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하루의 십분의 일은 주님을 위해 씁시다

2005. 9. 12. 오전 11:45:17

글자

 

저는 어떤 잡지에서 깜짝 놀랄만한 기사를 보게 되었답니다.
그 기사 내용은 이렇습니다.

“프랑스 남부의 페르피냥 시에 사는 루이 콜레는 24시간 21분 동안 연설을 해, 이 분야에서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그는 초현실파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애호가 모임 회장인데, 달리를 찬미하는 주제를 갖고 꼬박 하루 동안 물과 맥주, 와인으로 목을 적셔가며 쉬지 않고 연설했다.

물론 연설의 마지막은 ‘달리 만세’였다.”

어때요? 정말로 놀랍지 않습니까?
하루 종일 연설을 한다는 것.
저 역시 신부라서 많은 말을 하고 있지만, 이렇게 하루 종일 말만 하라고 하면 “저는 도저히 못합니다.”라고 할 것이 분명합니다. 특히 말을 많이 하면서 지내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오랫동안 말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잘 알고 있지요.

더군다나 이 연설을 듣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아마 거의 듣는 사람이 없었을 것 같습니다. 한두 시간도 아닌 자그마치 하루 종일 앉아서 그 연설을 듣는다는 것, 누가 들을까요?

아무튼 24시간 21분 동안 연설을 했다는 것. 놀라움을 뛰어 넘어서 존경심까지 갖게 됩니다. 그것도 여러 가지의 주제가 아닌, 단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서 꼬박 하루 동안 연설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요.

어떻게 하루 종일 연설을 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살바도르 달리’를 너무나도 좋아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었습니다. 너무나도 좋고 너무나도 사랑하기에, 이렇게 장시간동안 연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긴 사랑하는 사람과는 오랫동안 같이 있어도 시간 가는 줄을 모른다고 하지요.

바로 루이 콜레 역시 이렇게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인해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연설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들은 주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존경하는가요? 그래서 주님 앞에 머무는 그 시간을 얼마나 행복한 시간으로 깨닫고 있나요? 때로는 ‘시간이 이렇게 빨리 갔나?’ 라는 생각을 가질 정도로 주님 앞에서 열심히 기도한 적은 있나요?

우리들은 주님 앞에 십일조를 바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물질적인 십일조를 강조하면서도, 시간의 십일조는 왜 이렇게도 소홀히 할까요? 이 시간의 십일조부터 지키는 것이 어쩌면 더 중요한 것은 아닐까요? 왜냐하면 내가 하루의 십분의 일을 주님 위해 바치지 못한다는 것은 그만큼 주님을 사랑하고 있지 못하다는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루의 십분의 일도 주님 안에 머무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주님께 대한 믿음도 없어지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복음에서는 로마의 백인대장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이방인이었지만, 예수님의 말씀 한 마디면 무엇이든 다 이루어질 수 있다는 강한 믿음을 보여줍니다.

사실 그 당시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직접 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래서 직접 초대를 해서, 그 기적을 보여 달라고 청하는 경우도 빈번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백인대장은 달랐습니다. 그냥 믿었습니다. 그래서 굳이 자기 집까지 수고롭게 오실 필요가 없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바로 사랑과 존경의 마음에서 이 믿음도 나오게 된 것입니다.

지금 나의 주님께 대한 사랑과 존경의 마음은 어느 정도가 될까요?
그 마음이 형편없어서, 내 안의 믿음도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댓글 2

  • 2005년 9월 12일 오전 11:45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보고픈 마음으로 주님 앞에 앉는..

  • 2005년 9월 12일 오후 4:04

    하루의 십일조? ....... 다시 반성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