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월 19일 복음 연중제7주일

2012. 2. 17. 오후 4:10:01

글자

  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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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12

   1 며칠 뒤에 예수님께서는 다시 카파르나움으로 들어가셨다. 그분께서 집에 계시다는 소문이 퍼지자, 2 문 앞까지 빈자리가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복음 말씀을 전하셨다.
   3 그때에 사람들이 어떤 중풍 병자를 그분께 데리고 왔다. 그 병자는 네 사람이 들것에 들고 있었는데, 4 군중 때문에 그분께 가까이 데려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분께서 계신 자리의 지붕을 벗기고 구멍을 내어, 중풍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려보냈다.  5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얘야,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6 율법 학자 몇 사람이 거기에 앉아 있다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였다. 7 ‘이자가 어떻게 저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하느님을 모독하는군. 하느님 한 분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단 말인가?’
   8 예수님께서는 곧바로 그들이 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는 것을 당신 영으로 아시고 말씀하셨다. “너희는 어찌하여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하느냐? 9 중풍 병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하는 것과 ‘일어나 네 들것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고 말하는 것 가운데에서 어느 쪽이 더 쉬우냐? 10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가지고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 주겠다.” 그러고 나서 중풍 병자에게 말씀하셨다. 11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일어나 들것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거라.”
   12 그러자 그는 일어나 곧바로 들것을 가지고, 모든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밖으로 걸어 나갔다. 이에 모든 사람이 크게 놀라 하느님을 찬양하며 말하였다. “이런 일은 일찍이 본 적이 없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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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02. 08. 참제자모임, 프라도의집, 나눔참여 6인>

-격리되는 중픙병자와 그 도우미 4인이 위급한 상황에서 지붕으로 올라가는 대단한 믿음의 상황을 묵상하면서... 나도 가까운 이웃-주변인들에게그 4인 중의 한 사람 몫을 할 수 있는 사람, 그런 믿음을 주시도록 기도.

-이웃에 바닥까지 떨어져서 죽음밖에 생각하지 않는 바람에 마음과 말문이 모두 막혀버린 중풍병자 같은 분을 보면서, 의사표시라도 하게끔 주변에서 조금씩 흔들어 도와주는 방식으로 접근했더니, 어느날 '너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해 주어라' 하는 말씀을 스스로 들으시고서, 마음-말문이 드디어 열리게 된 그러한 은총의 체험을 함께 나누고 싶음. 

-4인의 도우미들이 지붕에 구멍을 뚫고 가구 같은 장애물들을 치우면서 다가가는 상황은 뒤처리에 많은 책임이 따르는데도 실행했으니 놀라운 일임. 곧 혼자서는 결정하기도 실행하기도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됨.특히 어제 산위의마을-예수살이공동체를 방문해 보니 복음말씀대로의 공동체 생활에 푹젖어들 계셨음을 알게 되면서, 4사람이 함께하는 공동협조들을 주님께서 더 바라시고 더 높게 보시는 것 같다는 묵상을 하게 되었음. 구멍을 내어서라도 치유받고, 이해하고 하는 그런 은총-역할을 할 수 있는 '또 다른 나'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복음이 새삼스럽게 다시 다가왔음. 그들의 믿음, 곧 공동체 안에서의 믿음이 개인 스스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난관들을 서로서로의 은총으로 돌파할 수 있게 해준다는...

-이번 복음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니, 중풍병자와 4인의 협조자들은 오히려 큰 무대에서 극적인 연기를 하는 배우들 같은 역할을 했다고 생각되고, 이 말씀으로 해서 실제로 큰 은총을 받은 수혜자들, 곧 이 복음의 주역들은 바로 '군중(의아심을 가진 소수 율법학자들을 제외한, 말씀을 알고 싶어서 모여든 대부분의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음.
왜냐하면, 모두 말씀-복음에 접하러 모여들었는데도, 실제로 시급하게 말씀-복음에 접해야 하는 병자를 위시한 다른 사람들에게는 '길을 막아 열어주지 않는 (육신적 욕구-평판-권세 같은 세속적 유혹-의아심들로 혼란 상태인) 이른바 똑같은 (말씀과 관계없이 친교와 나눔이 없는) 병든 군중'이었는데, 이런 군중들이 주시하는 장(장터-무대 같은 장소)에서 행해진 중풍병자의 치유를 통한 말씀을... 공동으로 접하고 나서는, 말씀에 대한 찬양으로 해서 스스로 '길을 터서 열어주는 똑같은 (말씀에 바탕한 친교와 나눔이 있는) 똑같은 건강한 군중'으로 변화되었기 때문...
여기서 한 단계 더 묵상하면 : 죄에 대한 하느님의 용서가 한 개인 차원에 내릴 때는(사적 치유->私義), 영육 간에 '전인적 의로움'이 주어지고 '의인'이 된다고 표현하는데, 죄에 대한 하느님의 용서가 군중(공동체) 차원에 내릴 때는(공적 치유->公義), 영육 간에 '의로운 군중(공동체)'이라는 개념을 쓰기는 지금-이곳에서는 잘 맞지를 않아서... 대신에 어떤 용어를 쓸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오랜 의문이었는데... 오늘 이 복음 말씀 묵상으로 해서, 바로 영육 간에 유혹-의아심들을 모두 함께 떨쳐버린 '건강한 군중(건강한 사회-공동체)'으로 지칭할 수 있겠다는 묵상을 하게 되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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