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 예수님!
사랑하올
한 주간 동안 건강하게 잘 지내셨나요?
이젠 아침 저녁으로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낮에도 구름이 높고 하늘이 깊어진 걸 보면 가을이 우리 곁에 와 있나 봅니다!
고통을 피하고 싶은 것은 인간의 본능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오늘도 우리에게
“나를 따르려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 예언자의 고통스러운 고백의 한 구절입니다.
예레미야는 태중에서부터 하느님의 선택을 받았고, 소명을 받을 때
“보아라! 나는 오늘 세계만방을 너의 손에 맡긴다.”(예레 1,10)
라는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기에 큰 기대를 가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는 백성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다가 매일 그들에게 조롱과 비난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언자도 나약한 인간이기에, 주님의 꾐에 넘어가 고생을 한다고 불평하며, 예언자의 소명을 저버리고 싶어 합니다. 그렇지만 주님의 말씀에 대한 열정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우고, 하느님께서 새로운 힘을 불어넣어 주시기에 그는 죽기까지 용감히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예레미야가 예언자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인간적인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뼛속까지 새겼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처음으로 당신의 수난을 예고하십니다. 그러자 진실한 신앙 고백을 했던 베드로도 무죄한 그리스도께서 고통과 죽음의 길을 가야 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만류합니다. 인간적인 가치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때 너무나 당연한 행동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길을 가는 것이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는 것임을 분명하게 깨우쳐 주시며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도 그 길을 가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새로운 삶에 대한 큰 기대에 젖어 있던 제자들은 자신들이 잘못 기대하고 있던 삶을 거부해야 하는 괴로운 시점에 도달했습니다.
하느님의 뜻에 순명하기 위해서는 자신을 온전히 잃어버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멸망이 아니라 영광에 이르는 길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러한 하느님의 계획을 아셨기에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도 그 영광을 원합니다.
그런데 세속의 가치관에 젖어 십자가 없는 영광을 원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진정으로 영광을 원한다면 먼저 우리의 십자가를 찾아야하고 그것을 기쁘게 끌어안아야 합니다.
그럼 여러분의 십자가는 무엇입니까? 친구와의 갈등? 내보다 나아 보이는 친구나 동료에 대한 시기심? 남편과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 자녀들의 문제? 경제적 문제? 사람들마다 다 다르게 느낄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힘들게 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하느님께서 나에게 주신 십자가는 아닙니다.
문제는 ‘사랑이 있느냐?' '자신을 위한 것인가 상대방을 위한 것인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즉, 내가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서 혹은, 하느님을 사랑하기 위해 형제를 사랑하는 데에 따르는 고통이나 어려움이 나의 십자가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특별히 나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기 위해서 져야할 십자가도 있겠습니다.
‘그 사람이 용서를 청하면 쉽게 용서를 해주겠는데…’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용서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지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 용서해 주고 상대방을 끌어안을 때, 진정한 행복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행복을 원하는 우리를 향해, 세상을 본받지 말고 새 사람이 되라고, 우리 자신을 하느님께 산 제물로 바치라고 권고합니다. 즉 더 이상 인간적인 가치관에 따라 살지 말고 매사에 하느님의 뜻을 좇아 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내 뜻대로 행동하면서 그것이 하느님의 뜻이길 바랍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는 ‘이제 나는 정말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모시고 살 것이다.’라고 결심을 하지만 생활하면서 어려움이 닥치면 하느님께 매달리기 보다는 이웃에서 권하는 용하다는 점쟁이를 찾고, 능력 있는 사람에게 의지하는 것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렇다고 실망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렇게 자신 있게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하고 칭찬을 들었던 베드로 사도도 얼마 후에 “사탄아 물러가라!”라는 혹독한 꾸중을 들었습니다.
베드로 사도에게도 자신이 고백한 신앙을 생활에서 뿌리 내리기 위한 시간과 훈련이 필요했듯이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간다고 저절로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내가 생활 안에서 작은 일들 안에서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꾸준히 기도하고 그것을 실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매 순간 하느님의 뜻을 발견하고 “네”라고 응답을 드린다면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예수님을 따를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인간적인 가치로 볼 때 어리석고 고통을 가져오더라도 하느님께서 당신 자비로 마련해 주신 참된 행복,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길임을 굳게 믿읍시다.
우리가 택하는 십자가의 길은
고통이 아니라 영광을 위한 길입니다!
아멘!
옥산 성당에서 안드레아 신부 드림
