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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사벳은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녀와 그녀의 남편 즈카르야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그래서 즈카르야에게 가브리엘 천사를 보내시어
아기가 태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즈카르야는 이를 믿지 못하여 벙어리가 되었습니다.
그가 믿을 수 있도록 표징을 내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표징도 많을 텐데 왜 하필 그를 벙어리가 되게 하셨을까요?
그리스 철학의 스토아학파를 창시한 철학자 제논은 이런 말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두 개의 귀와 한 개의 입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더 많이 듣고 적게 말하여야 한다.”
많은 사람이 듣기보다는 말하기를 더 좋아합니다.
그러나 듣는 것에 소홀하면 상대방의 마음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습니다.
사실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서 다툼이 일어나는 이유 가운데
가장 큰 것이 바로 듣지 않는 태도입니다.
하느님과 우리의 관계에서도 ‘들음’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믿음은 들음에서 온다고 하였습니다(로마 10,17 참조).
오늘 복음에서 즈카르야가 벙어리가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동안 그는 자신의 뜻과 생각에만 머무른 나머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그는 들어야 합니다. 곧 침묵 안에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분의 뜻을 알아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그는 벙어리 상태에서 엘리사벳에게 주어진 놀라운 잉태를 지켜봅니다.
그리하여 벙어리가 되기 직전에 ‘불신의 말’을 했던
그가 입이 열리자마자 하느님에 대한 ‘찬미의 노래’를 부릅니다
(루카 1,67-79 ‘즈카르야의 노래’ 참조).
우리는 어떠합니까? 우리도 벙어리가 되어야 하는 때가 많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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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매일 미사-
♬ 사랑의빛으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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