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일지 91

2006. 5. 30. 오전 10:24:37

글자
 요한 복음 17장 1-11ㄱ절
“저는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저에게 주신 이들을 위하여 빕니다. 이들은 아버지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유치원생의 그림     노성호 신부

유치원에서 원아들에게 그림 한 편씩 그려오라는 숙제를 내 줬습니다. 집으로
돌아간 아이들, 그림을 그리고 다음날 다시 유치원에 모여 각자 자신의 그림을
설명하는 시간이 되었는데, 좀 이상한 아이가 있었습니다. 유독 그 아이만은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여러 장의 스케치북을 들고 나온 것이었습니다. 의아하게
생각한 선생님이 이유를 묻자 그 아이는 자신의 그림을 한 장 한 장 교실 바닥에
펴 놓고서 한 그림을 완성시킨 다음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고래를
그렸습니다. 그런데 고래는 엄청나게 큰 물고기이기 때문에 스케치북 한 장에
그릴 수 없어서 이렇게 여러 장에 나눠서 그렸습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저는
고래를 구성하는 스케치북 한 장 한 장이 우리 각자일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아이는 똑같은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렸을 것이고, 거기에 고래의 각 부분을 나눠
그리면서 나중에 한 마리의 고래를 완성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각 스케치북에
표현된 색깔이나 모양, 배경 등이 모두 다르게 표현되었겠지요. 우리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모두 하느님의 사랑을 똑같이 받고 있는 사람들이지만,
각자 성격이나 취향, 생김새 등 모두 다르지요. 허나 그 모든 스케치북이 한 장도
빠짐없이 그 자리를 채워야만 고래를 완성할 수 있었듯이 우리 모두도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바 책임과 의무를 다하면서 지낼 수 있을 때 하느님의 한 가족을
완성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그림들이 그 아이의 것이었듯이
우리 모두도 하느님의 소중한 작품이고, 아버지의 사람들입니다.

 


2.축구 이야기

 

[김화성 기자의 맛있는 월드컵]승부 가르는 ‘한 끗’ 차이


브라질 축구는 시 같다. 음악 같다. 마치 소풍이라도 가듯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툭툭 공을 찬다. 천진난만하다. 영락없는 골목길 개구쟁이 어린아이들이다.

독일 축구는 산문이다. 서사적이다. 잘 짜인 카펫 같다. 독일 전차처럼 완강하다. 베를린 장벽처럼 튼튼하다. 하지만 왠지 답답하다. 지루하다. 선수들 표정도 엄숙하다. 차라리 잉글랜드 축구가 시원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잠시라도 눈을 뗄 수 없다. 자신도 모르게 TV에 코를 박게 만든다. 둥∼둥∼둥∼. 사나이의 피를 솟구치게 하는 북소리가 끊임없이 들린다.

브라질 선수들에게 축구는 하나의 놀이다. 그저 본능대로 재밌게 한판 놀면 된다. 쯧쯧, 도대체 뭐가 그리 복잡한가? 뭐가 그리 말이 많은가?

2006년 독일 월드컵 브라질대표팀 선수인 카카(AC 밀란)는 “브라질 사람들에게 축구란, 말하자면 골을 위한 댄스”라고 말한다. 브라질대표팀 주장이었던 둥가는 “일은 공이 하도록 내버려 두라”고 천연덕스럽게 말한다. 선수들은 그냥 그라운드에서 한바탕 삼바를 추면서 신나게 놀고 있으면 공이 다 알아서 해준다는 것이다. 둥가가 누구인가. 그는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브라질 ‘짠물 수비’의 핵이었다. 그로 인해 현대 축구의 수비형 미드필더란 포지션이 비로소 완성됐다고 볼 수 있다. 수비형 미드필더는 몸싸움이 가장 심한 자리다. 그런데도 둥가는 ‘한판 신나게 놀았다니…’. 마침 둥가라는 애칭은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 중 한 사람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악동 둥가, 개구쟁이 둥가, ㅋㅋ 하나도 밉지 않다.

 

천하의 브라질도 20여 년간 맥을 못 춘 적이 있다. 1974년 서독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네덜란드의 ‘토털 사커’에 힘 한번 써 보지 못하고 무너졌다(0-2 패). 그것은 축구 혁명이었다. 브라질의 화려한 개인기는 요한 크라위프가 이끄는 ‘전원 수비, 전원 공격’ 앞에서 무력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브라질은 24년 만에 우승했지만 그것은 철저히 수비 위주의 축구를 펼친 덕이었다. 8, 9명이 언제나 수비 라인에서 북적거렸다. 이탈리아와의 결승전도 0-0 무승부 끝에 승부차기로 이긴 ‘껄쩍지근한’ 승리였다. 브라질 축구는 사라졌다. 우승은 했지만 브라질 팬들은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당시 파레이라(현 감독) 감독은 귀국 후 즉각 목이 날아갔다.

 

현대 축구는 갈수록 서로를 닮아 간다. 브라질은 유럽을 닮아 가고, 유럽은 브라질을 벤치마킹한다. 이른바 ‘축구의 세계화’다. 이제 ‘압박’과 ‘속도’는 어느 나라에나 기본이다. 토털 사커도 일반화됐다. 그것을 어떻게 하느냐의 방법만 약간씩 다를 뿐이다.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보이는 푸른 하늘처럼, 조금씩 그 나라의 축구 색깔이 보일 뿐이다. 이젠 펠레나 마라도나 같은 천재들은 나오지 않는다. 아무리 뛰어난 축구 천재라도 건장한 사나이 20명이 몰려 있는 20m 폭의 공간은 운신의 폭이 너무 좁다.

하지만 그 ‘약간의 차이’가 승부를 결정한다. 브라질은 역시 ‘개인기’이고 독일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조직력’이다. 잉글랜드는 바람 같은 속도다. 그들은 이 ‘바늘 끝 같은 매운맛’으로 상대를 이긴다.

 

한국 축구는 풋풋하다. 싱싱하다. 마지막 한 방울의 땀까지 쏟아 낸다. 바로 그 열정으로 ‘붉은 꽃’을 다발로 피워 낸다. 우지끈 딱. 5000년 동안 뭉치고 다졌다가 한순간 터져 나오는 폭발력. 우리의 젊은 그대들 가슴은 이미 숯불처럼 빨갛게 달아오르고 있다. (5/30동아일보)

 

 

다시보는 을용타

 

 

을용타’가 다시 한번 누리꾼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을용타’는 이을용의 이름에 때릴 ‘타(打)’자를 붙여 만든 합성어. 2003년 12월 동아시아축구선수권대회 한국-중국전 도중 이을용이 손으로 중국 선수의 뒤통수를 가볍게 치자 중국 선수가 할리우드액션을 취하며 넘어진 데서 비롯됐다. 이을용이 넘어진 중국 선수 앞에서 근엄한 표정으로 서 있는 사진이 보도되자 누리꾼들이 온갖 장면으로 합성했다. 이후 ‘을용타’는 이 장면을 이용한 합성사진시리즈를 일컫게 됐다.


당시 중국의 역사왜곡 사건으로 반중감정이 일던 때라 이을용이 넘어진 중국 선수에게 역사 강의를 하는 장면으로도 만들어졌다. 이후 국내 정치인은 물론,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등 많은 이들이 이 시리즈에 등장하며 풍자대상이 됐다. 을용타는 리샤오룽 버전, 앙드레 김 버전, 취화선(최민식 주연 영화) 버전 등으로 다양하게 확대되며 합성사진의 다양한 뉘앙스를 만들어내는 놀이로 번져 나갔다. ‘을용타’는 기본적으로 이을용의 그라운드에서의 전투적이고 당당한 이미지에 기반을 둔다. 이를 통해 역사를 왜곡하는 중국에 대한 응징, 불만스러운 정치인에 대한 비난 등을 표현하며 대리만족을 느낀 것이다. (동아일보5/30기사)

 

 

 

축구 알아야 보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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