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예리고의 두 소경 (마태 20, 29-34)
그들이 예리고를 떠날 때에 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따랐다. 그런데 눈먼 사람 둘이 길가에 앉아 있다가 예수님께서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주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군중이 그들에게 잠자코 있으라고 꾸짖었지만, 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주님,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외쳤다. 예수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들을 부르신 다음,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바라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주님, 저희 눈을 뜨게 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들어 그들의 눈에 손을 대시자, 그들이 곧바로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님을 따랐다.
[해설] 복음서에서 예수께서 병자를 치유하실 때 그분이 영적인 장님, 절름발이, 벙어리 또는 귀머거리들을 치유하고 계신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악마를 쫓아냄은 사람들을 탐욕과 충동에서 벗어나게 함을 나타낸다. 그 당시 나병은 곧 죽음을 의미한 만큼 나병의 치유는 거짓된 자아를 낫게 하는 치유를 상징했다. 실제로 나병에 걸렸다는 것은 육체적으로는 살아있을 망정 사회적으로는 죽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영적 감각들이 드러나는 최초의 징후는 하느님께로 이끌리는 것이다. 이것은 그저 하느님과 조용히 차분하게 홀로 있고자 하는 바램일 수도 있다. 영적 감각들은 그것이 지니는 직접적 효과 때문에 신체적인 감각들과 흡사하다. 이 감각들은 신체의 감각들이 아닌 삼라만상의 큰 가치들을 직접 감지하는 직관적인 기능들을 통해 실재와 접촉하게 한다. 이들은 관상기도를 통해 점진적으로 깨어날 수 있다. 영적 감각들을 일깨우는 일은 신앙의 눈으로 보라는 복음의 부르심이다. 영적 감각들이 활성화될 때 우리는 진실로 듣고 보게 된다. 즉 실재의 핵심으로 통하는 흡수기관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믿음과 희망과 사랑을 통해 우리는 우주의 궁극적인 메시지를 듣는다.
이같은 깨우침의 결과는 시력을 찾은 소경이 취하는 행동으로 상징되고 있다. 그들은 그분을 따라 나섰다. 예수께서는 그를 치유한 것이 무엇인지를 강조하신다. 그것은 바로 믿음이었다! 이 믿음은 그저 이성을 통해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직관에 해당하는 신앙이었다. 예수께서는 그 소경에게 말씀하신다. “평안히 가라. 네 믿음이 너를 살렸다.”
우리의 신앙, 그것은 우리를 부르고 어루만지고 변화시키는 하느님과의 일치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변화되는 것, 그것이 바로 궁극적인 치유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