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월 12일 복음 연중제6주일

2012. 2. 10. 오후 5:52:09

글자

  복음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40-45

   그때에 40 어떤 나병 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도움을 청하였다. 그가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하였다. “스승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41 예수님께서 가엾은 마음이 드셔서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말씀하셨다.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42 그러자 바로 나병이 가시고 그가 깨끗하게 되었다.
   43 예수님께서는 그를 곧 돌려보내시며 단단히 이르셨다. 44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구에게든 아무 말도 하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다만 사제에게 가서 네 몸을 보이고, 네가 깨끗해진 것과 관련하여 모세가 명령한 예물을 바쳐, 그들에게 증거가 되게 하여라.”
   45 그러나 그는 떠나가서 이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퍼뜨리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예수님께서는 더 이상 드러나게 고을로 들어가지 못하시고, 바깥 외딴 곳에 머무르셨다. 그래도 사람들은 사방에서 그분께 모여들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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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2. 11. 프라도의 집, 참제자모임, 나눔참여 5명>

-어제 서울대교구 성품성사와 연결하여 묵상하니, 나병혼자에게 손을 대시던 예수님의 끝없는 자비와 큰 은혜가 사제의 탄생과 함께 오버랩됨. 내 마음 속에도 있는 나병을 예수님만 바라보면서 고쳐주시도록 간청해야겠다고 생각함.

-이 복음을 읽으면... 어떤 분을 통해서 예수님을 모실 수 있도록 주님의 큰 은혜를 받고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야 하는데, 그렇게 조심하지 않아서, 나는 안에 머물러서 좋았지만, 정작 주인공이셔야 할 그 분을 밖으로 내몰았던 기억이 나서 언제나 마음이 아주 힘듬. 침묵하라는 말씀은... 결국 더 단단히 하라는 말씀으로 들었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던 자신을, 지금에 와서 얻게 된 평온함과 함께, 되돌아 보는 시간이었음.

-나병환자처럼 당신만을 원해야 하는데, 실제로는 내가 원하는 것이 너무 많은 것 같다고 묵상함. 다 원하고 다 잃고 싶지 않아서, 엄마 품처럼 평온하게 머물지를 못하고, 두려움 속에서 그냥 붙잡고 있는 듯.
 
-나병을 고치심은, 의지와 말씀만으로도 될텐데, 손을 대서 만지시기까지 하셨기 때문에, 세속의 율법에 따라 정화 규범을 거쳐 공동체 안으로 돌아갈 수 있었던 나병환자와는 달리, 고쳐진 나환자의 말퍼뜨리기로 해서, 예수님 자신은 손을 대서는 안되는 불가촉(不可觸)의 천형의 병에 손을 댄 세속적 율법 규범에 저촉되셔서 부정(不淨)타시게 됨으로써... 결국 마을공동체 밖에 머무실 수밖에 없게 되심.
  그러나 나병환자를 만지신 이 사태로 해서... 그 나병환자는 물론 그 사실을 본 사람들, 그리고 들어서 알고나서도, 예수님과 동행하려는 제자 및 모든 사람들은, 결국 예수님과 함께, 이 불가촉의 율법, 곧 당시의 세상 규범을 넘어서 버릴 수 있게 됨.
  이로써 '이 세상의 한계를 반영하는 정화'에 해당하는 율법의 정화가 파기되고, 의로운(깨끗한) 사람에게는 더러움이란 없다는 하느님의 정화에 해당하는 말씀=기쁜 소식=신약이 이 세상에 뿌리내리기 시작함.
  아직도 세상의 한계성으로 인한 이런저런 불가촉 규범, 부정탐의 규범이 여전히 크고 작은 이곳 저곳, 길고 짧은 이때 저때에 여전히 살아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불가촉 규범이든 어떤 부정탐의 규범이든 결국은 하느님의 규범에 의하면 의롭지 않으니, 고쳐지거나 극복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이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점차 깊숙하게 뿌리내려 가고 있다 생각함.

-예수님에 대한 나병환자의 신뢰-자기비움은 예수님의 성부에 대한 신뢰와 같은 신뢰-자기비움이라고 생각함. 어제 서품식과 연결시켜 묵상하니, 헨리나웬의 '사제는 상처입는 치유자' 라는 말과 같이, 구원을 위해서  스스로 부정타는 속으로 뛰어들어야, 비로소 치유자로서 기능할 수 있다는 사제의 직무가 더욱 크게 다가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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