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분은 인간의 죽음을 당신의 죽음으로 쳐이기시고 부활하심으로써 새 생명을 마련하셨기 때문에 주님의 수난과 부활의 빠스카 성 3일은 교회 전례주년의 절정이고, 성 3일의 정점은 부활주일이다.
성 3일은 성주간의 후반부 3일인데 주의 만찬으로 시작되고 부활 전야제로 절정을 이루며 부활주일 저녁기도로 끝난다.
성 목요일
이 날은 우리 주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사랑의 계명’ (새 계명 요한 13,31~) 을 주시면서 유언을 남기셨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사를 하시면서 성체성사를 제정하심으로써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셨다. 이 성체성사와 함께 사제직을 설정하심으로써 당신의 구원성업을 세세에 전하여 모든 이가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을 받게 하셨고, 올리브산에서 피땀을 흘리시면서 하느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 외로운 투쟁을 하셨으며 (루가 22,39) , 마침내 사랑하시던 제자 유다 이스가리옷의 배반으로 이교도들의 손에 붙잡히셨던 날이다.
성 목요일 전례
이날은 원래 주교를 중심으로 미사 한 대만 봉헌하고 이 미사에서 축성한 성체와 성유를 각 본당으로 모셔가도록 분배했지만 지금은 두 가지 즉 성유 축성 미사와 주의 만찬 미사를 거행한다.
성유 축성 미사 : 예수님이 당신 사제직을 사도들과 그 후계자들에게 주셨음을 기념하는 미사이다.
이날 아침에 주교좌성당에서 주교와 사제단이 함께 미사를 봉헌하며 성유를 축성한다. 이로써 주교와 사제들의 일치가 표현되고, 사제들은 약속갱신식을 거행함으로써 사랑과 봉사를 다짐하며, 축성된 성유를 나누어 감으로써 성사집행에 있어서 교구 전체의 연대성이 드러나게 된다.
이 성유는 사제들이 성세, 견진, 신품, 병자성사를 집행할 때 사용한다.
이 미사중에 신자들은 교구의 일치와 사제들의 성화와 성소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주의 만찬 미사 : 예수님이 수난하시기 전날 제자들과 나누신 마지막 저녁식사로써 당신을 만인에게 성체성사로서 주심을 기념하는 미사이다. 새 계약이 맺어지고 “서로 사랑하라”(요한 13,34)는 새 계명이 선포되는 미사이다.
대영광송을 장엄하게 노래하면서 풍금과 종을 울린 후 부활성야 미사에서 대영광송을 할 때까지 풍금과 종을 울리지 않고 영광송도 하지 않는다.
세족례 (洗足禮) 가 강론 후에 있다. 사제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신 것을 본받아 선발된 신자들의 발을 씻는다. 이것은 예수님이 사도들의 발을 씻으면서 남기신 사랑의 계명을 상기시켜 서로 봉사하고 이웃사랑을 실천하라는 예수님의 뜻을 가르치는 예식이다.
사랑의 헌금을 할 수 있다. 성세, 신품, 성체성사를 세우시면서 사랑의 계명을 주시는 주님의 명에 응답하는 행위로서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주님의 사랑을 전한다.
영성체 후에 다음 날 (성 금요일)을 위한 성체를 본 감실에 모시지 않고 비워둔 채 현양제대에 모시고 본 제대를 벗긴다. 이것은 예수께서 3일 동안 땅에 묻혀계셨음을 드러낸다. 주님의 수난과 죽으심을 슬퍼하고 주님을 죽게 한 우리 죄를 미워하면서 잃어버린 주님을 다시 찾아 만나는 것을 다짐하도록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영성체 후 기도를 마친 다음 사제는 십자가를 앞세우고 현양제대로 성체를 모셔간다. 이때 신자들은 죽음의 길로 가시는 예수님과 함께 가겠다는 마음으로 이 전례에 참여할 것이다. 사제가 성체를 현양제대에 모시고 분향한 후부터 성 금요일 수난예절까지 신자들을 성체조배를 한다. 이것은 올리브산에서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시기까지 기도와 번민으로 고통당하신 예수님과 함께 하기 위함이다.
현양제대로 성체가 옮겨질 때부터 성 금요일 십자가 경배예절에서 십자가를 벗길 때가지 십자가는 가리워둔다.
성체조배 양식
자유로이 할 수 있으나 공동으로 ‘한 시간의 성체조배’에 도움을 주고자 한다. 다음 항 어느 것을 생략, 첨가할 수 있다.
성가 : 116번 ‘주 예수 바라보라’ [혹은 수난에 관한 성가],
루가 22, 1~34 낭독 [침묵 중에 잠시 묵상].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시고 사랑의 성사를 통하여 당신을 나누어 주시는데 사람들 특히 제자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 넘길 음모를 꾸미고 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희생제사를 준비하고 계시는데 제자들은 제일 높은 자리를 탐하고 있으며 첫 닭이 울기 전에 세 번씩이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정할 베드로는 ‘저는 주님과 함께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주님을 모른다고 하지는 않겠습니다.’하고 장담만 한다.
예수께서 미사중에 우리를 부르시고 십자가상의 희생을 다시 드리며 우리를 성화의 길로 이끄실 때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얼마나 이기적으로 살아왔는지 살필 것이다.
성가 : 198번 ‘성체 안에 계신 주님’ [혹은 성체에 대한 성가]
요한 13, 1~35 낭독 [침묵 중에 잠시 묵상]
예수님은 이 세상을 떠나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시며 이웃사랑의 본보기로 발까지 씻겨 주시고 ‘새 계명’을 주셨는데 제자들은 예수님의 심정을 조금도 헤아리지 못하고 유다는 능청을 떨고 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주신 성세성사의 은총을 우리는 어떻게 길렀으며, 형제의 불행을 못 본체 하면서도 미사에 참여하고 성체를 모심으로써 예수님을 불편하게 해드리지는 않았는가? 사랑의 계명을 잊고서도 예수님의 제자라 자부하지는 않았는가 자신을 살펴볼 것이다.
성가 : 202번 ‘구세주의 성심이여’ [혹은 성심께 대한 성가]
마태 26, 36~46 [침묵 중에 잠시 묵상]
예수님은 3차에 걸쳐 “지금 내 마음이 괴로워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나와 같이 깨어 있어라. 나와 함께 단 한 시간을 깨어 있을 수 없단 말이냐” 하시며 함께 깨어 기도하기를 원하신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한다면 어찌 그 요구를 거절할 수 있으며, 이렇게도 어렵게 구원해 주신 우리가 함부로 처신할 수 있겠는가? 주의 고통과 죽음에 함께 하고 열렬한 사랑을 드리자.
예수성심 호칭기도
성가 : 122번 ‘구원의 십자가’[혹은 수난에 대한 성가]
<우리의 생활>
우리 생활의 중심인 성체 성사를 세우신 본날, 미사에 참여하고 영성체함은 물론, 성체조배를 함으로써 주님의 사랑에 합치하고 이웃사랑을 다짐할 것이다. 연이어 성체조배할 다음 신자들이 오기 전에 성체 앞을 떠나지 않도록 주의할 것이다.
성 금요일
이 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의 길’을 따라 죽음의 산 골고타로 오르셨고, 하느님과 인류 사이에 새로운 관계를 위하여 십자가상에서 희생제물로서 죽으시고, 우리의 죽음을 물리치기 위해 땅에 묻히신 날이다.
성 금요일 전례
교회가 미사를 드리지 않는 유일한 날이다. 미사뿐만 아니라 다른 성사도 집행하지 않는데, 이것은 성사가 그리스도의 행위이기 떄문에 무덤에 묻히신 그리스도를 깊이 묵상하기 위함이다.
수난 예식 : 예수님이 운명하신 오후 3시경에 행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사목상의 이유로 더 늦은 시간에도 거행한다. 사제는 홍색 제의를 입으며 제단에는 십자가도 촛대도 제단보도 없다.
말씀의 전례 : 말씀의 전례가 엄숙하게 전개되는데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깊이 묵상하게 하며 인간의 죽음은 죄의 결과임을 깨닫게 한다. 사제는 입장 후 즉시 제단 앞에 엎드려 주의 수난을 묵상하고 말씀의 전례를 시작하는 특별한 예식을 거행한다.
장엄기도 : 대신자들의 기도라고도 하는데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께 드리는 예수님과 그의 몸인 교회의 기도이다.
십자가 경배예식 : 비탄과 경건함 속에서 이루어진다. “보라, 십자나무, 여기 세상 구원이 달렸네, 모두 와서 경배하세” 이 십자가는 구원과 생명의 나무이며 계속 세상을 새롭게 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표징이다. “내 백성아,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냐? 대답해다오” 하는 예수님의 물음에 응답한다.
영성체를 위하여 본 제대로 성체가 옯겨지고 남은 성체는 별실에 모셔둔다.
<우리의 생활>
우리의 생활을 깊이 반성하면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가도록 할 것이다.
‘수난예식’에 참여하여 우리 주 그리스도의 운명에 참여함이 신자로서 마땅한 일이다.
예수의 죽음에 동참하기 위하여 단식재와 금육재를 지켜야 한다. 법이 요구하기 때문에 지킨다는 생각보다 자신의 죄악을 속죄하고 게으르고 탐욕스런 자신을 이겨 새 생활을 하겠다는 마음으로 재를 지킬 것이다.
성 토요일
이날은 교회가 주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는 날이다. 제대도 벅셔진 채 그대로 있고 미사도 드리지 아니한다. 그러나 밤이 깊어 오면서 우리는 부활의 희망에 부푼다.
부활 성야
이 밤은 하느님이 인류를 위해 섭리하신 가장 밝고 아름다운 밤이다.
주께서 무덤을 여시고 영원한 승리를 이룩하시기 때문이다. 주께서 죄와 죽음으로부터 참 삶으로 건너가심 (빠스카)를 기억하는 밤이다. 즉 우리가 죄의 속박에서 자유로, 죄의 어두움에서 빛으로, 죄의 죽음에서 영생[부활]으로 건너감을 체험하는 밤이다.
성 토요일 전례
사순시기 마지막을 장식하는 성 토요일 밤의 전례는 모든 전례의 극치를 이룬다. 재생의 사상이 주종을 이루는 이날 전례는 성세로 그리스도와 삼께 죽고 부활하여 그리스도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한다는 것을 깊이 때닫게 한다. 예식을 밤에 거행하는 것은 예수의 부활을 밤새워 기다린 데서 유래한다.
빛의 예식 : 불과 부활초를 축성하고 불의 행렬을 한다. 부활로써 어둠의 권세를 몰아내고 세상에 나타나신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깨어 기다린다는 뜻에서 이 예식을 행한다.
말씀의 전례 : 일곱 개의 독서와 일곱 개의 층계송을 노래하며 구원의 역사를 되새기고 구원의 은총을 기원한 다음 대영광송을 장엄하게 노래로 시작한다. 풍금과 종을 다시 치고 이때부터 영광송을 하게 된다.
성세 예식 : 성세수 축성과 세례식 후 모두가 촛불을 밝혀 들고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며 영세자와 함께 성세서약 갱신을 하며 이미 받은 성세성사를 새로이 한다.
성찬 예식 : 죄악과 죽음이 물러가고 펼쳐지는 새 세상은 그리스도와의 만남으로써 시작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영성체로써 우리와 결합되므로 우리는 죄악과 죽음을 근심하지 않고 살게 된다. 그러므로 새로 밝혀질 그리스도의 빛이 자신 안에서 꺼지지 않도록 할 것이다.
이날 제의는 백색이다.
<우리의 생활>
* 사순시기 마지막을 장식하는 이 거룩한 밤을 깨어 전례에 참여하고 ‘알렐루야’를 소리 높이 외쳐야 할 것이다.
복음 (루가 12,35)의 권유에 따라 신자들은 촛불을 밝혀들고 주인을 기다리는 사람처럼 마음을 가다듬어야 할 밤이다.
새 영세자들의 기쁨을 함께 나누며,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영성체를 통하여 맞으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활로 부활하여야 할 것이다.
* 우리의 생명을 되찾았음을 경축하는 부활 대축일을 맞아 대자 대녀를 찾아 성세의 은총을 서로 나누어야 하겠다. 대부 대모와 대자 대녀 사이는 신친(神親) 관계이기 때문에 부활 축일을 기하여 서로 찾아 기쁨을 나눔은 참으로 뜻있는 일이라 하겠다.
## 부활 시기 ##
예수부활부터 성신강림까지 50일을 마치 하루의 축일 혹은 하나의 큰 축제같이 용약하며 지낸다.
부활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승리의 날이며 모든 축일 중에 가장 크고 중심이 되는 축일이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로서 인류구원을 위하여 이 세상에 오시어 당신을 온전히 희생제물로 십자가상에서 바치시고 무덤에 묻히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 빠스카의 신비는 인류 구원사업의 절정이다.
그리스도는 이 영광스러운 부활로써 우리 인류를 절망에서 희망에로, 어두움에서 광명에로, 죄악에서 은총에로,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에로 구원하셨기 때문에 이제 우리는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삶의 희망과 기쁨을 간직하게 되었다.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분이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시고 우리를 그분 곁에 앉히시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2고린 4,14 참고)
제의는 백색이다.
과월절과 부활절
이스라엘은 하느님의 섭리로 에집트의 노예생활[죽음의 멍에]에서 해방된다. 이 해방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을 해방시키기 위해 에집트에 내린 열가지 재앙 중 마지막으로 내린 재앙에서 비롯된다. 이스라엘은 어린 양의 피를 자기 집 문설주에 바름으로써 이 재앙을 면하게 되고 에집트를 탈출하게 된다 (출애 12, 1~14 참고)
하느님의 천사는 문설주에 피가 묻어 있는 이스라엘의 집은 지나가고 에집트의 맏이를 모두 죽였다. 그래서 빠스카 (Pascha: 지나가다. 통과하다. 건너뛰다의 뜻)라는 말이 생기고 이스라엘은 이 해방을 기념하기 위해 이날을 과월절이라 하며 어린 양과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먹는다. 에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은 홍해를 마른 발로 건너가고 메마른 광야를 지나가며 바위에서 나오는 물을 먹고 하늘에서 내려온 만나를 먹으며 요르단강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복지(福地)에 들어갔다.
예수님은 빠스카 전야에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먹는 과월절 식사를 하시며 희생되는 빠스카의 어린 양으로 표시된 당신의 몸인 생명의 빵을 제자들에게 주셨다. 즉 “이것은 내 몸이다...이것은 나의 피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내가 흘리는 계약의 피다” (마르 14,22~24)
세례자 요한은 이미 예수님이 “하느님의 어린 양”(요한 1,29.36)이라고 암시한 바 있다. 하느님의 어린 양은 과월절 오후에 십자가상 죽음을 당하신다. 이것은 참된 해방[빠스카] 즉 죄 많은 이 세상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로 건너가기 위해서이다. “과월절을 하루 앞두고 예수께서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이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요한 13,1) 고 사도 요한은 증언한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써 빠스카의 신비가 완성되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실과 성실한 삶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간다면 우리의 삶은 영원한 생명으로 뻗어 갈 것이다.
부활 전례
부활 축일 결정 : 부활 대축일은 유다인들의 빠스카 축제에서 유래하므로 유다인들의 월력으로 니산(Nisan)달 14일에 지냈으나 지금은 춘분이 지난 후 만월(滿月) 다음에 오는 첫 주일에 지낸다.
알렐루야 (Alleluia) : 알렐루야는 히브리말로서 원어 그대로 시편 앞뒤에 많이 나온다. 이는 환호성으로 ‘야훼를 찬미하라’는 뜻이다.
어둠을 헤치고 찬란히 치솟는 태양, 무덤을 열고 부활하시는 그리스도, 이로써 이루어지는 구원의 신비를 대하고 무슨 말로써 그 감동을 표현하겠는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한 기쁨과 감사로 충만된 우리의 마음을 알렐루야의 환성으로 대변한다.
부활초 : 부활초는 부활성야에 축성하며 성신강림까지 제대 옆에 두고 전례를 거행하는 동안 불을 켠다. 그 후에는 성세대에 옯겨져 영세자들의 빛이 된다.
부활초는 에집트에서 탈출하는 이스라엘을 비추며 앞정 서서 인도하던 불기둥 (출애 13,21~22;
14,24참고)을 상징한다. 하느님은 불기둥의 모양으로 당신 백성 이스라엘 가운데서 이스라엘과 함께 광야를 건너 마침내 해방의 기쁨을 그들에게 안겨주셨다.
부활초는 그리스도께서 오늘도 내일도 우리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구원에로 인도하신다는 표지이다. 촛불은 초가 탈 때 사랑의 불로 작열하고 어둠을 몰아내는 빛이 되어 영광스럽게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한 본성과 내적 모습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도 온갖 어두움을 태워버리고 사랑의 불로 타며 그리스도의 영광을 누리리라는 복된 희망을 가져야 한다.
이 부활초에는 구원의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영원성을 상징하기 위하여 희랍문자의 첫 글자인 Α와 끝 글자인 Ω를 새기고 그 해의 숫자를 박아 넣는다. 이로써 온 세기가 주님의 통치하에 있음을 가리키고 다섯 개의 향덩이를 십자형으로 꽂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러운 상처로 세상을 구원하셨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부활 삼종 기도 : ‘부활의 날’인 주일과 부활시기에는 삼종기도를 할 때 서서 한다.
서 있는 자세는 살아 있는 인간의 자세, 기쁨의 자세, 승리자의 자세이기 때문에 부활로 승리한 우리가 충만된 기쁨으로 그리스도를 닮게 되었음을 나타낸다.
‘그리스도는 살아계시고 우리도 그와 함께 산다’는 그리스도교의 기본 신안으로 삼종기도를 바칠 것이다.
부활 8부 축제 :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인류에게 참 희망을 안겨주신 예수, 어두운 이 세상에 참된 빛으로 살아계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기쁨이다. 더구나 성세로 그리스도와 함께 새 생명을 누리게 되었으니 그 기쁨을 감출 길이 없다. 그래서 이 축일을 하루에 끝내지 못하고 부활시기의 첫 8일 동안을 주님의 대축일로 지낸다.
새 영세자들은 부활성야의 성세 때 입었던 흰옷을 8부까지 입었고 기성신자들도 영세자들과 함께 새 옷을 입고 성세 서원 갱신을 하고 성세의 은총을 감사드리며 부활의 의미를 자신들의 생활 속에 되새겨 왔다.
부활 축일이 신앙의 근본 축일이므로 12세기부터 8부로 끝내지 않고 성신강림까지 7주간을 축제기간으로 지내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8부의 전례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의 만남,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대한 신망애 삼덕으로 우리도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함을 나타낸다.
<우리의 생활>
그리스도와 함게 영원한 생명을 살기 시작한 그리스도인은 여느 사람과 다르게 살아야 한다. 기쁨과 생기가 흘러넘치는 삶,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삶이어야 한다. 즉 부활의 기쁨은 죽음이 전제되어야 한다.
우리는 부활의 기쁨이 생활 속에서 용솟음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부활 달걀 : 부활 대축일에 달걀에 그림이나 글씨 혹은 기호를 새겨 선물하는 아름다운 관습이 있다.
옛부터 달걀은 봄 혹은 생명의 상징이다. 달걀은 생명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안에 새로운 생명을 내포하고 있어 마치 겨울 뒤에 숨어 있는 봄과 같은 것이다.
중세에는 사순절 동안 달걀을 먹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데 부활주일에 달걀을 주고 받는 관습으로 바뀌었다.
지금은 주께서 영광스러이 부활하시기 전에 묻히셨던 돌무덤을 상징한다.
사제가 부활 달걀을 강복할 때 “오 주여! 우리는 인자하신 당신께서 이 달걀에 축복하여 주시기를 청하며, 당신의 자녀들을 위하여 이것들이 유익한 음식이 되게 하시고, 그들로 하여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영광 안에 즐거이 참여케 하소서”라고 기도한다.
빠스카 양 : 부활 축제 기간에 빠스카의 희생제물이 되신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어린 양을 먹는 것은 의미 깊은 일이다.
과자나 빵으로 어린 양의 모양을 만들어 승리의 기를 꽂고 그 주위를 꽃, 초, 부활 달걀 등으로 꾸민다. 식사 전 기도 중에 “이 날은 주께서 만드신 날, 알랠루야”라고 하면, 응답으로 “우리는 즐거워하고 축하합니다. 알렐루야” 라고 말한 다음 이 어린 양을 나누어 먹는다.
부활 행렬 : 부활주일 미사 후 선두에 꽃으로 장식된 십자고상이나 부활초를 앞세우고 노래와 기도를 하면서 행렬을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고 그 기쁨을 세상에 드러내고 그리스도의 승리가 곧 우리의 승리임을 경축하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