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예언자

2005. 9. 5. 오후 4:32:14

글자

 

찬미예수!

가을인가 했더니 이틀 동안은 다시 여름이....
여름도 그냥 물러가긴 좀 섭섭했나 봅니다.
그래도 주님의 사랑 안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셨죠?

 

오늘은 예언자가 어떤 사람인지, 또 오늘날의 예언자는 누구인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흔히 사람들은 예언자라고 하면 먼 미래에 있을 일을 미리 알아서 이야기해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서에서 말하는 예언자는 그런 사람들이 아닙니다.  

에제키엘 예언서의 내용에서,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를 이스라엘의 보초로 세우십니다. 보초가 무엇 하는 사람인지 잘 아시죠? 예, 보초는 높은 망루에서 저 먼 곳을 지켜보고 있다가 적이 나타나면 즉시 아군에게 알려서 싸울 준비를 빨리 할 수 있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에제키엘은 하느님 백성의 보초가 된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범할 수 있고 또 하느님의 자비와 용서가 필요한 나약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에제키엘을 당신 백성의 보초로 세우십니다. 

예언자는 이스라엘이 하느님의 백성으로서 하느님과의 계약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는지 여부를 식별하고 잘못된 행실을 고치라고 타일러 주는 보초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언자의 말을 듣고도 회개를 하지 않으면 그 책임이 본인에게 있지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할 책임을 수행하지 않아서 백성이 회개하지 못했다면 그 책임을 예언자가 져야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죄인의 죽음을 원하지 않으시고 회개하여 살기를 원하시는 자비와 용서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언자는 당신 백성을 용서에로 부르시는 하느님의 입이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 곧 우리 모두가 이 예언자의 사명을 수행해야 함을 깨우쳐 주시면서 그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 주십니다.

먼저 레위기 19장17절을 인용하여 어떤 형제가 잘못을 했을 때, 먼저 단 둘이 만나서 개인적으로 타이르라고 하시는데 이것은 상대방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거나 굴욕감을 주지 말고 화해로 초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안 될 경우에는 다음 단계로 한두 명을 더 데리고 가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신명기 19장15절을 인용한 것인데, 힘을 과시하거나 겁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을 명확히 밝혀 화해를 촉구하는 노력을 확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래도 화해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리고 교회의 판결에 맡기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율법학자가 마지막 판결을 내리던 유대교의 관례를 떠난 것입니다. 이제 맺고 푸는 판결권을 교회가 가졌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늘 교회 안에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조심스런 화해의 3단계를 가르쳐 주시는 것은 죄는 미워하되 죄인의 인격을 존중하여 잃었던 형제를 다시 얻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오늘의 예언자로서 죄인을 회개시켜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잘못한 친구나 이웃을 단죄하기 이전에 올바른 길로 다시 돌아오도록 충고하고 기도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현존을 항상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 곧 사랑으로 모일 때 가능하답니다.

만일 어느 날 갑자기 아무런 이유도 없이 어떤 사람이 여러분의 사랑하는 가족을 죽였다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직 기억하고 계시는지 모르겠는데, 어떤 젊은 사람이 서울 한강 고수부지에서 미친 듯이 차를 몰아서 뛰어놀고 있던 어린이를 치어 죽인 사고가 있었습니다. 그 사람은 자기 눈이 너무 나빠서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는 것을 비관해서 그와 같은 짓을 했다고 했습니다. 참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한 일은 그 후에 있었습니다. 그 죽은 어린이의 할머니는 세례명이 마리아였고 열심한 신자였습니다. 그 마리아 할머니는 자기 손자를 죽인 그 사람을 진정으로 용서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감방이 추울까봐 두터운 담요를 들고 감옥으로 찾아갔습니다. 그리고 용돈이 모이는 대로 좋은 안경을 맞추어 주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자 실의에 빠져있던 그 사람은 세상에 이렇게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다면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목 놓아 울었다고 합니다. 그 할머니는 참으로 오늘의 예언자로 사신 것입니다.

물론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바울로 사도는 우리에게 예언자로서의 사명을 잘 수행하라고 격려하면서 사랑의 계명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 받는 자녀들입니다.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당신의 외아들까지 십자가에서 죽도록 내버려뒀습니다. 우리는 그만큼 사랑을 받고 있기에 우리도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은 이웃 사랑을 통해서 드러납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대한 사랑으로 이웃들을 사랑할 때 우리는 모든 사람을 당신의 사랑에로 초대하시는 하느님의 도구 곧 오늘의 예언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훌륭한 하느님의 사랑 받는 예언자가 될 것을 결심하면서, 우리의 결심을 받아주시고 도와주십사 하고 미사 중에 한 마음으로 기도드립시다.


 

- 옥산 성당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댓글 2

  • 2005년 9월 5일 오후 4:32

    사랑의 사람이 되길 성령님께 청하며, 예수님의 마음으로 이웃을 사랑하게 되길 기도드립니다..

  • 2005년 9월 5일 오후 9:08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