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뜻대로 사는지, 내 뜻대로 사는지..(from : 윤아오)

2005. 10. 7. 오전 12:07:14

글자
 <마태 21:28-32 - 연중 제 26주일>


오늘 복음 말씀입니다,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먼저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여라' 하고 일렀다. 맏아들은 처음에는 싫다고 하였지만 나중에 뉘우치고 일하러 갔다.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도 같은 말을 하였다. 둘째 아들은 가겠다는 대답만 하고 가지는 않았다. 이 둘 중에 아버지의 뜻을 받든 아들은 누구이겠느냐?"




이 비유는 우선 유다인과 이방인들을 겨냥하고 있지만 우리 각자에게도 적용됩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가르침이 합당함을 알아차릴 때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하고 하느님 말씀을 지킬 것을 다짐합니다. 그러나 왕왕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뒤로 하고 전과 같은 생활을 계속합니다.  우리는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고 말했을 때 우리가 진실했었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에서 살고 있다고 착각하지만, 우리의 일상 습관은 우리를 하느님 나라에 부르신 하느님의 뜻을 벗어나고 있습니다. 가끔 하느님의 뜻과 우리들의 행동이 일치를 이루기도 하지만, 하느님의 뜻과 우리들의 의지에 괴리가 생깁니다. 우리의 생활을 지배하는 것은 후자의 경우이고 결국 우리는 하느님의 뜻보다는 우리가 원하는 것과 우리의 일시적인 기분을 따릅니다.



하느님 나라의 생활은 단지 이름을 올리는 것으로 되지는 않습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우리의 삶의 매 순간에 우리 자신을 위해 하느님의 뜻을 받아 들이겠다는 지속적이고 진실한 욕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것은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생활을 보면, 반복하는 것은 우리의 불성실 뿐입니다.  특히 우리가 하느님의 뜻을 따른다고 믿고 있으면서 하느님의 뜻을 피해나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것은 실제와 그것에 대한 생각을 혼동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마음 속으로 어떤 것을 아주 중하게 생각하고 그것을 좋아하고  높게 평가할 수 있지만 실제는 전혀 다르게 행동합니다. 우리들의 마음이 균형을 잃어서, 실제와 생각의 편차를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왕국에 한 번에 정착할 수 없습니다. 매 순간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밖으로 미끄러져 나올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왕국은 하느님의 개인적인 부르심에 우리 각자가 응답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 각자에 따라, 우리 각자의 환경에 따라 다른 하느님의 뜻에 우리가 매달리는 것입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본 하느님의 계획은 한 번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교회의 필요와 개인의 역량에 따라 점차적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사실 하느님의 나라는 우리가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은 아닙니다. 우리는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사전에 모르지만, 하느님께서 우리에게서 무엇을 원하실까를 살피면서 예수님을 항상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그때 신중하게 관찰하고, 깨어있고, 집중하고, 그렇지만 평화롭게, 하느님의 살아있고 변화하는 뜻을 알아차리도록 해야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으로 인해 우리는 성장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오늘 우리에게 요구하지 않으신 것을 내일 우리에게 요구하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요구는 우리를 지속적으로 새로운 길에 끌어 들이십니다. 우리는 하느님 앞에 항상 준비되어 있기 위해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의 동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출처 : 역삼동 영어미사 강론 - 패시피코 신부님 원고 / 번역 - 윤아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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