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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문화 시대의 복음적 삶에 관한 성찰에서 악령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악령의 실체와 존재 양식의 구조가 확실하게 느껴지고 있다.
아담의 유혹자와 카인의 질투심, 노아 시대의 환락과 바벨탑의 무모함,
광야의 예수님을 유혹하던 악마와 그 세력들이 엄청난 물신 우상의
세력으로 성장해 우리 시대의 창조의 질서와 복음적 삶을 포위하고 있다.
돈이 대접받는 시대에 악령은 당당하게 군림한다.
금융과 기술 과학을 떠받드는 악령의 위용은, 복음을 한입에
넣어 삼키고 토하기를 반복하는 패권 시대를 거리낌 없이 드러낸다.
시대의 위용은 하늘을 덮고 사람들은 이기와
물신의 우상에 취해 버렸는데 무엇 하나도 변화시킬 능력이 없다.
이러한 무력감에서 ‘사제란 누구인가?’를 묻고 또 물었을 때
복음서에서 처음 보는 듯한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예수님께서 선발하신 사제가 맞다면
내게도 악령을 추방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예수님의 행적에서 병자의 치유가 묵상의 주제였다.
악령이란 추상적이며 신화시대의 표현이라고만 생각한 가운데
악령 추방의 행적을 주목하지 못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으신 이유는
‘당신과 함께 지내게 하시고’, ‘복음을 선포토록 하시며’,
‘마귀들을 쫓아내는 권한을 가지게 하시려는 것’이다.
제자의 정체성에 대하여 더하거나 뺌도, 별다른 해석도 없이 드러낸 것이다.
그런데 왜 악령을 추방하는 능력이 강조되지 않고 실종된 것일까?
복음서를 신화의 경전으로 생각하는 것은 큰 잘못이다.
이 문제가 바로 오늘날 그리스도의 복음이 문화의 복음에
압사되고 있는 사태의 핵심이라는 생각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께서 살아 계심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현대’, ‘과학 기술’, ‘문화생활’ 등의 옷을 걸치고 위세를 떨치는
악령의 집단을 추방하는 일에 나서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 않다면 교회로서, 제자로서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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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세상에 외치고 싶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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