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기도(5.17)

2009. 5. 18. 오후 7:10:01

글자

 

 일요 관상기도 시간에 수사님께서 강의하신 말씀을 전합니다.

우리가 옷을 입고 신발을 신을 때 자기에게 딱 맞아야 편하다.

정신도 자기에게 맞지 않으면 옷과 신발이 맞지 않는 것 이상으로 불편하다.

어린 시절에 말을 잘 듣고, 하라는 대로 하고, 아름다움을 알고, 뛰어놀았던 것이 

원래 나의 본 모습이다. 세월이 흐르면서 원래 나의 모습에서 멀어졌다

하느님이 우리 안에 가능성을 넣어 주었으므로 모든 계명을 지키면 온도, 빛을 받아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이 본 모습이 사랑이다.


사랑은 내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원래 있는 것이다.

누구를 존경하거나 이웃을 사랑하면 그 계명이 본모습으로 돌아가게 한다.

사랑은 완성이라고 할 때, 완성이 이미 내 안에 있는 것이지 따로 완성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본 모습과 현재의 내가 계명으로 소통될 때 사랑은 싹튼다.


성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이해하려면 권고 2의 “의지는 나의 것이 아니다.”를 알아야 한다.

예를 들어, 내가 말을 하거나 밥을 먹을 때 내가 하는 것이 아니며 나의 의지는 없다.

그래도 내가 말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본 모습으로 회복되지 못한 사람이다.

“내 의지는 나의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의지다.” 를 머리로 이해하지 마라.


내가 숨을 쉴 때 그냥 쉬게 되어서 쉬는 것이다. 숨 쉴 때 여러분은 느끼는가?

이것이 나의 숨이 아니고 하느님의 숨이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는 하느님이 하시는

행위라는 것을 깨달으면 죄를 안 짖는다. 숨을 쉬거나 행동하는 것을 내가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ego가 들어갔기 때문에 죄를 짓지 않을 수 없다. 원래의 나의 모습은 자비, 사랑, 존경이다.

모든 말과 행위는 나의 본 모습에서 나와야 되고 그것이 회복되었을 때 죄를 안 짖는다.

다른데서 실마리를 찾으려고 하지 말고 숨, 하느님의 숨에서 찾아라.


나의 의지가 나의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의지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성 프란치스코는 아담의 원죄와 비교하여 권고 2 에서, 내가 죄인인가, 죄인이 아닌가는

의지를 나의 것으로 하는 사람인가 아닌가에 따라 결정한다고 하였다.

의지를 나의 것으로 하면 아담과 똑같은 죄인이다. 성 프란치스코는 거기에서 벗어났다.


일생동안 내 의지를 나의 것으로 살아온 어두운 터널을 돌이켜 보면 용하다. 

하느님의 의지를 깨닫지 못하고 내 힘으로만 계속 했다. 그러나 나의 의지가 나의 것이 아니고

하느님의 의지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진짜 회개다. 본질적으로 내가 왜곡되어 있는 것이

풀리는 회개가 되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의 잘못에서 오는 회개는 다음에 또 잘못된다.

 

“내 의지를 버릴 때 하느님의 의지에 동화된다. 이 자체는 이분법적이다.

하느님의 의지에 나의 의지를 동화시킨다는 이야기 보다 오히려 이 때 지금까지

나는 아무것도 아니고 ‘내 의지가 모두 하느님의 의지였구나.’ 를 아는 것이다.

계명은 본 모습으로 돌아간 상태가 하느님의 모습과 닮아서 하느님과 일치하는 것이다.    

그래서 본 모습을 회복하면 활기차다. 다음 시간에 자세히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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