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록> 제일권 제십사장

2005. 8. 5. 오전 8:26:13

글자

제 일 권  제 십 사 장

 

그렇다면 이런 따위를 노래하는 희랍의 문법학이 왜 싫은 것이었습니까? 호메루스는 이런 이야기를 엮는 솜씨가 능란하나, 흥미진진하면서도 헝황되어서 나 같은 소년에겐 입맛이 썼던 것입니다.

 

희랍 아이들에게 뷔르질리우스를 억지로 배우란다면 내가 싫던 것처럼 그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고 믿습니다. 그렇습니다. 어려움, 외국어를 완전히 익힌다는 어려움, 그것이 황당무계한 얘기들의 희랍스런 맛에다가 쓸개를 끼어얹는 것같았습니다. 낱말 하나도 풀이하지 못하는 터에 배우라는 명령은 추상 같았습니다.

 

물론 라띤말조차도 어릴 때는 통 몰랐지만 겁내는 일, 매서운 꼴 안보고도 유모들의 귀염 속에서, 그리고 서로 즐거이 노는 웃음 가운데서 저절로 배우게 되었습니다.

 

몰아대는 이들의 벌짐이 아니라도 우선 맘먹은 것을 내놓으려는 내 마음이 바빠서 배웠댔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몇 마디라도 알아두는 길밖에 딴 도리가 없었는데, 그것도 이르바 가르치는 사람들이 아니라, 말하는 사람들을 귀담아 듣고, 이리하여 나는 느끼는 대로를 나타내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어학을 배우는 데 있어 보다 더 힘이 되는 것은 자유로운 지식욕이지(역주: 스스로 배우고 가르쳐본 경험을 통하여 저자는 교육의 바탕을 강제 아닌 자유에다 둔다. 철학자 오이켄이 그를 가리켜 “최초의 현대 사상가”라고 한 것처럼 우리는 “최초의 현대 교육학자”라고 부를 수 있다. 페스탈롯치인들 이와 다른 이론을 내세울 수 있던가?), 겁에 질릴 필요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러하오나 천주여, 당신의 법은 저것의 흐름을 이것으로 막으시나니, 스승의 채찍으로부터 순교자의 고형에 이르기까지 세워주신 그 법, 당신의 법이야말로 이로운 쓴맛을 알맞게 섞어서, 그로 해 당신을 떠났던 독스러운 재미를 떠나 우리를 당신께로 도로 부르시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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