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9,2-10
그 무렵 2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다. 3 그분의 옷은 이 세상 어떤 마전장이도 그토록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 4 그때에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 예수님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5 그러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에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6 사실 베드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제자들이 모두 겁에 질려 있었기 때문이다.
7 그때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났다. 8 그 순간 그들이 둘러보자 더 이상 아무도 보이지 않고 예수님만 그들 곁에 계셨다.
9 그들이 산에서 내려올 때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10 그들은 이 말씀을 지켰다. 그러나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를 저희끼리 서로 물어보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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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3. 3. 프라도의 집, 참제자 모임, 나눔참여 5인>
-베드로의 초막 3채에 대해서 묵상함. 정약용의 영역인 다산초당의 초막 3채와 함께 생각해 보니, 베드로가 짓겠다는 멍청한 초막의 오늘날 의미는, 성부-성자-성령께 각각 한채씩 드리는 내 영역, 곧 내 마음의 초막이 되겠다고 느껴졌음. 사순절을 맞아, 나 자신도 마음의 초막 세채를 지어, 상당히 어려울지도 모르겠지만, 적어도 하루에 3가지 선행으로 각각 성부-성자-성령께 하나씩 드리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함.
-새하얗게 빛나고 모습이 변하였다를 묵상함. 빛을 받아 살려고 애쓰셔서 그 성스럽고 신비한 빛이 다른 사람들에게까지 전해진 분들... 거룩한 계약의 증인으로 얼굴의 광채를 가려야 했던 모세, 성체의 자비로운 빛을 전하신 파우스티나, 사랑의 신비한 빛으로 감싸여 계시던 마더데레사 같은 성인 성녀분들을 묵상해 보니, 나 자신도 영적으로 그렇게 빛을 받고 안에 담아, 영적으로 어느 정도 준비된 분들에서부터 시작하여 그러한 정화의 빛을 다른 분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존재에 이르도록 노력하게 되기를 기도함.
-구름 속에서의 빛남과 구름 걷힌 후의 사라짐을 생각해 보니, 이는 영적인 변화를 말하는 것이라 느껴짐. 그렇게 나에게 영적인 변화를 주신 이런 저런 분들이... 어느 땐가 환하게 떠오르다가 문득 정신이 들어-깨어나면 사라져 버리는 그런 체험들을 함께 나누고 싶음.
-모습이 변하고 새하얗게 빛났다에 대해서 묵상함. 스스로 누에를 키웠던 체험들로 미루어 생각해 보니, 누에 애벌레는 새하얀 고치를 짓기 바로 직전에 그 빛이 새하얗게 변하고, 그 하얀 고치를 뚫고 나온 누에 나방을 보게 되면, 그 과정을 직접 보지는 못한 여타 가루 날리는 누에 나방들과는 달리, 귀찮기는커녕 경외롭고 눈부시게 보이면서 다가오는 그런 감동의 체험들이 떠오르면서... 나 자신도 노력해서 그런 감동을 줄 수 있게끔 변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였음.
-마르코 복음은 이 세상이 아닌 새롭게 창조되는 새 세상의 눈부신 큰 빛의 탄생과, 이를 선체험하는 어느 정도 준비된 3명의 제자들이라는 장면을 극적으로 보여준다고 묵상함. 프란치스코 성인과 데레사 성녀의 태양과 달 같은 '빛의 영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이는 오늘날에는 '스타 탄생'의 무대(축제)와 비슷한 체험으로 설명하는 것이 더 잘 맞을 수 있다고 느껴졌는데... 예컨대 올림픽 축제(무대)에서 탄생한 세계적 스타 김연아와 어느 정도 준비된 관객인 한국인들의 경우가 그럴 것임. 그런데 예수님의 '눈부신 큰 빛 탄생'의 경우, 그 축제(무대)는 바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부활', 곧 새로운 창조의 축제(무대)라고 마르코 복음은 밝혀놓고 있음.
다만 새로운 빛을 보고 느끼는 방식이 이 복음에서는 두 가지 코스로 나타나는데, 보통 여타 제자들의 코스는 예수님이 죽으시고 부활하심까지를 동반하여 경험하고, 이 체험들을 분별-식별하는 과정을 모두 거치고 나서 비로소 예수님께서 새로운 세상의 눈부신 빛이심을 깨닫고 받아들일 수 있었는데 반해서(보다 이성적인 코스), 베드로-야고보-요한 같은 어느 정도 더 준비된 세 제자들은, 이 코스도 물론 함께 동반하면서 깨달음의 체험이 더욱 깊어져 가지만, 이에 더해서 성스러운 변모라는 먼저 준비된 장을 통해서, 다른 제자들보다 먼저 보고 깨달을 수 있었다고 느껴짐(先체험). 이 코스는, 동반-나눔-식별(분별)의 과정이라는 개인적 성격이 강한데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깨달음의 방식과는 조금 달라서, (이전 계약-무대의 예언자-증인들과) 제자들 3인이 함께-공동으로 동반하면서 한 마음으로부터 큰 빛을 직접 '동조-공명'한다고 할 수 있는 깨달음의 방식으로 접하여 받아들임으로써(보다 직관적인 코스), 새로 창조되는 새 세상의 눈부신 큰 빛이심을 보고 느끼게 되는 것으로 생각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