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34-40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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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10. 22. 프라도의 집, 참제자 모임, 나눔 참여 7인>
-내 이웃을 사랑하라는 것만으로도 버거운데...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하시니, 자신이 없어져서, 근심 속에서 헤메다 시간 보냄. 다시 묵상해 보니, 나 자신은 이런저런 한계가 많아 제대로 못하지만, 내 안에 하느님이 계시고 내 이웃 안에도 하느님이 계시니... 하느님께서 잘 마무리해 주실 것을 믿음. 내 힘을 믿기보다는 그저 내려놓고, 하느님의 힘으로 믿고 맡기고 받아들이는 습관이 되도록 노력함.
-이런 저런 봉사 활동을 하다 보면, 봉사자들이 서로 자기 마음과 같이 해주기를 바라고, 그러다 보니 서로의 편견과 한계들로 해서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았다고 생각됨. 나 자신을 낮추고 상대방의 입장을 생각하고, 내 힘만으로 하기보다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면서 노력해야 할 것임을 묵상함.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다 알고 있는 첫째 계명인데, 이를 '마음과 정신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하심을 묵상 해 보니, 목숨은 분명 나의 것이라기보다 하느님의 것이니, 그래서 이를 다시 하느님께 돌려드리는 순교자들의 마음이 바로 그러함을... 마음으로 공명할 수 있었음. 실은, '마음과 정신'도 '목숨'과 마찬가지로 역시 하느님으로부터 온 것이니, 목숨을 다하라 하심은 '순교자'분들로 이해되었으니, 앞으로 마음과 정신까지 잘 이해되었으면 하고 바람.
-몸 상태로 해서, 학교 일과 집안 일 모두가 계속 힘에 겹고, 특히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아서 사실상 말문을 막아버리신 고통의 상태로 해서, 어쩔 수 없이 묵상과 독서 중심으로 살다 보니, 도리어 아름답고 충만한 시간을 즐기게 됨을 느끼게 됨. 게다가 말문이 막히는 고통을 통해서... 이전의 날카로왔던 자신의 언사들이 상당히 절제가 되는 것도 같고, 그러다 보니 젊을 때 아버님이 극력 당부하셨던 '자중자애'가 새삼 떠오르면서 다시금 깨닫게 되기도 함.
-2차 수술 후, 반듯하게 누운 채로 아무 것도 못하면서 극심한 고통이 오는 상태를 겪고 나니, 이후부터는 다른 사람들의 고통이 직접 몸으로 공명되어, 이제는 고통을 겪는 분들을 보면, 그 고통이 남의 일이 아님을 몸으로 느끼게 되어 버림. 고통으로, 알맹이 없는 형식적 말들보다, 직접 몸으로까지 공명되는 마음을 가져야 함을 알게 해 주심.
-구약시대 율법으로 사는 바리사이들에게, 가장 큰 계명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하신 말씀인데...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바리사이들이, 과연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었을까 그렇지 못했을까를 생각해봄.
신약시대에 사는 주님과 우리 교우들에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란... 바리사이들의 사랑과는 달리, 그리스도이신 주님께서 보여주신 성부-성자, 성자-제자들의 '서로 사랑'을 본받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묵상됨. 달리 생각하면, 주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바리사이들의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란 '자신이 구원받기 위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되지만, 주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우리 교우들은 '구원을 서로 나누기 위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되니... 특히 내가 소속된 공동체 안에서... 함께 구원을 나누지 못하게끔 막혀버린 이웃들이 눈에 보여질 때, 내가 과연 그 이웃들과 함께 가면서 구원을 나누려고 했는지를 반성해 봄.
-주님의 사랑은, 베드로나 요한이나 라자로와 마리아들에게서 보여지듯이, 그 분의 삶 속에서 구체성을 띠시니...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이른바 이익사회보다, 가족과 같은 구체성을 띤 이른바 공동사회 지향으로 해서, 보다 구체적인 사랑 속에서 그 실행이 더욱 넓어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됨. 이런 속에서... 비로소 주님께서 꿈꾸시는 사랑... 인격적인 나와 너의 확인... 나의 '마음, 목숨, 정신을' 거는... 곧 나의 모든 것의 중심을 걸고, 나의 모든 것을 통합하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 구현되어 간다고... 복음은 말씀하고 계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