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월 26일 복음 사순제1주일

2012. 2. 23. 오후 11:39:35

글자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15

   그때에 12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다. 13 예수님께서는 광야에서 사십 일 동안 사탄에게 유혹을 받으셨다. 또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천사들이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
     14 요한이 잡힌 뒤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 가시어, 하느님의 복음을 선포하시며 15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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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2. 25. 프라도의 집, 참제자모임, 나눔참여 4인>
-예수님도 유혹할 정도의 사탄이면, 인간이야 유혹을 피하기 어려울 듯. 다만 위로는 천사의 도움. 하느님나라를 차지하려면 회개가 필요...

-1년에 한번씩 9박10일 피정을 해 보면, 2-3일 동안은 자신이 정신없이 살았음을 알게 되면서... 피정 안에서도 유혹이 더 심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그래서 내 안이 엄청 시끄럽다는 사실도 알게 됨. 결국 이를 극복해 가면서, 점차 외적 침묵으로, 그리고 내적 침묵으로 가면서, 하느님을 만나게 되는 것이 영적 여정이니... 주님도 우리의 연약한 처지를 알고 계셔서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라는 기도를 가르쳐 주신듯. 대체로 이 기도를 바치면 편안해지고 힘을 받게 됨.

-20대 때 자신의 마음이 도저히 스스로 제어가 안되는 상황에서, 30대에 세례를 받은 후 비로소 이를 제어할 수 있었는데...그리고 나서 이전 상태를 돌이켜 보니, 그 자체가 바로 유혹... 혼자서는 내 몸이라도 제어가 잘 안되니, 십자고상 등으로 말씀을 들으려는 훈련을 하고 나서 비로소 편해진 기억들이 아직도 강하게 남아 있음...

-마르코 복음의 말씀은 광야에서 유혹받으신 예수님을 전하고 있는데, 마테오나 루카 복음서가 유혹의 성격에 대해서 집중하여 전하고 있는 것과 달리, 주님의 광야 체험과 곧 이은 복음 선포라는 전말을 간략하게 전하고 있음. 이는 마르코 복음이 광야 체험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는 유대인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이라고 생각됨.
유대인들이 기억하고 보존하고 있는 광야 체험의 중심 인물은 먼저 아브라함의 유랑 체험, 그리고 모세와 유대인들의 40년 광야 유랑 체험, 중간에 야곱, 요셉, 엘리아들의 광야 체험들이 있고, 신약은 여기에 더하여, 세례자요한과 예수님의 광야 체험이 덧붙여져서 최종 완성이 '하느님나라'의 선포라고 전달하고 있다고 생각됨. 마르코복음을 읽음으로 해서, 우리는 4순절 시작을 바로 이 광야 체험들을 기억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임.
광야 체험은 먼저 홀로 있음(외로움)의 체험, 그리고 죽을 수도 있을 정도로 메마르고 위험함 체험들로 나타남. 하지만 아브라함과 모세의 체험들을 보면, 외로움과 죽도록 메마르고 위험함 외에 또 다른 중요한 광야 체험들이 있는데, 그것은 '하늘의 별이 쏟아지는 것처럼 많은' 또는 '신발을 벗어야 할 정도의 신성한' '천사들의 시중'등으로 표현되는 '경외로움'의 체험들임을 알게 됨. 바로 이 '경외로움'의 체험들 때문에 우리는 광야 체험이 곧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나타날 수 있음을 받아들이게 되는 것일 것.
광야 체험을 기억하는 4순절에, 교회는 '단식-기도-자선'을 특별하게 강조해 왔는데, 이를 광야 체험과 연결시켜 생각해 보면, 광야는 사실 먹을 것이 거의 없으니, 단식-절식의 체험이 없으면 살아남기 어렵고, 짐승이나 보이고 사람이란 보이지 않아 홀로 있으니 짐승들과 가능한한 조화롭게 우호적으로 지내면서 동시에 영적으로 함께 하시는 분을 찾지 못하면 아마도 오래 살아남기 어려울 것임. 곧 단식과 기도는 광야 체험에서 살아남기 위한 필수적인 덕목임. 곧, 외로움-메마름-위험함의 체험을 단식과 기도로 넘어서면서, '경외로움'의 성령 체험을 함께 하게 되면 광야의 체험이 열매를 맺게 되니, 다시 이웃-형제들을 만나게 되면 당연히 이를 베풀어 함께 나누는 덕목, 곧 자연스럽게 자선 행위를 하게 될 것임. 이렇게 생각해 보면, 광야 체험을 끝내신 성자 예수님께서 베풀어 나누시는 자선 행위가 바로 하느님나라가 도래했다는 복음 선포임을 이해할 수 있게 됨.
사순절에 나의 광야 체험, 곧 오늘날 입장에 제대로 맞는 단식 행위와 기도 행위를 거쳐서, 그 결과물로 하게 될 나의 자선 행위는 과연 무엇일지... 그 실체나 있을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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