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2015. 6. 21. 오후 4:5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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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의 묵상
    오늘 독서와 복음에서는 폭풍과 바다와 풍랑 등이 배경으로 등장하지만 말씀의 식탁 주제는 이러한 내용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느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욥기는 의인이 받아야 하는 고통과 시련에 대한 질문과 이렇게 부조리한 고통을 방치하시면서 침묵하시는 듯한 하느님의 침묵에 대하여 의문을 제기합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부당한 고통에 번민하면서도 그 아픔을 묵묵히 견디어 내던 욥이 드디어 하느님께 자기가 겪고 있는 시련에 대한 응답을 요청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창조주이심을 간접적으로 언급하시면서 답변하십니다.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피조물에 대한 통치권을 행사하시면서 피조물을 돌보시고 사랑을 통하여 창조 사업을 계속하시는 분으로 소개됩니다. 욥의 문제는 그가 겪고 있는 고통이었습니다. 돈독한 믿음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그가 시련을 통하여 시험을 받고 있습니다. 자타가 의인으로 인정하는 그가 이유 없이 고통을 당한다면 이 세상은 분명 부조리한 것이며, 하느님께서 세상을 제대로 통치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이러한 번민과 고뇌와 질문에 대하여 하느님께서는 그 렇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 “누가 문을 닫아 바다를 가두었느냐?” 바다는 피조물인 욥에게 미지의 세계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바다를 지배하고 통치하시는 분이십니다. 욥이 결코 할 수 없는 것을 하시는 분, 욥이 도저히 알 수 없는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독서 욥기의 주제는 거친 풍랑이나 바다가 아니라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복음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믿음이 부족한 제자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알지 못하였다는 점입니다. 그 해답은 오늘 복음 마지막 부분에 나타나는 제자들의 반응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호수까지 복종하는가?” 제1독서에 따르면, 바람과 호수를 복종시킬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십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의 주제는 예수님의 신성입니다. “이분이 누구시기에?” 그분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옆에 계신데, 풍랑 따위가 어찌 문제가 될 수 있습니까? 하느님께서 내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가신다면, 하느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배에 타고 계시다면 풍랑 따위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밤이 아니고 거센 풍랑이 일지 않아서가 아니라, 칠흑같이 캄캄한 밤이라도 배를 뒤집을 정도로 아무리 거친 폭풍우가 휘몰아친다 하더라도 그분께서 우리 배를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나그네의 삶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복음이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큽니다. 우리가 인생의 격랑에 휩싸여 어느 길을 가야 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할 때, 예수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파고를 잔잔하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여러 가지 번민과 슬픔과 의혹의 폭풍이 몰아칠 때 우리를 보살펴 주시고 마음의 평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미래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 엄습해 오더라도 이것 또한 하나의 풍랑으로 생각하고 주님께 맡겨 드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출처 매일 미사-
♬ 두려워 말라 (Be Not Afra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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