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월 18일 복음 사순제4주일

2012. 3. 16. 오후 7:19:07

글자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3,14-21

  그때에 예수님께서 니코데모에게 말씀하셨다.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들어 올린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들어 올려져야 한다. 15 믿는 사람은 누구나 사람의 아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16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나머지 외아들을 내주시어,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셨다. 17 하느님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아들을 통하여 구원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다. 18 아들을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느님의 외아들의 이름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19 그 심판은 이러하다. 빛이 이 세상에 왔지만, 사람들은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하였다. 그들이 하는 일이 악하였기 때문이다. 20 악을 저지르는 자는 누구나 빛을 미워하고 빛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자기가 한 일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21 그러나 진리를 실천하는 이는 빛으로 나아간다. 자기가 한 일이 하느님 안에서 이루어졌음을 드러내려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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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17. 프라도의 집, 참제자모임, 나눔참여 5명>
-초등학교 때 집 가게에서 좋은 목적이지만 몰래 용돈을 빼내 쓰다 혼난 기억을 생각하면서, 속세의 어둠 때문에 눈먼 영성을 가진 신앙생활을 하지말고, 깨어서 보다 투명한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함.
-신앙을 가지고 있지 않은 친구들과 남 흉보기보다 자기 살아가는 이야기를 하자고 하니, 그후 분위기가 말없이 싸늘하게 식어버린 기억을 생각하면서, 비신앙인과 어울린다는 것이 참 어려움을 느낌.

-믿는 사람은 심판을 받지 않는다는 말씀의 의미가 심판 면제라면 좋겠지만, 현실은 성경 말씀의 요구 수준에 도달하기에는 정말로 부족함을 느낌. 그래도 이 귀절을 붙잡고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니, 행복하다고 생각됨. 가족에게서도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것이 우리들 현실이니... 결국은 믿음을 더해달라고 갈구할 수밖에 없음을 느끼면서 삶.
-성체 앞에서 말씀을 묵상하지만, 정말로 믿고 살고 있는지 아니면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지 그냥 답답할 경우가 많은데, 오늘 역시 답답함에 머물렀지만, 그냥 기도로 마음을 봉헌하려고 노력하였음. 

-모세가 구리뱀을 들어올리든지, 성자께서 십자나무에 들어올려지시든지 -깃발을 그저 천으로 만들어진 것으로만 이해할 필요는 없으니- 오늘날 입장에서는 모두 '생명의 깃발'을 들어올리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복음의 말씀이 좀더 쉽게 와 닿는 것 같음.
이때, 모세의 구리뱀 깃발은 광야의 위협을 상징하는 (파리-모기-메뚜기-)불뱀들로 인한 죽음으로부터의 구원, 곧 이 세상에 일시적인 생명으로의 구원을 의미한다면, 예수님의 십자나무의 성자 깃발은 이 세상의 죄(원죄와 본죄)를 상징하는 십자가로 인한 죽음으로부터의 구원, 곧 새로운 세상에 영원한 생명으로의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 차이점일 것.
그래서, 생명의 깃발 아래 서는가 그렇지 않은 깃발에 서는가로 해서, 이미 빛을 사랑하는지 어둠을 사랑하는지, 이미 생명의 심판에 해당할지 멸망의 심판에 해당할지가 가려지고 있다는 뜻이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말씀의 의미에 합당하다고 생각된다.
깃발을 듬과 관련하여, 참제자모임으로 출발한 우리 모임에서 처음부터 깃발을 드신 분들과 참제자마을로 가고 있는 지금 깃발을 드시는 분들이 크게 달라졌음을 묵상하면서, 처음 깃발을 드신 분들과 다음 깃발을 드시는 분들의 깃발이 과연 같은 것인지 아니면 달라진 것인지... 동일한 하나의 것인지 그렇지 못한 또다른 것인지, 참제자마을의 첫 결과물이 나오는 지금, 과연 모든 깃발들을 하나의 방향으로 한데 모을 수 있는 것인지 등등에 대해서... 힘들고 어려운 묵상을 하였음.

-이냐시오 영신수련에서 하느님의 깃발과 악마의 깃발 '두개의 깃발'에 대한 묵상이 나오는데... 성경에서는 깃발과 관련된 귀절이 잘 발견되지는 않음.
빛으로 해서 우리는 하느님의 현존을 그대로 느낄 수 있고, 숨으로 해서 우리는 성령의 현존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음...

댓글 1

  • 2012년 3월 18일 오전 10:57

    '참제자모임'을 처음 출발시키신 4분께서, 프라도회를 만드신 슈브리에 신부님의 책 '참다운 제자'에서 그 명칭을 따왔듯이, 우리 모임을 이끌어 모으는 깃발은, 처음에는, 슈브리에 신부님의 회심으로 표현되는 구유-십자가-감실, 셋이지만 하나의 영성인 케노시스(가난-자기비허)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많은 형제자매님들과 성체조배와 함께 하는 주일복음묵상-나눔을 계속 진행해 보니, 이제는, 우리 모임의 깃발은 '성자를 알고' '성령을 가진다'는 슈브리에 신부님의 삶의 본 모습 자체에서 나오는, 둘이지만 하나인, 영성이 실제로 사람을 모으고 이끄는데 더 큰 깃발로서 역할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