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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빌론에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은 강도 높은 노동의 연속 속에서
무엇보다 하느님께 선택된 선민으로서의 종교 의식을
금지당하고 숨소리를 죽인 채 가족 예배를 드려야 했다.
반세기에 가까운 그 기나긴 유배 생활의 어둡고 괴로웠던 기억을 잊을 수 없었다.
단 하루만이라도 편히 쉬며 마음 놓고 찬양할 수 있기를 바라는 인간적 소망을
「창세기」 작성에 반영하여 하느님의 이름으로 안식일 규정을 만들었다.
삶의 고난에 지친 이들을 위한 장치로 안식일의 규정을 제정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안식일이란 가장 인간다운 환경의 날이자
하느님 백성임에 대한 감사의 날이다. 무엇보다 통치자나 기업주나
종교 지도자를 위한 날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지배 세력들은 안식일 규정의 위법 사례를 단속하며
자신들의 존재감이 빛나는 날로 삼았다.
진리가 왜곡될 때는 언제나 근본을 보아야 한다.
출발점의 초심을 기억하라는 것이 오늘 예수님의 가르침이다.
안식일은 평화와 자유를 보장하고자 생긴 날이라고 말이다.
“근로 기준법을 지켜라!” 외치면서
자신의 몸을 횃불로 만든 청년 전태일을 생각한다.
환풍기 하나 없는 칙칙한 다락방에서 하루 16시간 이상씩
노동해야 했던 개발 독재 시절, 사람은 모자라고
수출 달성과 경제 성장, 총력안보 구호만 나부끼던 비정의 시대였다.
약자인 노동자로서 차마 법을 어길 수는 없고 제 몸을 불살라
법을 지키라고 항의하며 스스로 횃불이 되었던 그의 죽음 앞에
오늘의 봉급생활자는 무슨 생각을 할까? 이제 고용 조건과 보장도
완전해져서 사람 살 만한 세상이 되었다고 할 것인가?
아니면 성과 중심의 고용에 스스로 자신을 혹사하는
자발적 노예 노동의 시대가 나타났다고 할 것인가?
삶의 안식이 절실한 시대, 창세기적 인간 시대를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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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임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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