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 해설] 20.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

2005. 8. 4. 오전 8: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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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예수의 영광스러운 변모 (마태 17, 1-9)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 그 때에 모세와 엘리야가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주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원하시면 제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베드로가 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빛나는 구름이 그들을 덮었다. 그리고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이 소리를 들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린 채 몹시 두려워하였다. 예수님께서 다가오시어 그들을 어루만지시며, 일어나거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그들이 눈을 들어 보니 예수님 외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해설] 영광스런 변모의 산의 의미는 단순한 피정의 장소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상기도 수행목적에 해당하는 영적 깨달음의 체험 상태를 말한다. 관상기도가 자기 안에 자리잡아 가고 있음을 알 수 있는 첫 번째 조짐은 고독에 끌리는 매력이다. 그것은 우리가 행복을 추구하는 정서적 프로그램을 제거함으로써 우리의 기능을 순화하고 또 일상생활이 이 프로그램을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야기되는 말썽을 결과적으로 줄이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세 사도의 정서적 프로그램은 적어도 일시적이나마 산 밑에 남겨두고 올라온 셈이다. 고독에 끌리는 매력은 그들을 산 위로 인도하신 예수로 상징되고 그들의 영적 깨달음을 보여주는 첫 번째 조짐에 해당된다. 설령 우리가 올라간 특정한 산예를 들면 피정이나 매일의 기도시간이 어떠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유사한 매력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의 신비에 접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저항할 수 없는 자석처럼 고독에 대한 매력이 도대체 어디서 오는지도 모른 채 끌려가게 될 것이다.

 

이 거룩한 산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압도하는 현존으로 변하셨다. 모든 산꼭대기나 피정이 이런 체험을 항상 제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크나큰 가능성을 가짐으로써 하느님은 다양한 모습으로 현존하신다. 베드로의 반응은 영원토록 거기에 머물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 일치 체험이 깊을수록 거기에 오래도록 머물고 싶은 것이 당연하듯이 베드로의 생각은 초막 세 개를 세워 예수와 예언자와 사도들이 거기서 언제까지나 기거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평지에서는 어부였지만 이미 평지로 돌아가는 것에 흥미를 잃었다.

 

제자들이 예수를 통해 하느님의 현존체험에서 오는 기쁨에 젖어있을 때 갑자기 구름이 그들을 덮어버린다. 구름은 우리가 관상기도를 정기적으로 실천할 때 흔히 만날 수 있는 미지를 상징한다. 그때 느닷없이 구름 속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이것은 단순히 그들이 산 밑에 있을 때 귀 기울여 듣곤 했던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 아니라 너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의 사랑인 그분에게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이 인간 안에 육화하신 하느님의 현존에 귀를 기울이라, 육화된 말씀이 거기에서 출현했다가 그리로 되돌아가는 무한한 침묵에 귀를 기울이라는 것이었다.

 

거룩한 변모의 은총은 단순히 영광을 목격한 꿈같은 광경도 아니며, 더없이 황홀하지만 고립된 신적 위로의 체험도 아니다. 물론 이 체험이 큰 가치를 지니기는 하지만 그 일차적 목적은 보다 큰 것, 다시 말해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살고 모든 사건과 사람과 우주와 우리 자신 속에서 그 현존의 찬란한 빛을 알아보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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