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때 그 시절, 그리고 지금은….
IMF가 터지기 6,7년전 이미 IMF는 예고 되었습니다. 국가 산업의 기반이 되어야 할 중소기업들이 대기업들의 횡포와 자금난으로 숨을 못쉬고, 업체들은 도산하고 중소기업 사장들의 자살소동이 전염병처럼 번지던 90년대 초반, 나는 그 산업현장 최일선에 서 있었습니다.
3D직종의 기피 현상으로 그 자리를 메꾸기 위해 동남아에서 외국인 근로자들이 물밀듯 들어온 시절도 그 무렵 이었습니다. 기업주들은 살아남기 위해서 그들을 싼 임금으로 고용했고, 초창기에는 외국인 근로자에대한 아무런 법적 근거가 없어 약삭빠른 인간들에 의해서 결국 인신매매와 다름없는 일들이 자행되었고 일부 몰지각한 사업주들에 의해서 그들은 인간 이하의 대우를 받고 심지어는 짐승처럼 생활해야만 하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현장을 지켜봐야 했습니다.
이러한 사회환경속에서 나 역시 그 어려움이 예외는 아니었고 공적인 자리에서 이러한 비 윤리적인 일들을 떠들어 봐야 사회적응을 잘 못하는 꽉 막힌 능력없는 못난 인간으로 치부될 뿐, 불의에 대해 너무 무력한 나 자신조차 원망스러웠습니다.
회사를 정리하고 수년간 갖가지 어려움으로 하느님과 씨름하는 동안 아내의 교통사고는 나의 인생을 꼭지점에다 올려 놓은 듯 했으며 내 주변의 모든것을 활활 타오르는 용광로에 집어넣고 나 자신도 그리고 뛰어들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나에게서 인간의 기본 권리조차 빼았아 갔냐고 반문하곤 하면서 한국을 떠나기로 결심을 하고 카나다로 이민 신청을 한 후 인터뷰를 기다리던 중 그해 말 IMF가 터지면서, 이민 신청직후 먼저 카나다로 보낸 아들의 학비를 감당하기 힘들어(환율이 평소의 3배로 뛰어오름) 미국서 돈을 벌 수 없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으로 잠시 들린것이 이제 시민권을 신청하기까지에 이르렀습니다.
그 사이 영주권을 취득하기 위해서 닭 가공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을때 어떤 한국인에 의해서 닭공장(미국내 3위의 닭 가공업체)의 근로 조건이 노예와 같은 생활이라고 말도 안되는 폭로(?)로 한국내의 언론에서 크게 과장 보도된 적이 있습니다. 그로 인하여 한국인들에게는 가장 단시간에 영주권을 취득할 수 있는 그 길도 이젠 쉽지 않은가 봅니다.
현장에서 닭을 가공 포장하는 일이니 육체적으로 편한일이 아닌건 사실이지만 그들은 완전한 근로 기준법하에서 급여를 받고, 휴식시간을 갖고,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며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한국에서의 외국인 근로자를 보았고, 나 자신이 미국에서 외국인 근로자가 되어 한 동안 직접 일을해 보았고 후에 그들의 감독자의 자격으로도 일을 해 보았습니다.
여기 닭공장의 고용주들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여권을 담보로 빼았아 보관하지 않습니다.
임금을 법적기준 이하로 지급하지 않습니다.
급여는 반드시 정해진 날짜에 지급됩니다.
법적 근로기준시간 동안만 일을하며 초과시간은 그에 합당한 지불을 합니다.
몸이 아프면 치료를 받을 수 있고 보험혜택이 주어집니다.
본인의 의사에따라 언제라도 그만둘 수 있습니다.
무리한 일이 강요되지 않습니다.
즉, 적어도 인간의 기본 권리는 지켜지는 현장이라고 생각됩니다. 기본적인 자유가 주어지는 삶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은, 하느님께 가장 사랑받는 인간은 만인 앞에서 평등합니다. 누구나 남 으로부터 구속받기 싫어하고 자유를 원합니다. 나 자신이 자유스러워 지려면 먼저 내 이웃부터 자유스러워져야 합니다. 우리 주변에서 모든 이들의 인권은 보호되고 있는지요!
국가적인 차원의 인권운동에 앞서 나 자신과 가장 가까운 이웃부터 주님께서 우리에게 가져다 주신 “사랑”이란 선물로서 인종과 성별, 교육수준과 삶의 형편을 초월하여 소외된 자, 무시당하는 자 없는 아름다운 가정 동동체, 신앙 공동체 그리고 지역사회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한편의 인권운동이 아닐런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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