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면서 서로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하느님의 축복이다.
중국 땅에 사람이 무수히 많았어도 두보(杜甫)를 알아준 이는
이백(李白) 뿐이었다고 한다.
744년 44세의 이백과 33세의 두보는 낙양에서 처음 만나
교분을 나누며 산천을 유람하였다.
훗날 두보는 자신을 알아주는 벗에 대하여 이렇게 노래했다.
‘가을날 술에 취해 잠 잘 때 한 이불을 같이 덮었고,
손잡고 날마다 함께 다녔다네.’
미국의 에머슨은 영국의 역사학자 칼라일(1795-1881년)을 찾아가
처음 만난 자리에서 백년지기처럼 의기투합하였다.
서로를 알아주는 친구가 좋아서 그 뒤로도
에머슨은 영국을 세 번이나 더 갔다.
1910년 40세의 간디는 당시 82세의 톨스토이를 편지로 만나며
그를 도반으로 삼았다.
간디의 편지를 받은 톨스토이는 늘그막에 비로소
마음이 통하는 사람을 얻은 기쁨에 원고지 스무 장이나 써서
장문의 편지로 답을 보냈다.
엘리야를 기다리면서도 세례자 요한을 함부로 다루는 것이
세상이고, 메시아를 대망하면서도 예수님을
박대하는 것이 세상이다.
그런 세상에서 나를 알아보고 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확실히 행운이요 하느님의 축복이다.
바오로 사도 역시 그런 행운을 누린 분이다.
예루살렘에서 베드로 사도를 만나 서로를 알아보고
서로를 알아주며 아름다운 만남을 이루어갔던 것이다.
우리도 그런 만남을 이루어갈 수 있도록 하느님의
축복을 청하도록 하자.
신부님 강론말씀을 일부만 옮겼습니다
저는 교리 신학원에서 이미 아름다운 만남을 이루었습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더 많이 나누며 살겠습니다
그리고 여러분~~ 내일 등산 모임에서 만나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