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월 11일 복음 사순제3주일

2012. 3. 9. 오후 5:35:58

글자

  복음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3-25

    13 유다인들의 파스카 축제가 가까워지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14 그리고 성전에 소와 양과 비둘기를 파는 자들과 환전꾼들이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15 끈으로 채찍을 만드시어 양과 소와 함께 그들을 모두 성전에서 쫓아내셨다. 또 환전상들의 돈을 쏟아 버리시고 탁자들을 엎어 버리셨다. 16 비둘기를 파는 자들에게는, “이것들을 여기에서 치워라. 내 아버지의 집을 장사하는 집으로 만들지 마라.” 하고 이르셨다.
  
17 그러자 제자들은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이 저를 집어삼킬 것입니다.”라고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생각났다.
   18 그때에 유다인들이 예수님께, “당신이 이런 일을 해도 된다는 무슨 표징을 보여 줄 수 있소?” 하고 말하였다.
   19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
   20 유다인들이 말하였다. “이 성전을 마흔여섯 해나 걸려 지었는데, 당신이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는 말이오?”
   21 그러나 그분께서 성전이라고 하신 것은 당신 몸을 두고 하신 말씀이었다. 22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뒤에야,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신 것을 기억하고, 성경과 그분께서 이르신 말씀을 믿게 되었다.
   23 파스카 축제 때에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는 동안, 많은 사람이 그분께서 일으키신 표징들을 보고 그분의 이름을 믿었다. 24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신뢰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 모든 사람을 다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25 그분께는 사람에 관하여 누가 증언해 드릴 필요가 없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사람 속에 들어 있는 것까지 알고 계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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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3. 10. 프라도의 집, 참제자모임, 나눔참여 10인>

-성전에서 쫓아내셨다는 귀절에 머물면서, 바로 우리 몸이 성령의 성전이니, 나를 바라보고 계시는 성자 예수님을 생각하게 됨. 사순절은 바로 정화의 기간이니, 주님께서 겸손하지 못한 나를 들여다보심을 생각하고, 내 안의 겸손하지 못한 것들을 스스로 쫓아내는 겸손 훈련을 해야겠다고 묵상함.
-다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를 묵상하니, 주님은 항상 바라보신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됨. 노력하는 과정에서 다 이루어지는 '여기'까지 오게 됨을 주님께서 직접 보여주시니... 그러한 주님 안에서 주님을 향하여 주님의 시간과 함께 머무를 수 있음에 감사드림.
-다 알고 계셨다를 가지고 말씀 묵상-나눔 시간에 생각해 보니, 내 마음에 어둠이 많은데 특히 교만으로 해서 말이 많다는 점을 생각하게 되었음. 이 집착을 버리기 위해서, 사순절 시작 이후부터는 TV 안보고, 다른 사람의 말을 경청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임. 
-사람 속에 있는 것까지 다 알고 계시는데, 정작 나 자신은 남의 시선만을 의식하여 속을 살펴보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한 채 그저 겉 모습이나 고치려는 식으로 치장하는 모습 대해서 반성하고, 이제는 남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진정으로 나의 속까지 살펴보아서 고쳐야 하겠다고 생각함.

-성체조배 중에 구원을 생각하고 눈물이 흐름. (영적 눈물의 경우는, 보통 눈물처럼 눈을 퉁퉁 붓게하지 않는듯....) 구 신부님 영성을 따르면서... 힘들었던 순간마다 위로자로서 함께 해주신 주님께 감사를 드림.
-예수님은 사람 속에 계신 것까지 알고 계시니, 겉으로 박해자였던 바오로 사도 같은 분의 진정한 속까지 아셨음. 그 은총을 받으신 후에 바오로 사도께서 이제는 '우리를 떼어놓을 수 없다'고 하신 말씀을 가지고 본당에서 나눔을 해주신 정한숙 프란치스코님의 열정있는 사순절 특강이 생각나면서... 나도 그렇게 하느님을 향하는 열정이 필요한데, 실제 모습은 감기 정도 걸려가지고, 여기든 성당이든 가기 어렵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제 걱정을 너무 했다고 반성하였음. 올 사순절에는... 바오로 사도와 같은 열정을 받아, 다시 시작할 수 있기를...

-장사꾼의 집으로 만들지 말라... 삶 안에서 마음으로 부끄러운 행동을 하고나서, 작은 아들의 절박한 심정에서 나오는 고백을 비로소 체험으로 느낄 수 있었음. 최초의 인간 아담 역시 아버지의 품안을 떠나 보고서야 비로소 부끄러움을 느꼈으니... 사람이란 비참함을 깨달아야 비로소 열정을 가질 수 있는 존재라고 느껴짐.

-부활하신 뒤에야 그 말씀을 기억하고 믿게 되었다... 성전이란 '정화된 곳'이니, 타볼산에서의 거룩한 변모 때 부활 이후의 그 모습을 먼저 보고 느낄 수 있었던 은총을 받은 몇명의 제자들이 다시 생각남. 완전한 정화와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제자들이라도, 어느 정도 먼저 준비되었다면 미리 보고 느낄 수 있는 은총도 주시니.. 그러한 장면들과 이 말씀이 함께 오버랩됨을 느끼면서, 참제자마을도 그러한 은총을 주시도록 기도...

-성전은 '장사하는 집'이 아니라 '믿음의 집'이니, 인간들의 장터처럼 북적대는 나눔과 친교는 장사하는 집에도 있을 수 있고 성전에서도 있을 수 있으나... 장사하는 집의 문제는 상품의 넘쳐남에 대비되는 말씀의 결여, 곧 상품에 바탕하지 말씀에 바탕하지 않다는 것이니... 하느님의 성전에서... 말씀에 바탕하는 나눔과 친교를 이루지 못하면, 그건 장사하는 집이나 마찬가지라는 경고로 다가오는 말씀임.

-성자 예수님께서 죽으심과 부활로써 그분 자체가 '하느님 아버지의 집', 곧 성전임을 알려주셨으니, 오늘날 우리들은 말씀으로 이러하신 성자 예수님을 알고 믿고 있음.
그런데, 슈브리에 신부님이나 구신부님께서 성경묵상을 통하여 강조하시는 바는, '성자를 알고, 성령을 가지는' 것이라서... 오늘 복음을 관통하는 말씀의 핵심이 '당신 집'이라기보다 '당신 집에 대한 열정'임을, 이에 비추어 묵상해 보았음.
곧 복음서의 말씀을 기억하는 제자들은, 말씀을 통하여 '성자'를 (믿고) 아는데 그친 것이 아니라, 부활-승천 이후에 오시는 성령의 도우심까지로 해서 비로소 '성자의 열정'까지를 (깨닫고) 가지게 되는 것이니... 말씀으로 성자를 알고, 성령으로 '열정'까지를 가지면, 이로써 '당신 집에 대한 열정'을 말씀대로 믿게된다고 묵상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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