부족으로 극심한 어려움에 처해 있던
초창기 우리나라 교회가 뿌리를 내리는 데 커다란 도움이 되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됩니다. 아주 인간적인 생각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뜻은 이와 달랐습니다.
우리 인간은 통계나 경험을 토대로 만사를 판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지만,
하느님의 계획과 섭리는 그렇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우리 생각이 다를 때,
그분의 뜻을 받아들이고 순종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이지요.
한국 교회가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성장한 것은 순교자들의
피와 전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해가 없는 오늘날, 외형적으로
크게 성장한 교회가 순교 정신을 잊고 복음에 대한 충성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도록, 오늘 특별히 김대건 신부님의 전구를 청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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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성 안드레아 김대건 신부 노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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